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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진권 Jul 21. 2021

과학혁명 4: 갈릴레오 갈릴레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자, 지난 시간에 이어 우리는 과학혁명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살펴볼 위대한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과학을 이전보다 한 계단 높은 곳으로 올려놓았습니다. 한편 그는 불안한 시대의 희생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빛나면서도 안타까운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갈릴레오는 156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갈릴레오는 아버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빈센초 갈릴레이는 음악가였는데 수학을 이용해서 악기의 소리를 분석하는 연구를 아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 경험은 수학을 통해 자연을 연구한다는 갈릴레오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갈릴레오는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보였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을 중퇴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개인교사로 일하며 홀로 공부하여 25살의 나이에 피사 대학의 수학교수가 되었지요. 갈릴레오는 계속 뛰어난 연구를 하고 있었지만 월급은 보잘것없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더욱 기울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 했지요.


1600년 경, 갈릴레오는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런 노력이 학문에도 도움을 줍니다. 갈릴레오는 우연히 네덜란드에서 발명된 새로운 도구, “망원경(telescope)”의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도구와의 만남이 갈릴레오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게 됩니다. 망원경이 갈릴레오의 손에 들어와서 천문학을 밑바닥부터 바꿔놓기 까지의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망원경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단순히 긴 통의 양 끝에 볼록 렌즈와 오목 렌즈를 끼워서 멀리 있는 물체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죠. 그러나 인간의 시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준 세기의 발명품입니다.


최초의 망원경은 네덜란드의 한스 리퍼세이(Hans Lippershey)가 발명했습니다. 갈릴레오는 직접 망원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로 전해 듣고 스스로 망원경을 제작합니다. 더 나아가 성능을 개량해서 원래 3-4배 정도였던 배율을 30배까지 향상시킵니다. 정말 대단한 손재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그렇게 만든 망원경을 가지고 갈릴레오가 무엇을 했을까요? 그의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생각하면 바로 과학을 위해 사용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래 이야기는 사실 과학에서는 조금 벗어납니다만. 갈릴레오란 인물의 성격을 살펴보는 것도 과학을 폭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조금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사실 과학만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 (주: 아래 내용은 ‘과학과 후원’이라는 과학사의 연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과 경제적 지원의 관계는 지금도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갈릴레오는 사업가적인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갈릴레오는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는 망원경을 군사용 장비로 판매하려고 했습니다. 망원경을 이용하면 배를 타고 오는 적군을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멀리서 볼 수 있다는 말로 정부를 설득하려 했지요. 그런데 가격 등 여러 문제로 판매에 실패합니다. 그러자 한밤 중에 갈릴레오는 당시 거주하던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망원경을 들고 올라갑니다. 집에서 봐도 되는데 굳이 탑에 올라간 그의 행동에는 망원경을 홍보하려는 의도도 1% 정도는 있었을 거라고 추측을 합니다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


그림 1. 갈릴레오가 사용한 망원경의 모습. 실물에 가깝게 복원한 모형입니다. 망원경은 천문학에 혁명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갈릴레오의 인생도 바꿔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 행동이 천문학을 영원히 바꿔놓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맨눈이 아닌 망원경을 이용한 최초의 천체 관측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시력을 수십 배로 향상시켜주는 도구의 도움을 받자, 수천 년 동안 누구도 보지 못했던 우주의 본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갈릴레오는 매일 밤 탑에 올라 망원경으로 본 것을 그림으로 그렸고, 그것들을 모아 소책자로 출판합니다. 그 책의 제목이 시데리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 번역하면 “별에서 온 메시지”입니다. 이 책은 전 유럽에 말 그대로 충격을 몰고 옵니다. 그것은 이전에 사람들이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우주의 모습이 책에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책의 중요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 달은 울퉁불퉁하다.

갈릴레오 이전 하늘에 있는 천제(celestial body)는 모두 매끈한 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하늘에 있는 것들은 완전한 대상들이고 따라서 완전한 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이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는 산과 계곡을 발견했으며 태양의 각도에 따라 그 그림자가 변하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것은 달 표면이 지구와 마찬가지로 울퉁불퉁하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림 2. 갈릴레오가 직접 그린 달 그림들


- 금성의 위상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달은 보름달, 반달, 초승달 등으로 모양이 바뀌지요.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해서 금성 또한 달과 마찬가지로 모양이 바뀐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전에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이유는 금성이 멀리 있어 너무 작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맨눈으로 보면 금성은 그냥 하나의 점으로 보일 뿐이지요. 그러니 모양이 변하는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통해 확대해서 보자, 놀랍게도 금성 또한 보름달, 반달 등으로 모양이 바뀌었습니다. 또한 이 발견은 지동설을 지지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 목성의 위성

천동설에 따르면 모든 행성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지구가 아닌 목성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천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목성에도 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지요. 이 발견은 천동설에 상처를 내는 중요한 증거로 작용합니다.


