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서울의 대단지 신축 아파트 안에 신설 초중학교가 들어서는데 교육감이 이 학교들을 혁신학교로 지정하려 하자, 입주예정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력 저하에 대한 우려였다. 주민들은 혁신학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들고 있었다. 평가에서 학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교과서 속 기본 지식 이해 능력일 것이고 이를 평가하는 방식은 사지선다형일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신학교가 도시 중심보다는 외곽이나 신설학교, 소규모 학교라는 점에서 통계의 해석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학습 능력에 대한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 혁신학교들이 너무 이상만 좇느라 기본 교육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탐구 활동 중심의 수업으로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해도 기초 기본 학습능력을 포기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굳이 혁신학교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문제는 평가에서 온다. 수업은 교과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과서는 단지 하나의 교재일 뿐이다. 그래서 교육부에서는 교과서를 재구성하고 과목을 융합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고 이 지침에 따라 많은 교육과정 담당 교사들은 교육과정 재구성에 공을 들인다. 하지만 정작 개별 수업은 교과서대로 가르친다.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재구성을 위한 자료 개발, 수업 준비를 위한 노력과 시간이 너무나 많이 들고 교과서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학부모의 따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혁신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고 줄 세우기를 지양한다. 그래서 대체로 교과서 진도대로 학습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젝트 수업 등 창의적인 수업 방법이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문제 해결 학습 방법을 시도하는데, 이는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수업 방법에 비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 또 혁신학교의 학력은 과거의 평가 방법으로 측정할 수 없는 다른 지점에 있다. 사지선다형 평가는 지식의 평가, 결과의 평가이다. 현 시대는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과거의 지식은 수시로 깨어진다. 그리고 모든 지식은 컴퓨터가 대신 찾아준다. 그래서 20년 뒤 미래를 살 아이들에게 일제식 교육법과 교사 중심의 권위적 교수법은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수업이 바뀌려면 평가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수업과 평가의 일체화이고, 그 방안 중 하나로 학생기록부 종합 평가를 통한 입시제도의 변화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공정성과 신뢰성에서 의심을 받고 있는 이 입시제도는 엄청난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결과 중심의 평가보다 과정 중심의 평가는 사실 교사들에게도 고통스럽다. 그나마 상대평가의 어려움이 없는 초등학교의 경우만 봐도 아이들의 수행 과정을 끊임없이 관찰해야 하고, 그 결과를 해석해서 기록해야 한다. 또 그러한 평가 방식을 개별적인 성장과정으로 표현하는 일은 힘들고 그 근거자료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결국 두리뭉실하게 기록하게 되고 학부모에게 명확한 정보를 주지 못해 불만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혁신교육과 평가 방법은 안과 밖에서 비판의 지점에 놓여 있다.
그래서 현재의 교육 내용과 평가의 괴리는 학교 교육을 계속 비틀고 있고 결국 혁신학교는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입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교육은 앞으로도 바뀌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 방법도 시작되자마자 입시라는 암초에 좌초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조정래는 본인 시대의 입시 지옥을 그대로 자식에게 물려주고 말았다고 한탄했다. 그리고 입시지옥은 그 시절보다 더욱 잔인하게 치열해졌고, 결국 본인 자식의 자식도 그 치열한 입시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교육은 스스로를 바꿀 동력을 갖지 못한다. 사회 시스템과 구성원들의 자기 희생적 의지가 없다면, 결국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각자 살아남기 위해 입시 전쟁 속에 뛰어들어라고, 그래서 경쟁의 고통을 견뎌내고 성공해야 한다고 비통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2. 교사의 지지가 필요하다. 과거 열린 수업의 광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초임 교사였고 뜨거운 열정으로 열린 수업을 보고 다녔고 적용하였다. 그 당시 열린 교육은 교육청 단위에서 무리하게 진행되어 그때까지만 해도 많았던 학급당 학생수를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형 열린 교육의 겉모습만 가져와서 교실 벽을 헐고, 학습지를 남발하고 코너별 학습을 실시하였다. 많은 교사들이 엄청난 업무량과 수박 겉핥기 식 변화, 관료들의 탁상행정에 대한 거부감으로 냉소적인 태도로 돌아서면서 결국 광풍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 교육의 변화는 무엇보다 교사의 지지가 제일 중요하다. 지금 혁신학교도 그러하다. 아무리 좋은 이념이라도 자발성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특히나 교육은.
