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함은 악용되기도 한다
나는 SKT 텔레콤을 이용하는 고객이다. 이번에 SKT 사건에 연관된 피해자이기도 하다.
나랑 마찬가지로 SKT 이용자인 예랑이랑 퇴근 후 집에서 가장 가까운 SKT 대리점에 방문했다. 얼마 전, 요금할인받기 위해 약정 연장했던 걸 취소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로 방문한 대리점에서는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외 다른 업무 못 받는다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대리점 내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단 안된다고 하니 발길을 돌려 또 다른 근처 SKT 대리점으로 향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대리점에서는 고객이 서너 팀 정도 있었다. 우리가 사는 동네가 평균 연령대가 높은 읍이어서 그런지 고객이 다들 어르신이었다.
유심보호서비스를 신청하러 오신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네 약정 해지하러 왔는데요"
직원은 우리한테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냐 물었더니 최소 30분 넘게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어떻게 해? 근처에 또 다른 SKT 대리점이 없는걸. 우리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어르신들이 직원에게 물었다.
"이거 가입만 하면 되는 거예요?"
"네 가입하시면 돼요"
"안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꼭 해야 해요?"
"하시는 게 좋아요~"
직원들은 고객들을 응대하던 중에 우리한테 한마디 건네기도 했다.
"약정해지하시는 고객님! 고객센터로 전화하셔도 하실 수 있어요 고객센터 전화해 보세요 여기 오래 걸려요"
"이미 해봤는데 퇴근해서 내일 다시 해야 할 거 같아요"
우리도 고객센터에 전화는 이미 해봤고, 우리가 퇴근 후 전화했듯 그들도 퇴근해서 전화연결이 안 되는 상태였다. 그래서 직접 온 거였는데.
"아..."
그 뒤로 직원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중간에 50대로 보이는 알뜰폰 고객도 왔다.
고객센터 전화 안 되어서 찾아왔다고 하셨다.
"알뜰폰은 저희랑 다른 지점이라 그쪽에 문의하셔야지 저희는 다른 곳이에요"
직원의 말에 고객은 황당하다, 이해 안 된다는 듯이 받아쳤다.
"SKT 이름이 같은데 왜 안 달라요? 그럼 어디 가서 해요? 연락이 안 되는데"
"SKT망을 써서 이름이 들어간 거고, 다른 곳이에요 여기서 안 돼요 거기 가서 하세요"
이해가 안 됐다는 고객과 피곤하고 지친 직원의 대화가 두 번 정도 더 오가다가 결국 고객이 터덜터덜 가게를 빠져나갔다.
내 서브폰도 SKT알뜰폰인데...
오늘 어플로 유심보호서비스 가입하려고 시도해 보니 로그인이 안 되어서 답답함을 느끼던 중이었다.
'하.. SKT알뜰폰 고객센터 연결 안 되기로 유명한데... 이참에 그냥 다른 알뜰폰으로 갈아타야겠다.'
우리가 가게에 온 지 20분쯤 됐을까. 어르신 고객들이 다 나가시고 우리만 남았다. 직원들은 우리를 부르지 않고 본인들 모니터 보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뭐지? 우리가 있는 걸 잊었나? 아직 업무 정리가 덜 됐나' 갸웃갸웃하던 차에 더 연차가 있어 보이는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뭐 때문에 오셨다고요?"
"5일 전에 약정 연장한 거 해지하려고요"
"위약금 있어요 많이 나와요"
"일주일 전에 해지하면 위약금 없다고 했는데요?"
"그건 확인해봐야 해요 저희는 몰라요"
"그럼 확인해 주세요"
"어디서 하셨는데요?"
"시내에서 했어요"
"일단 신분증 주세요"
예랑이가 모바일신분증을 건네자 직원은 단칼에 거절했다.
"모바일 신분증은 안 돼요"
왜 안되냐는 말에 그저 "시스템이 아직 없어요 저희는 안 돼요"라는 말만 반복하며 "약정 연장하셨던 곳 가서 해지하세요"라고 했다.
예랑이랑 나는 헛걸음에 시간 낭비를 한 것 같아서 약간 기분이 안 좋았지만 그냥 시내에 가기로 했다. 그냥 구구절절 다 치우고 봐도 태도 자체가 해주기 싫어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대리점 직원들도 무슨 잘못이 있겠나... 이 일로 더 바빠지고 스트레스받고 고객 민원과 짜증을 대신 듣고 있어서 얼마나 지칠까 생각하며 그냥 넘겼다.
40분을 운전해서 시내로 갔다.
시내 대리점에도 사람이 꽤 있어서 의자에 앉아서 우리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유심에 고객님 이름, 주민번호 이런 정보가 적혀있지는 않아요. 유심은 핸드폰 쓸 수 있게 해주는 칩이에요."
어르신 부부가 직원에게 뭐라 물었는지는 못 들었는데 직원의 대답이 너무 황당해서 귀가 쫑긋 세워졌다. 예랑이도 들었는지 예랑이랑 나랑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지금 뭐 유심을 바꾸라고 하던데? 유심에 정보가 있어서 바꿔야 한다던데요?"
"유심은 그냥 칩이고, 안에 핸드폰 쓸 수 있는 정보가 저장되어 있는 거예요. 도용하면 유심에 있는 정보를 누가 볼 수도 있다는 건데, 고객님의 정보가 유심에 적혀있지는 않아요."
