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우리 일터에는 AI 도구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일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쿼리 작성, 코딩은 물론이고 리서치에서도 챗GPT, 퍼플렉시티 등 다양한 도구를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이 사용하는 구글 닥스에서도 제미나이가 연동되기도 하고. 이쯤 되면 더 이상 이러한 흐름은 개인의 선택 차원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AI를 활용하는 역량은, AI가 직장인 모두를 집으로 보내기 전까지는, 직장인의 필수 스킬이 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문과직군 주니어"(언어와 해석 중심 업무를 하는 직군)들에게 AI가 오히려 그들을 성장을 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엑셀 팡션 쓰지 말라’는 조언처럼 박제될 수도 있겠지만, 최근 AI 툴을 쓴게 너무나 자명하지만 퀄리티는 엉망인 결과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본다.
Tool-driven behavior?
망치 들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신기한 도구가 있으면 일의 맥락에 맞지 않더라도 써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주니어일수록, 맡은 일의 본질을 고민하기도 전에 도구부터 사용하는 데 급급할 수 있다. 도구를 쓰는 것 자체에 취하고,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아웃풋에 도취되는 것은 매우 쉽다.
극단적인 비유를 하자면, 3 x 4를 계산하는 데 엑셀을 써서 =SUMPRODUCT({3,3,3,3},{1,1,1,1}) 이렇게 계산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항상 언제나 일을 잘하는 게 목적이지, 새로운 도구를 쓰는 것 자체가 본원적인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AI에게 입력할 맥락의 선을 정할 수 있는가?
더 큰 문제는 아웃풋의 퀄리티이다. 내가 봤을 때,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일은 리더가 구성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과정이다. 만약 AI에게 인간의 오리지널리티와 일의 맥락까지 온전히 입력할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첫 번째로, 주니어일수록 업무의 맥락과 구체적인 구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어렵고, 이해하고 있더라도 이를 아웃풋으로 치환할 만큼 구조화하여 내재화하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 맥락을 AI 에이전트에 입력한다는 것은 곧 영업 비밀을 업로드하는 것과 거의 같다. 이미 이런 이슈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AI 툴 사용이 일반화된 것도 사실이고, 일부 AI 툴은 상대방의 비밀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하지만,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 결국 지금 현재 안전한 선택은 감사 등에서 내 로그를 보더라도 영업 비밀은 최대한 마스킹한 수준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닐까?
최종적으로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산출물을 만들 수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AI의 산출물을 가지고 오리지널리티와 맥락을 반영해 가중치를 조정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니어일수록 이 과정을 생략하고, AI가 만든 산출물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는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단순히 기사 요약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AI는 일반적인 요약만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회사와 일의 맥락마다 어디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는 다르다.
아직까지는 편집권이 인간에게 있는 시대인데, AI 도구에 취하면 이 편집권을 너무 쉽게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 시키는 사람이 직접 AI를 돌리면 되니까,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계산기가 있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을 배우고 직접 문제를 풀어야 할까? 그냥 계산기 사용법만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힘은 여전히 중요하다.
거대담론이지만, AI 시대라고 해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는다면, 그게 바로 인간 존재 가치의 상실 아닐까?
모르겠다. 알파고 이후 모두가 AI를 통해서만 수를 둔다면, 적어도 인간에게 있어 바둑의 시대는 끝인 셈인 것만 같다.
이런 생각이 조만간 아주 낡은 생각이 되어버릴까 봐, 그리고 그걸로 조롱거리가 될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2025년 4월 현재까지는, AI를 맥락에 맞는 훌륭한 아웃풋을 빠르게 내는 도구로 활용할 생각을 해야지,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너무 안일한 접근이다. 그렇게해서는 일 못하는 것을 절대 감출수 없다.
"C레벨 보고용으로 더 풍부하게 써줘", "더 간결하게 요약해줘" 같은 명령어 정도로 프로의 세계를 헤쳐나가겠다는 건 너무나도 가벼운 생각이 아닐까?
언제나 중요한 건 AI를 쓰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걸로 더 일을 잘 하는 것이다. AI는 분명 빠르지만, 결국 일을 잘한다는 건 본질적인 맥락 속에서 ‘판단’과 '결정'을 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AI로 인해 내가 속한 조직에서 일을 잘한다는 건 무엇일지, 일에 있어 내 관점과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데 게을러지고 있다면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