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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이 Dec 01. 2021

밤이 깊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고요한 호텔, 그 밤들의 기록 (2)

고요한 호텔, 그 밤들의 기록 (2)

: 밤이 깊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밤이 깊었습니다. 마피아는 고개를 들어주세요.


모두가 잠이 든 밤, 어딘가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들이 마치 마피아 게임을 하듯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아무도 모르게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 나이트 오디터들은 마치 경찰이 된 듯, 수많은 CCTV카메라들 사이로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마피아를 찾아내기 바쁘다. 틀린그림찾기를 하듯 수많은 화면들 속에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눈에 띈다면 외치는 거다, '잡았다 요놈!'

 


밤에 활동하는 '마피아'들은 항상 범상치 않은 특이 행동을 해서, 후에 그들은 특별한 애칭으로 불리게 된다. "그 라쿤맨 기억해?", "반나체 산책러도 웃겼는데." 이런식으로. 나름 관심과 애정을 듬뿍 담아 우리는 각자의 작명솜씨를 뽐내곤 했다. 우리의 무료(할 뻔)했던 근무시간을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나의 첫 마피아는 '겁쟁이 카메라 도둑(a cowardly camera theif)' 이었다. 나이트오디터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트레이닝 때문에 항상 매니저와 2인 1조로 붙어 다녔는데, 그날은 드디어 매니저 없이 시니어 나이트오디터 K와 단 둘이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초반 바짝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밤 사이 딱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렇게 나의 쉬프트가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해가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며 날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백오피스에서 일을 마무리하던 나와 K는 순간 부스럭부스럭 하고 들려오는 이상한 소음에 동시에 하던 일을 멈췄다. 그리고 우리 둘의 고개가 삐그덕 삐그덕 무언가 고장난 로봇처럼 어색하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 호텔 가든에 카메라가 없어서 우리는 이동식 카메라를 밤마다 설치하고 태블릿으로 연결해 보곤 했는데, 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부스럭. 딸깍딸깍. 부스럭.


예쁜 호텔 정원 풍경이 있어야 할 화면에는 마치 공포영화처럼 소름돋게도 어떤 남자의 얼굴로 가득차있었다. 누가봐도 홈리스다 할 정도로 허름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훔쳐가려는 게 분명한 상황에서 무슨 용기가 난건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전기를 가지고 바로 가든 쪽으로 달렸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오피스에 있던 K는 카메라 마이크를 켜고, '카메라 제자리에 내려두세요. 카메라 내려두세요.' 라며 홈리스 남자에게 경고를 주고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남자는 허겁지겁 카메라에 연결되어 있던 보조배터리를 뽑아버렸고 그 상태로 화면은 아웃-. 이제 그 남자를 찾아 나선 나에게 바통이 넘겨졌다.


가든 문을 열고 나가 카메라가 있던 곳을 살펴보면 이미 그 곳은 텅 비어있었다. 헐떡거리는 숨을 애써 진정시키며 어디로 간 걸까 주위를 마구 둘러보는데 저 멀리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난 곧장 남자가 가는 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가며 '저기요!' 를 계속 외쳤고, 내 목소리를 들은 남자의 발걸음은 나와 함께 빨라지고 있었다.


사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미 오피스에서 가든으로 뛰어나갈 때부터 내 심장을 빠르게 쿵쿵 대기 시작했고, 머릿 속에는 온갖 시나리오들과 함께 걱정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남자를 쫓아갈 때 뛰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쫓았던 이유는, 언제 그 남자가 돌변해 도망을 멈추고 나를 향해 뛰어올지 모르는 불안감이었다.


남자와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쫓으니 그 남자는 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굴하지 않고 카메라만 넘기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는 갑자기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통째로 나를 향해 던져버리고는 이게 만약 티비쇼였다면 삐-처리가 될 만한 욕들을 무지막지하게 남기고는 빠르게 뛰어 사라졌다. 아니, 당신 가방 다 넘길 필요는 없는데... 난 카메라만 있으면 되는데... 어쨌든 카메라를 무사히 돌려받은 나는 더이상 그를 쫓을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내 첫 마피아를 보내줬다. 카메라도 되찾고, 그가 길거리생활을 하며 모은 수많은 이상한 영수증과 외계어로 가득한 노트, 훔친 우편물들과 쓰레기들도 덤으로 얻으며... (개인정보가 담긴 종이나 영수증, 우편물을 제대로 처리해 버리자)




얼마 전 새로운 나이트오디터 I가 들어왔는데 I의 첫 마피아는 장르가 공포라기 보단 코믹이었다. 매니저 M과 코워커 I는 오피스 뒤쪽 복사기에서 서류들을 스캔하고 있었고 나는 백오피스에 앉아 컴퓨터로 서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땡-땡-땡 하고 호텔 입구 쪽 센서가 울렸고 나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입구쪽 CCTV를 쳐다보았다. 어둠 사이로 누군가가 호텔 쪽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화면을 확대해보니 오렌지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내려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오렌지색 셔츠가 아니다.


"누구야?"


CCTV를 체크하고 있는 나를 향해 매니저가 물었고, 나는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망설이다 대답했다.


"음... 반나체 남자(A half naked man)?"


그랬다. 오렌지색 셔츠를 입고 있는 줄 알았던 남자는 사실, 오렌지색 살결을 가진 윗통을 깐 반나체의 남자였던 것이다.


내 말을 듣고 오피스로 내려온 매니저와 I는 내가 보고 있는 화면을 보았고, 우리 셋은 동시에 웃음을 팡 하고 터트렸다. 점점 로비입구 쪽으로 가까워져 오는 남자는 심지어 맨발이었다. 매니저와 I가 밖으로 나가 그 남자에게 다가갔고 난 그 과정을 카메라를 통해 구경 중이었다.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반나체의 남자는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호텔로 다시 들어온 매니저와 I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들은 그냥 어깨를 으쓱하며 '산책하는 중이래' 라고 했다. '반나체 산책러'의 등장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시간, 맨발에 반나체로 거리를 산책하는 남자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특히 새벽에) 많았다.

 



그 외에도 하우스키핑 오피스 쪽에 있는 재활용품을 쌓아 둔 공간에서 쓸만한 것을 뒤적거리다 우리가 다가가자 아무말도 없이 마치 쓰레기통을 뒤지다 걸린 라쿤마냥 우릴 빤히 쳐다보던 '라쿤맨', half-masted가 되어있던 호텔 깃발을 잡아채 훔쳐가다 따라온 매니저에게 갑자기 복싱 자세를 취하더니 잽잽을 날리던 '잽잽이' 등 나이트오디터로 일하는 2년의 시간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신박하게 이상한 사람들과 그들에게 주어질 별명들이 기대가 되는 한 편, 아무 일 없는 무사한 밤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추억할 때는 재밌을 지 몰라도, 막상 그 현장에 있을 때는 재밌기는 커녕 긴장과 공포가 얼굴에 만연한 채로 의지할 것이라곤 매니저를 부를 무전기와 경찰을 부를 수화기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주고, 무전을 하면 내 대신 자신이 나가 일을 처리해주는 매니저 M덕에 이 마피아게임이 두렵지 않다.



오늘도 난 카메라를 주시하고, 틀린그림을 발견하는 순간 무전기를 든다. 

"M, Come in p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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