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열화당, 2012)

by 진성욱

스레드를 켜는 순간, 방금하던 생각들이 휘발되었다. 수백개의 이미지와 영상이 보내는 자극에 나는 잠시 맥락을 잃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잠깐의 환기였는데 길은 잃은 듯 피곤하다. 나와 무관한 이미지들이 삶으로 들어온다. 광고의 유혹, 뉴스의 당위, 인플루언서의 권위, 자본의 설득. 무질서하게 들어온다. 소셜미디어가 일상을 잠식했다.


모두 이미지의 실재감 덕분이다. 카메라로 표현되는 모든 장르는 유화이다. 사진, 영화, 뉴스, 방송, 소셜미디어. 이곳에는 탐나는 이미지와 욕망이 있다. 스마트폰이 있다면 누구나 유화를 그릴 수 있다. 소셜미디어는 각자의 갤러리이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이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욕망을 드러내고 소비한다. 사람들은 이미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이미지는 외형과 분위기, 지위와 관계, 위치와 시간을 드러낸다. 우리는 연속 된 이미지를 보며, 생산자의 정체성을 유추한다. 브랜드가 기능하는 것과 같이, 소셜미디어의 아이덴티티는 유력하다.


알고리즘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준다. 웃음을 원하는 이에게는 유머를, 정치를 원하는 이에게는 당위를. 이곳이 말해주는 것은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알고리즘은 계속 자아를 욕망하게 한다. 존 버거는 유화와 카메라로 욕망하는 사회를 조망했다. 발터 벤야민에게도 카메라는 위협적이지만,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2010년, 이집트 사람들이 아랍의 봄을 바라며 광장으로 모였다. 뉴욕에서는 월가를 점령하기 위해 모였고, 파리에서는 테러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촛불들이 모였다. 소셜미디어로 세상과 일상이 연결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어렵다. 세상의 일들이 일상으로 들어올 때, 사람들은 타자의 언어로 인해, 개인의 언어를 잃어간다.


존 버거는 도시를 떠나 농가로 갔다. 그에게 농가는 배움이었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이야기꾼으로 살았다. 도시에 사는 예술가 제니 오델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에서, 관심경제에 뺏긴 관심을 되찾는 과정에 대해 말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그는 공원으로 찾아가 새를 관찰 한다. 소셜미디어가 아닌 실제세계의 시공간에서. 읽고 걷고 만든다. 미디어로 사라진 언어를, 몸을 통해 나의 언어를 확인한다. 먹는 것에 따라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에 따라 먹는다. 읽은 것에 대해 쓰고, 쓰기 위해 다른 생각들을 읽는다. 균형을 찾는 몸은 분주하다. 분주하게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