이 발견은 학문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갈릴레오 개인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것에 이름을 붙일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이어지는 전통이지요. 요즘도 아마추어 천문가가 종종 새로운 천체를 발견해서 자기 이름을 붙이곤 하지요. 어쨌든 목성의 위성을 새로 발견했으니 이름을 붙여야 하는데 여기서 갈릴레오는 대단한 수완을 발휘합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부자는 메디치 가문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새로 발견한 천체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새로운 별을 발견하고 “삼성의 별”이나 “현대의 별”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삼성의 ‘성’은 별이란 의미여서 단어가 중복되는 문제가 있네요^^;;).


갈릴레오의 호의에 대한 보답으로 메디치 가문은 갈릴레오를 가문의 공식 학자로 임명합니다. 그것은 명성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자리였습니다. 메디치가는 명예를 얻고 갈릴레오는 평생 경제적 염려 없이 연구에 몰입하게 되었으니 모두가 윈윈(win-win)한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 갈릴레오는 이제 걱정 없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행한 중요한 연구는 너무 많아 책 한 권을 채워도 모자랍니다. 우리는 교양을 목적으로 하므로 두 가지 연구만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아마도 갈릴레오의 가장 유명한 연구는 <피사의 사탑> 실험일 텐데요. 이 연구는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연구의 내용을 잠시 살펴봅시다. 피사의 사탑은 이탈리아의 도시 피사에 있는 탑인데, 한쪽으로 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릴레오가 물체의 낙하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탑이 한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에 실험하기가 쉬웠으니 피사의 사탑에서 실험을 했다는 것이죠.


이 실험의 중요성을 이해하려면 앞서 살펴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비교해야 합니다. 우리는 불, 공기, 물, 땅의 4원소가 우주 안에 각자의 자리를 가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살펴봤습니다. 하나의 세계관이기도 한, 이 이론은 매우 중요한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줍니다. 그것은 다음 질문입니다.


        “무거운 물체는 왜 아래로 떨어지는가?”


과학을 아는 분은 아마도 ‘중력’ 또는 ‘만유인력’이라고 답하겠지요? 공부를 더 한 분은 '시공간 곡률'이나 '중력장'이라 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직 중력이 발견되기 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이 문제는 고대인에게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기가 막힌 답을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는 우주 안의 모든 물질은 자기 자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자연 운동이란 물질이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둘을 연결하면 무거운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물질이 원래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물체의 본래적인 위치가 아래쪽이라는 것이죠.


갈릴레오의 시대에도 물체의 낙하는 그렇게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날카로운 정신의 소유자인 갈릴레오는 이 설명에 문제가 있음을 파악합니다. 아리토텔레스의 말에 따르면 무거운 물체는 떨어지는 힘이 강하고 가벼운 물체는 떨어지는 힘이 약합니다. 그래야 무거운 물체가 더 아래에 있게 되니까요. 따라서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동시에 떨어뜨리면 무거운 쪽이 먼저 떨어져야 합니다.


대중적인 이야기에서는 피사의 사탑에 올라서 갈릴레오가 이 이론이 사실인지 직접 실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게가 다른 두 물체를 떨어뜨려 본 것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져야 하는데 두 물체가 동시에 바닥에 닿았다고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의 면밀한 검토 결과는 사실은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사실 실제로 실험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해보는 ‘사고 실험’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갈릴레오가 했던 사고 실험의 내용은 이 장의 뒷부분에 연습문제로 적습니다. 흥미로운 문제니까 여러분도 한 번 풀어보세요~). 또한 당시 실험 수준으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 어려웠을 겁니다. 정밀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공기가 없는 진공에서 실험을 해야 합니다. 공기가 있으면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모양이 같아도 무거운 물체가 공기의 저항을 이기는 힘이 더 큽니다).


자,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떨까요? 현대 과학의 힘을 빌리면 갈릴레오의 실험을 현실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다음 동영상은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NASA가 보유한 세계 최대의 진공 챔버를 빌려서 수행한 실험을 녹화한 것입니다. 진공 챔버는 공기를 빼내서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볼링공과 깃털을 진공에서 동시에 떨어뜨립니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영상으로 확인해보십시오.


https://www.youtube.com/watch?v=E43-CfukEgs



어떻습니까? 정말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죠. 그 무거운 볼링공과 가벼운 깃털을 동시에 떨어뜨렸는데 두 물체가 같은 속도로 떨어집니다! 우리의 직관은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치고 있지요. 그러나 과학은 감춰진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틀렸고 갈릴레오가 옳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갈릴레오 본인이 보았다면 어떨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아마 조용히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요?


