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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찾아오는 이유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는 분일까?

by 진소은

고난을 지나며 고난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하나님 원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나님이 내가 원래 알던 그 하나님이 맞나? 하는 의문도 품고 혼란을 겪기도 했다. 아직 고난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았지만 고난 속에서 느낀 것들을 나눠보려 한다.


고난 또한 하나님의 계획과 허락 아래 오는 건 맞지만 하나님이 고난을 주셨다고 생각하기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조금 다른 관점이 필요한 것 같다.


나한테 죄가 많아서 고난이 왔다거나 나한테 바뀌라고 고난을 주신 게 아니다. 고난은 내 연약함을 사탄이 틈탈 때 오는 거다.

사탄이 내 연약함을 이용해서 나를 잘못된 길로 유혹할 때 내가 유혹에 빠져 넘어진 거다.


사탄의 악함과 나의 연약함으로 인해 생긴 일(=나에게는 고난)에서 또한 하나님은 날 위로하시고 회복하시고 성장시키시고 사명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악한 사탄한테 넘어질까봐 분명 연약한 영역을 성장시키라고 그 유혹에 넘어지지 말라고 늘 이야기하신다.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넘어진 건 나였다.


고난을 피하는 방법

고난의 이유가 여러 가지지만 그중 방금 언급한 것처럼 내 연약함과 사탄의 악함으로 인해 일어나는 고난은 피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말씀 앞에 솔직하게 나를 비춰봐야 한다. 내 연약함을 늘 되짚어봐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기도, 포장된 기도를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핑계 삼아 사리사욕 챙기지 말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도 다 아시지만 사탄도 다 안다.

하나님은 내 연약함도 사랑하시고 품으시는 분이지만 사탄에게 내 연약함은 넘어뜨리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다른 이를 통해 주신 위로 "상처 입은 치유자"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이 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이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너무 싫었다.

내 상처도 아픈데 내 상처로 남의 상처를 치유하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러던 중 한 간증 프로그램을 보고 큰 위로를 받아 눈물이 났다. 딱 나한테 주시는 말씀처럼 느껴졌다.


"사실 제 고난에 대해 간증을 하는 것도 꺼려졌어요. 그래서 외부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기도를 하다 보니 많은 선물을 받고 완벽한 삶을 살고 박사도 받은 이런 사람이 상담하는 게 무슨 은혜가 될까.. 상처 입은 이들 앞에서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이 용기를 주셨어요. 용서의 영으로 일어나서 고백하자. 사람들에게 내가 정말 아픈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이유,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하자. 어떻게든 살아나셔야 한다, 같이 살아나서 다른 사람도 같이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용기를 갖고 나아가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분이 자신의 상처를 다른 이들 앞에 꺼내는데 오히려 홀가분하고 기뻐 보였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할 땐 위로가 안 되고 오히려 상처가 되지만, 모든 고난의 길을 다 지나온 장본인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혜인 것 같다.


물론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그만큼 하나님 앞에서 회복이 되고 용기 주셔야 가능한 일이지만 내 상처가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다른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 주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분이 너무 기뻐 보였다.


고난을 왜 허락하셨을까

그리고 고난을 지나온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연단을 시키실까 왜 허락하셨을까 NO 하면 되는데 그러실 수 있는 분
인데 왜 결재서류에 YES를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 완벽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걸 통해 타인을 긍휼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그들의 삶에 들어가서 볼 수 있게 된 것이 나쁘지
않았어요. 가끔은 내 삶을 채워주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 그 고난에 대해 허락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던 사람이 이후에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고난 속에 있던 내가 갖고 있던 의문점이었다. 사탄이 내 연약함을 가지고 나를 넘어뜨리려 할 때, 충분히 막을 수 있으시면서 왜 그냥 두셨을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뻔히 아시면서 왜 사탄의 악행을 허락하셨을까.

그런 나에게 이분이 나눠주신 이야기가 위로가 됐고 공감도 됐다.


고난이 내 인생에 찾아온 게 너무 아프지만 나에게 위로와 회복을 주시고 그 안에서도 은혜와 감사가 있다는 걸 깨닫게 하실 때, 전에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될 때, 어느 날에는 그 덕분에 성장한 나를 볼 때, 주님을 찾을수록 더 채워주시는 걸 느낄 때면


정말 '나쁘지 않네' 싶기도 해서.

여전히 다 나은 건 아니지만 아주 가끔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회복의 증거이기도 하니까 그럴 때 너무 감사하기도 하다.


내가 더 많이 성장해서 이 고난의 상처가 보이지 않을 만큼 크고 나면 "아! 그 일 덕분에 내가 이렇게 더 성장했구나! 너무 기쁘다 너무 감사하다! 고난이 유익이라더니 정말이었네!"라고 고백하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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