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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수 Apr 15. 2021

역병을 물리치는 존재의 형상




인류의 역사는 질병의 역사와도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류사에서의 질병은 잔인한 전쟁보다 사람을 끊임없이 괴롭혀왔고, 비극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메르스나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국경이 막히고, 외출금지를 당하고, 뉴스와 신문에서는 쉬지않고 오늘은 몇명이 감염되었고 몇 명이 죽어나갔는지가 세세히 보도됩니다. 확진자의 동선을 피하고, 마스크를 끼고,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을 하지않는다라는 지침을 가지고, 그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전염병은 여전히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까마득한 과거의 우리의 조상들은 원인도, 이유도, 형태도 없는 이 병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했을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에 나의 부모님이, 딸이, 친구가 쓰러지고, 열이 오르고, 힘 없이 눈을 감는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한 사람을 보내고 그 사람을 온건히 기릴 시간도 없이 근처의 다른 누군가가 같은 증세를 보이고 또 죽어나갈테지요. 손쓸 도리도 연유도 알 수가 없는 정체불명의 끔찍한 역병 앞에 사람들은 신화적, 종교적인 특별한 힘에 기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화수 한그릇 떠놓고 달을 보며 빌던 사람들은 역병에도 생명을 불어 넣어 실체가 있는 유기적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나쁜 귀신이 역병을 옮긴다고 널리 믿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인물의 구원을 기대하면서 형상을 본떠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여 품에 간직하거나 집에 모시면서 기도를 드리면서 마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시절의 미술은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역신마저 감명시킨 처용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 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아 간 것을 어찌 하리오[1]



« 부부의 세계 » 에서 나올법한 이 아리송한 노랫말은 처용설화에 등장하는 처용가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용의 일곱아들 중 한명이었던 처용은 자신의 아비에게 절[2]을 바친 신라의 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와 정사를 보좌합니다. 처용을 신라에 붙잡아 두기 위해 왕은 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과 벼슬자리를 주었는데, 그 아내를 역신이 흠모하여 사람으로 변해 밤에 그의 집으로 가서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처용이 집으로 돌아와 둘의 모습을 보곤 위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그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이러한 처용의 태도에 감동한 역신이 본모습으로 처용 앞에 무릎 꿇고는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을 통과하지 않겠다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여기서의 처용의 처와 바람난 역신은 앞서이야기한 전염병을 옮기는 귀신입니다. 우리나라 땅에서 가장 두려운 병이었던 두창, 포창과 같은 역병을 사람들에게 옮기고 다니는데, 특히나 천연두로 알려진 두창은 최근까지도 치사율이 아주 높았던 질병으로 열이 오르고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 며칠 안에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이를 두고 민간의 사람들은 손님, 마마라고 불렀고 이 질병이 귀신의 방문으로 옮겨다닌다고 믿고있었다고 합니다.




약학궤범의 처용가면





 역신이 집의 문지방을 넘지 못하도록 그를 감복시킨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붙여놓고 경사를 빌었다고 하는데 처용의 얼굴은 특히 고려시대 이후 역병쫓는 부적으로 널리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현재까지 남아있는 처용무에 이용되는 처용의 가면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의 도상은 두툼한 눈덩이, 큰 코, 널찍한 입을 가진 모습입니다. 신화적 존재의 표현일 수 도 있지만, 일반적 동양인의 얼굴이라기 보다는 중동의 인물의 특징에 가까워 페르시아나 오만과 같은 나라의 사람을 표현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달처럼 접혀 휘어진 눈과 미소지으며 살짝 벌어진 입. 너그럽게 또는 허탈하게 웃고있는 처용의 모습은 해탈한 부처의 모습과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 웃음을 보며 오늘 하루도 웃고 넘길 수 있기를 문을 지날때마다 생각했을 겁니다. 





자비로운 부처의 세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합니다)



종교적 믿음의 유무를 떠나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문구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여래는 불교의 극락정토를 관리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보살피고 구제하는 보살입니다. 그 중 관세음보살은 다른 부처들과 다르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입니다. 불난집 불을 꺼주고(화난), 성난 바다를 잠잠하게 해주고(수난), 죄가 없는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가쇄난), 귀신을 쫓아내어 병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데(귀난) 그 방법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삼천번 절을 하거나 수일동안 손이 닳도록 기도를 드려야하는 게 아닌 그저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음성이 관세음보살에게 까지 전해져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니 신분의 고저를 떠나 하층민, 상인, 양반, 모두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승경전의 대표적 경전, 법화경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독립된 경전으로 취급될 정도 였으니까요. 당연히 그 인기에 맞춰 수많은 그림과 조각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특히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던 고려시대에서는 관음은 지장보살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려불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역시 수월관음도 입니다. 수월관음(水月觀音)은 1000개의 손이 있는 천수관음, 11개의 얼굴을 가진 11면관음과 같은 33의 관음 중 이름 그대로 물에 비친 달을 내려다보는 모습의 관음입니다.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고려 1323년 6월, 일본 센오쿠학고간(泉屋博古館) 소장



수월관음도의 도상은 보통 깎아 내린 절벽의 괴석 위에서 느긋이 다리를 꼬고 앉아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 편안한 포즈를 유희좌(遊戱坐)라고 부릅니다. 수월관음의 주위로는 푸른 대나무와 꽃이 신비롭게 피어있고 흐르는 연못 위로 피어있는 연꽃위로 발을 두고 있습니다. 보름달과 같은 둥근 광배가 머리 뒤를 밝히고, 입구가 좁은 병 하나가 관세음보살의 손에 혹은 절벽 끝에 놓여있습니다. 이 정병에는 감로수가 담겨 있습니다. 감로수는 범천의 왕들이 마시는 음료수로 관세음보살은 이 물로 불을 끄고,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축이고, 아픈사람들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조용히 우리를 내려다보는 수월관음의 모습은 그의 자비로움이 잘 표현된듯합니다. 아름답고 고요한 수월관음은 관세음보살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 모습을 떠올리며 한없이 위로받았을 것입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나타난 코로나는 세상을 멈추고 우리에게 정해진 일상의 편안함과 행복함을 앗아가버렸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일자리를 잃고 늘어가는 확진자 수를 바라보며 몸과 마음은 조금씩 지쳐버렸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지나쳤던 수 많은 질병들 처럼, 우리는 이 시기를 우리는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을 떨쳐내고 지나간 자국을 보듬는 건 결국 서로를 보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의 따뜻함과 상냥함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처용과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너그러움은 우리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것이라 믿습니다. 힘든 시기, 조금만 더 힘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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