"(무슨 말인지...) 그럼 유심을 안 바꿔도 되는 거예요?"
"유심보호서비스 해드리면 보호가 되는 거예요"
"(갸웃갸웃) 그래요?"
헐.... 저건 엄연히 말장난 거짓말 아닌가?
당연히 유심에 글자로 적혀있는 건 아니지 하지만 내부에 정보가 다 들어가 있는 건데... 말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닌데, 결론적으로는 틀렸다.
어르신들이 잘 모르신다고 저런 식으로 응대하나?
너무 황당했다.
분명 어르신은 뉴스에서 유심을 교체해야 한다, 개인정보가 해킹당한 거다 등등 어떤 정보들을 듣고 대리점에 오신 걸 텐데, 직원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유심은 칩일 뿐이라느니 보호서비스하면 보호해 드린다느니 천연덕스럽게 말하니까...
어르신은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 채로, 뭔가 찝찝하지만 직원이 괜찮다고 하니 그저 "그래요?" 하시고 아내분과 나가셨다.
예랑이랑 나랑 동그랗게 눈을 뜨고 서로 눈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예랑이도 나랑 같은 생각인 듯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어르신 두 분 쫓아가서 아니라고 유심에 개인정보가 다 들어가 있어서 개인정보도 해킹된 거고 그나마 할 수 있는 노력으로 유심 교체를 하셔야 하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못 그랬다. 용기가 없었다.
괜히 오지랖 부리는 거 아니야?
대화를 처음부터 다 들은 것도 아닌데 내가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괜히 끼어들었다가 어르신이랑 직원이랑 다툼 나거나 하면 곤란해지는 거 아니야?
등등.. 여러 생각들이 나를 못 일어서게 막았다.
그리고 직원이 바로 우리를 불렀다.
그래서 예랑이는 '읍에 있는 대리점에서는 안 된다고 했던' 모바일 신분증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약정을 해지했고 (우리 둘 다 다른 통신사로 바꾸려고) 나는 아직 약정 기간도 남아있고,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어서 해지하면 10만 원이 넘는 핸드폰 위약금에, 인터넷은 할인이 사라진 원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지금 SKT에서 위약금 받는 걸로도 말이 많아서 어쩌면 위약금 안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위약금 내고 해지해버리면 나는 해당 안된다며 돈을 안 돌려줄까 봐 선뜻 위약금 내기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내 정보를 지키고 불안함에서 벗어나는 게 더 나아서 그 돈 아까워도 그냥 내면 그만이지만, 할인이 사라진 인터넷 요금은 부담이 컸다... 게다가 무려 2년을 더 내야 했다.. ㅜㅜ
아 진짜 SKT 이번 일 때문에 우리 시간 쓰고 체력 쓰고 정보 찾느라 머리 지끈지끈 아프고 에너지 쓰고... 근데 보상해주기는 커녕 위약금 내라고 하고 있으니 정말 하루빨리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고 싶었다...
일단 예랑이만 약정해지하고 나는 상황을 두고 보기로 했다. 아까 읍에 있는 SKT에서는 일주일 이내여도 5일 썼으니 위약금 많이 나온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지만 3000원도 안 되는 위약금을 내고 약정을 해지했다.
절레절레...
SKT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예랑이랑 그 어르신 두 분 이야기를 했다.
"아까 어르신 고객이랑 직원 대화 들었어? 정보가 부족한 사람한테 말장난으로 속인 거 아닌가!?"
예랑이도 나랑 같은 생각이 맞았다.
그 직원을 응대가 더 인상 깊게 남았던 건, 우리가 5일 전에 약정을 연장할 때도, 그 어르신 고객들을 응대할 때도 그 직원이 정말 너무너무너무 친절했기 때문이다.
"역시... 친절하다고 좋은 사람이 아니야. 친절은 자연스레 나오는 인품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도구가 되기도 해."
일단 내 서브폰이 쓰는 알뜰폰을 다른 통신사 알뜰폰으로 옮기기 위해 편의점 몇 곳에 들렀지만 남아있는 알뜰폰 유심은 SKT 뿐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왔다.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아까 그 어르신들을 따라나가서 도움을 드렸어야 했나...' 이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괜찮지 않은 거 같은데 괜찮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듯 나가시던 그 두 분이 자꾸 떠올랐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내가 거짓 정보 준 것도 아니고 속인 것도 아닌데 그냥... 두 분이 잘못 알고 계신 걸 바로 알려드리지 못한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같은 상황이 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까?
...... 아니 모르겠다. 처음부터 대화를 들은 게 아니라서 상황도 잘 모르고 그 어르신들의 마음도 모르는 내가 괜히 나서는 게 아닐까 싶어서, 호의가 오지랖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라 여전히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그분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냥 안심하고 집에 가셨을까?
제발 그 직원 말 믿지 마시고 자제분들이나 다른 곳에서 바른 정보를 얻어서 최선의 선택을 하셨길 바랄 뿐...
그나저나 나도 해결된 게 하나도 없다.
서브폰 알뜰도 아직 SKT고, 메인폰은 약정 1년 남은 SKT다.... 휴 안 그래도 신경 쓸 거 많은데 이게 뭐람...
큰 피해가 없이 다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나도, 오늘 만난 어르신들도, 다른 고객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