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TOKYO
독서가 예전처럼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려면 약간 느리고 지루한 시간들을 보내야 할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TV 앞에 있는 게 희소하고, 해가 지면 할 것이 잘 없던 옛날처럼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들.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이 팝업 되는 시각적 자극들 속에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선 서점에 가서 자리를 잡지 않는 이상 사실 책 펼치기 힘든 게 맞다. 스스로가 의도적인 차단을 하고 지루함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정신없는 와중에 읽는 독서는 의무감에 실행되는 공부지 음미하며 맛보는 독서는 아니니까.
왜냐하면 독서는 누군가와 글을 넘어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나만의 언어로 소화시켜 저장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나는 오히려 재밌는 책이고 무한한 자극을 주는 책을 만났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성격상 한 번 본 책은 두 번 들추는 일은 없기에, 그냥 힘들게 만난 좋은 책 일찍 떠나보내는 것이 싫어서 그런 것도 있고, 읽으면서 동시에 수많은 영감들을 나에게 쉴 새 없이 불어넣어 주기 때문에 사실 읽으면서 집중이 잘 안 된다. 조금 더 분절해서 머릿속에 넣어보려고 하는 무의식적인 발악일 지도 모르겠다.
대형 서점 말고도 곳곳에 중소형 서점과 아직 소소한 컨텐츠 들이 살아있는 도쿄 그리고 퇴근 후에 이 지루함을 찾으러 오늘 사람들. 특히 다이칸 야마에 있는 TSUTAYA BOOKS 에 가면 무엇보다 좀처럼 보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CD 음악들을 공짜로 도서관에서 열람해 보듯 자기만의 자리를 틀고 청음 해볼 수 있다. 수지가 안 맞아 버리면 재고 처분해 버리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이곳엔 수요가 끊임없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자기만의 고집으로 지켜내고 있는 것인지 일본에는 참으로 이해 안 가는 상상외의 물건들을 누군가 만들고 있다. Itunes 에도 없는 해외 가수들의 음원들을 CD로 만들어 믿고 판매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일지 궁금해지던 날이었다.
글. 사진 by Jin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