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수 Aug 26. 2020

짧은 머리와 정체성에 대하여


머리를 짧게 친 이후 나의 옷차림 때문인지, 친구 말마따나 기골이 장대한 나의 든든한 몸뚱이 때문인지, 혹은 그 모든 콜라보인지 적지 않은 오해를 받고 있다. 그 반응들은 제각각이라 꽤 재미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걸 즐기고도 있는데, 그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눠진다.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아닌가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요리조리 나를 곁눈질하는 게 느껴진다. 이게 남자야 여자야. 가끔 실례될 정도로 몇 분간 유심히 바라보거나 경계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는 경우도 있다. 꾸밈질한 남자. 나의 게이 친구가 정의 해준 표현이다. 요즘은 화장을 하는 남성들도 많기 때문에 예쁘게 꾸민 남자와 같다는 것. 가장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건 역시 동성애자분들인데, 일례로 이태원 게이바 앞을 지나갈 때 오빠! 소리를 듣고는 손을 잡혔다. 빵 터진 나를 보며 어머, 오빠가 아니야?라고 소리친 그분의 표정과 말투가 잊히지 않는다. 몇 시간 후 다시 마주친 나를 바 쪽으로 끌고 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이 오빠가 오빠가 아니래! 라며 외치자 밖으로 나온 많은 분들이 나의 성별을 아쉬워하며 가슴을 떼고 남자하자, 라고 상큼하게 제안해주셨다. 내 인생 가장 만화 같았던 일화였는데, 이뿐 아니라 전시 뒤풀이에서 스페인 게이 아티스트가 나에게로 와 너는 스페셜한 뷰티를 가졌어, 라는 한마디를 진지하게 던지고 사라진 일도 있다.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화장실을 이용할 때. 여자 화장실을 들어갈 때면 내부에 있던 사람들의 흠칫거림이 느껴진다. 가끔 여기 여자화장실이에요 라고 용기를 내 말을 거는 사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여자입니다 라고 대꾸해야 하는 내가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오늘만 해도 스타벅스에서 한 번, 다른 카페에서 한 번, 남자화장실은 다른 층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다. 씩 웃고 말았지만 아직까지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프랑스에서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자와 남자를 Madame 마담 - 숙녀, Monsieur 무슈 - 신사라고 구분하는 이 곳 특성상 항상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는데, 나는 압도적으로 무슈라고 불리고 있다. (물론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인듯한데 서울 친구를 데려간 자갈치에서 아주머니들이 우렁차게 총각이라고 외쳐주시더라) 빵집, 카페 등에서 Bonjour Monsieur라고 인사하고는 내가 하는 주문을 듣고는 당황하며 호칭을 바꾸어준다. 앞서 말한 친구와 샌드위치를 사러 들어갔을 때 우리를 어울러 'Vous avez choisi, Messieurs 무엇을 드실래요 신사분들'이라고 인사했던 아주머니가 계산 후에 자연스레 'Au revoir 다시 봐요 Madame Monsieur 마담, 무슈'라고 정정해서 불렀는데, 친구가 배를 잡고 웃더라. 이렇게 까지 오해받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머리를 직접 잘라준 친구도 묘하게 즐기는 분위기다. 물론 가볍고 웃긴 일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고 마른 동양 남자애라고 생각한 서양 남성들은 꽤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카페 서버가 메뉴판을 집어던지거나, 엘리베이터 줄을 서있는데 괜히 와서 시비를 걸고 소리를 지르거나, 별 것 아닌 일로 굳이 쉭쉭 위협을 하는 경우다. 머리가 길었던 8년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부정적인 태도들이 짧은 머리의 근 3개월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걸 보며 오히려 여성이기에 받았던 조금은 비뚤어진 우호적인 대접과 매너, 아시아 남자에 대한 무시와 푸대접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 외에도 성별을 바꾸는 수술을 받았는지, 혹시 여성을 좋아하는지 조심스럽게 하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알고 지낸 사람들 중 대다수의 남성들은 기겁하며 왜 잘랐냐고 남자 같으니 얼른 기르라고 말하고, 시원하게 잘랐다며 유쾌해하는 사람들, 설렌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너 그러면 오해받는다며 만고 쓸모없는 나의 연애 걱정을 진지하게 해주는 사람들까지. 어떤 반응이건 내 생에 가장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당분간은 머리를 기를 생각이 없다. 이는 이다지도 손쉽게 나를 둘러싼, 나를 평가하는 기준이 바뀌는 것이 신기하기도 또 그 반응들을 관찰하는 게 즐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단순히 머리 하나 잘랐을 뿐인데 세상의 가치판단은 이리도 가볍게 이루어진다. 혹시 당신도 일상이 단조롭다 느낀다면 머리를 잘라보시라. 혹은 길러보시라. 나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내가 보는 세상을 향한 시선이 손바닥 뒤집듯 달라질 수 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202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