마지막으로 갈릴레오의 수많은 업적 중에서 우리 강의의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 발견을 살펴볼까 합니다. 그것을 지금은 “갈릴레오 상대성”이라고 부릅니다. 갈릴레오 상대성은 지동설에 대한 반론과 연관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지동설을 주장에 대해서 “지구가 움직인다면 그 위에 있는 우리는 왜 움직임을 느낄 수 없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물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겁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지구와 우리가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갈릴레오는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까요. 두 척의 배를 예로 들어봅시다. 여기 A, B 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두 배는 똑같이 생겼지만 A는 물 위에 정지해있고 B는 바람을 받아서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때 A의 돛대 위에서 공을 떨어뜨려 봅시다. 공은 어디에 떨어질까요? 아주 쉽죠. 공은 바로 직선으로 돛대 옆에 떨어질 겁니다. 정지해 있으니까요. 그러면 움직이는 B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 경우는 약간 어렵죠. B가 움직이고 있으니까 약간 뒤에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바로 아래로 떨어질 것 같기도 하죠. 정답은 “바로 아래로 떨어진다”입니다. 왜냐하면 공 또한 떨어지는 동안에 배가 움직이지만, 공 또한 계속 B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배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이가 없습니다. 의문이 난다면 직접 달리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실험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쉽게 실험해볼 수 있습니다. 그냥 동전 같은 것을 떨어뜨려 보면 됩니다.


자, 그럼 결론은 무엇일까요? 결과적으로 A와 B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지구가 정지해 있는 경우와 지구가 운동하는 경우 모두 지구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구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두 경우의 차이를 알려면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구와 떨어져서 지구를 볼 때만 차이를 알 수 있지요. 이렇게 갈릴레오는 지동설의 반론을 해결합니다. 우리가 지구의 움직임을 못 느끼는 것은 지구 위에서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상대성’이란 말을 보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떠올린 분이 있을 겁니다. 맞습니다. 상대성이론의 ‘상대성’이 갈릴레오 상대성에서 온 것입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갈릴레오 상대성을 확장하는데, 그 내용은 몇 주 뒤 상대성 이론 편에서 다룰 겁니다.


그림3. 밖에서 보면 공이 떨어지는 동안 배가 움직이지만 공 또한 같은 방향의 운동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은 바로 아래에 떨어진다.


마지막으로 논란이 많은 주제인 갈릴레오와 기독교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으로 수업을 마치도록 합시다. 갈릴레오가 교황청으로부터 박해를 받은 일은 대중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마치 기독교가 과학을 늘 탄압했다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체 역사를 보면 사실 기독교는 과학을 장려한 쪽에 가까웠고 전반적으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갈릴레오가 살던 때는 종교혁명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이때 문제가 된 갈릴레오 책, <두 주요 세계관에 대한 대화>는 교황청의 허가를 받고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책에 약간 멍청하게 묘사된 인물이 교황을 비유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던 교황청은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 재판이 열리게 됩니다.


결국 갈릴레오는 화형을 면하기 위해 재판장에서 자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인정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70살이 넘은 노인이 자기가 평생 동안 노력한 모든 것을 부정해야 하는 마음을. 갈릴레오는 교황 우르바노 8세와 절친한 사이었고 교황청에 친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화형은 면했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집을 벗어날 수 없는 종신 가택연금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갈릴레오는 쉬지 않고 연구했습니다.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태양을 관측하다가 눈까지 멀게 됩니다. 


갈릴레오의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는 실험을 과학의 중심 활동으로 올려놓았고, 실험을 통해 앞으로 뉴턴이 발견할 만유인력의 법칙에 근접한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과학혁명의 바로 직전까지 갔던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말년에 불행한 일에 휘말렸고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운명처럼 갈릴레오가 사망한 해(1642년)에 영국에서 뉴턴이 태어납니다. 이제 그의 못 다 이룬 작업이 희대의 천재 뉴턴에게 주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갈릴레오의 인생을 노래한 indigo girls의 노래를 올려드립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그의 인생을 한번 음미해보면 어떨까요. 저도 노래를 듣다보니 역사 속의 선구자들은 항상 힘든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현재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래도 그들 덕분에 인류는 발전해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CbjGH2gO6Y



* 갈릴레오의 사고 실험

다름 그림의 질문을 잘 생각해보세요.


그림 4. 갈릴레오의 사고 실험


생각해보면 두 가지 답이 나옵니다.

① (A+B)의 속도는 A보다 느리다: 속도 면에서 A는 빠르고 B는 느립니다. 느린 것이 붙어있으므로 (A+B)의 속도는 A보다 빠를 수 없습니다.

② (A+B)의 속도는 A보다 빠르다: 이번에는 무게를 따져봅시다. (A+B)는 두 물체의 무게가 합쳐졌기 때문에 당연히 A보다 무겁습니다. 무거우므로 속도가 A보다 빨라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낙하 이론에서 둘 다 맞는 답입니다. 그러나 빠르면서 동시에 느릴 수 없으므로 모순이 발생합니다.


* 그림 출처

갈릴레오의 초상화: https://ko.wikipedia.org/wiki/갈릴레오_갈릴레이#/media/파일:Galileo.arp.300pix.jpg

그림1: https://en.wikipedia.org/wiki/Galileo_Galilei#/media/File:Galileo_telescope_replica.jpg그림2: https://en.wikipedia.org/wiki/Sidereus_Nuncius#/media/File:Galileo's_sketches_of_the_moon.png

그림3: https://www.slideserve.com/arlo/2-6-galileo-galilei-1564-1642

그림4: http://bung015b.egloos.com/4246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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