교사들의 힘으로 시작된 혁신교육이 이제 교육청의 힘으로 강하게 밀려온다면 혁신교육의 자발성은 무너질 것이다. 교사를 믿고 소리 없이 지원해 주고 기다려야 한다. 지금 혁신학교 교사들은 온 힘을 다해 혁신 학교의 정착을 통한 교육의 변화를 일궈내려 노력하고 있다. 그들의 목표는 승진도, 명예도 아니다. 대학 시절 우리를 가슴 뛰게 했던 이상적 학교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혁신학교 2년 차이다. 2년 전 우리는 자발적인 힘으로 혁신학교를 신청했고, 작년 한 해 행복하게 혁신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올 한 해 뭔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내,외부의 압박감에 자발성은 떨어졌고 지쳐갔다. 우리가 가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회의감과 무관심이 조금씩 감지되었다. 누군가 물었다. 교육이 변하려면 교사와 학교장 중에서 누가 변해야 하냐고. 나는 먼저 교사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주체가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의 동력이 자꾸만 떨어져 간다. 동료 교사들의 무관심, 관리자의 권위의식, 학부모의 욕심 등을 보면서. 열정과 도전정신이 있는 교사들의 동력이 계속 올라가야만 신바람 나는 교육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교사들의 열정과 지지가 한계에 도달한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교사의 열정과 지지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교사에게 힘을 주는 내부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학교의 시스템은 교사들의 열정을 일으키지 못하게 한다. 승진을 지향하는 교사 집단은 교육의 혁신보다 승진 점수에 관심이 있고, 승진을 원하지 않는 교사들은 교육의 혁신도 하나의 업무로 느껴 피로감이 앞선다. 교육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인, 교사의 지지와 열정, 그것을 불러일으킬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저녁 늦게까지 교실을 밝히고 꿈을 꾸는 교사들이 학교 안과 밖, 모두로 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내부와 외부를 변화시킬 감동의 불씨는 무엇일까?
3. 모든 것은 시스템의 문제이다. 개인의 노력이 아무리 빛나도 시스템이 없이는 모래 위의 성이다. 혁신학교는 관리자부터 20대 초임교사까지 모든 구성원이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권위의식과 무사안일주의, 형식적인 것을 거부한다. 그래서 혁신학교는 보여주기식의 학교 전체 행사는 지양하되 교사간 협력과 연구의 활성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각자의 영역 내에서 독립적이면서도 비자발적이며, 수평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조직이기도 한 학교 문화에서 이러한 협력과 도전 정신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가장 기본이 되는 교육과정을 짜는 일에서부터 교육청과 관리자의 압력 못지 않게 교사 스스로 갖는 관성적 효율성의 유혹, 그리고 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우려 등으로 기존의 틀을 버리기 어렵다. 이것은 개인의 노력과 용기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거의 무한대로 수렴되는 사회적 압력인 한국 교육의 블랙홀, 대학 입시에 대한 문제.
그래서 혁신 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성적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시선. 교육의 본질을 삼켜버린 이 블랙홀이 움직이는 사회적 중력을 이길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는 혁신 교육 운동은 본질을 지켜내기 어렵다.
경기도는 혁신학교 10년 차이고, 내가 있는 부산은 혁신학교 4년 차이다. 아직 혁신학교에 대한 실험은 성공의 열매를 확실히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열린 교육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이 공산품도 아닌데 눈에 보이는 성과를, 그것도 학력 중심의 사회, 개인의 탐욕이 가득한 입시 전쟁의 해법 속에서 어떻게, 몇 년 안에 보일 수 있을까? 지금의 혁신교육은 이제 비판을 받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자는 혁신이 옳은 길이라면 그 방법 면에서 아프게 비판받아야 하고 고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혁신 교육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교육다운 교육이니까.
혁신학교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사라져야 한다. 모든 교사가 교육의 본질에 대한 갈망이 없을까? 모든 학부모가 내 자식이 경쟁 사회에서 버겁게 살아가길 바랄까? 철학이 있는 삶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혁신은 이전에도 있었고 현재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교육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혁신의 껍데기는 사라져야 하고, 그 알맹이는 꿈꾸는 자들의 가슴속에서 계속 살아남아,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으로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그래서 혁신교육의 껍데기는 비판 하되 혁신교육의 본질과 그 본질을 꿈꾸는 교육자들의 순수한 열정은 기억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