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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지마세요 May 05. 2021

설렁탕 가게에서 파는 만두 5개에 관하여

서초구엔 유명한 설렁탕 가게가 하나 있다. 평일 점심이면 늘 손님이 줄을 선다. 높은 회전율 덕분에 이 가게는 직장인들의 점심 러시를 잘 막아낸다. 이 가게는 설렁탕과 도가니탕을 주로 파는데 그중 눈에 띄는 메뉴는 만두 한 접시다. 만두 한 접시에는 초등학교 고학년의 주먹만 한 만두 5개가 나온다. 설렁탕 한 그릇에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만두를 시키겠거니 하지만 잔인하게도 이곳의 만두 한 접시는 손님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기 어렵다.


보통 이 가게에 오는 손님의 대부분은 1명~4명 사이다. 찾아오는 손님의 구성원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5명 이상의 손님은 식탁의 협소한 측면 때문에 같이 오지는 않고 오더라도 결국 책상을 나눠 앉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식탁 하나를 공유하는 구성원은 만두 한 접시를 나눴을 때 정확하게 나눌 수 없게 된다. 이 만두 한 접시를 오롯이 구성원이 공평하게 분배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만두 한 접시 즉 5개의 만두를 혼자서 다 먹는 것.


이는 설렁탕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라는 점과 이곳에 오는 손님은 설렁탕을 우선적으로 먹는다는 점을 전제로 했다. 그러니까 이 가게의 만두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은 없다고 봤다.


그렇다면 이 가게의 만두 한 접시는 무조건 남는 만두를 만들어 낸다. 두 명의 손님은 만두 한 접시에서 두 개씩 나눠 먹고 만두 하나를 남기며 세 명의 손님은 하나씩 나눠 먹은 뒤 두 개가 남는다. 이는 손님이 네 명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2인-3인-4인 손님은 만두를 남기지 않기 위해선 각각 인원수의 배수만큼 만두 접시를 시켜야 한다. 이는 결국 혼자서 만두 한 접시를 먹는 꼴과 같다.


수학적으로 보면 만두 한 접시의 만두 개수와 손님의 숫자 간의 공통된 약수가 오로지 1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가게가 굳이 만두 5개를 한 접시에 올려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게는 참고로 5개의 만두 외의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사실 내가 이 가게의 주인이라면, 그리고 만두 매출을 올린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공약수인 ‘2’로 만두 한 접시를 설정할 것이다. 그러면 잘 먹는 한 명의 손님에게도 만두를 팔 수 있고, 두 명과 네 명의 손님도 사이좋게 나누어 분배할 수 있다. 세 명의 손님이라고 해도 추가로 만두 접시를 시켰을 때의 부담이 크지 않다. 그런데 이 가게는 굳이 만두 5개를 한 접시 놓아 판매하는 것일까.


첫 번째 가설은 ‘만두는 네 명 이상의 손님을 위해 준비한 메뉴’라는 설이 있다. 줄여서 ‘만네준비설’이라고 부르겠다. 그러니까 설렁탕 가게에서 만두가 많이 팔리는 것보다 설렁탕을 위주로 판매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게는 회전율을 높여야 매출이 많아진다. 만두는 조리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이 설렁탕보다 많다. 빨리 먹고 손님을 보내, 다른 손님을 받는 게 최우선 전략이라면 만두를 삶아 파는 전략은 오히려 매출에 손해다. 따라서 만네준비설에 따르면 이 만두는 한 명이나 두 명의 손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 네 명 이상의 손님이 테이블의 정원을 꽉 채웠을 경우 ‘추가로 제공할 수 있는 메뉴’인 것이다.


하지만 네 명의 손님을 위한 ‘추가 메뉴’로서의 만두라도 만두 한 접시에 4개가 아닌 것은 의아한 부분이다. 만약 5명의 손님이 온다면 두 명, 세 명으로 테이블은 나눠질 것이고 이 경우에는 만두 한 접시를 팔기 위해 두 명의 손님에게 설렁탕을 팔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딱 4개의 만두만 한 접에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라면 두 명이나 세 명의 테이블에서도 만두를 시킬 요인이 되지 않는다.


이를 보완한 것이 두 번째 가설이다. 바로 ‘만두는 애초에 없는 메뉴’ 즉 만없메뉴설이다. 만두는 원래 팔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설렁탕 가게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측면에선 가장 설득력이 있다. 또 메뉴판에 메뉴가 모자라지 않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는 판매하지 않는 것이지만, 굳이 만두를 남기더라도 시키는 식탐 많은 손님에게 제공되는 가상의 메뉴인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만두는 조리된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 왜냐면 손님 중 일부가 만두를 시켰을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만두의 맛은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그저 그들의 주문 욕구를 충족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가설에는 필요한 전제가 있다. 만두의 조달비용이 굉장히 저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만두 주문이 들어왔을 때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만두를 주문했을 때 냉장고에서 조리된 만두를 꺼냈다. 만두의 맛 역시 설렁탕보다 훌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설렁탕 가게’라는 인식 때문에 그 맛은 기억에서 쉽게 잊혔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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