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가구 추가금 사건
한창 신혼집 가구 들여오고 꾸미는 중에 서브 홈바 주문을 했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아파트라 추가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추가금을 내기로 했다. 4층까지 계단으로 옮겨야 하니 당연히 추가금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남자친구가 신혼집에 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출근하게 되어서 내가 신혼집에 가있었다.
기사님이 홈바 상판을 먼저 갖고 올라오셔서 현관문을 열어드렸다. 50대~6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 드신 분이 오셔서 좀 놀랐다. (아버지 또래 같은데 이렇게 짐을 옮기면 얼마나 힘드실까 싶었다.)
1층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셔서 알려드렸는데 기억을 못 하고 메모에 적어달라고 하시길래 짐 들고 비번 치시면 힘들고 번거로우실 것 같아서 그냥 같이 내려가서 문을 열어드리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내려가서 그분이 운반하시는 걸 보게 됐다.
상판 다음으로 옮길 짐은 엄청 큰 메인 몸체였다. 가구에 밧줄 같은 걸 감아서 등에 매고 트럭에서 내리시는데 바닥도 얼어서 더 힘겨워 보이셨다.
어찌어찌 등에 매고 1층 현관까지 오셨는데 아버지 뻘 되는 분이 이 추운 날씨에 땀 흘리며 짐 옮기시는데 나도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근데 남자친구랑 짐 옮기면서 느낀 게 남자와 여자의 힘의 차이가 있어서 내가 도우려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이분은 등에 업고 오시니까 도와드릴 것도 문 열어드리는 거밖에 없었다. 괜히 죄송했다. 이분은 돈 받고 하시는 건데도...
배송기사님이 가구를 맨 채로 1층 현관을 통과하려는데 뭐가 걸리는지 통과가 안 된다고 했다. 이리저리 봐드렸는데 크기 딱 맞는데 왜 못 들어오시는지 알 수 없었다. 스쿼트 자세로 등에 가구를 싣고 뒤로 갔다가 다시 왔다가 몸을 더 낮췄다가 올렸다가를 반복하다 결국 바닥에 내려두고 손이 너무 시리다고 힘들어하셨다. 그리고 끌차 같은 걸 갖고 와서 그걸 싣고 다른 각도로 해서 현관을 통과했다.
그리고 계단 앞에서
"이거 등에 매고 올라가야 하는데 지금 등에 못 매서 굴려서 가야 돼요.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저 혼자 해야 하는데 굴려서 가면 더 힘들어요."
이러시길래
'헉 너무 힘드시겠다...' 싶어서 걱정이 됐다.
나도 여러 번 남자친구랑 오프라인에서 산 가구를 직접 계단으로 운반한 경험이 있어서 진짜....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 잘 아니까ㅠㅠ
배송기사: "그렇게 하면 추가금 받아야 해요"
???
등에 매야하는데 현관에서 뭐가 걸려서 등에 못 매고 끌차로 들어왔고 등에 매야하는데 여기서는 등에 맬 수가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혼자 옮겨야 해서 굴려서 올려야 하는데 그게 등에 매는 거보다 힘들어서 추가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배송기사분이 힘들어하시는 걸 보면서
'아 그냥 여기 두시라고 하고 토요일에 냉장고 올 때 그 사다리차에 돈 좀 더 드리고 올릴까. 이거 옮기다가 저 연세에 허리 나가시면 어떻게 하시나..' 싶어서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추가금 이야기를 하시니 약간 확 깨는 마음이긴 했다.
'이미 계단으로 옮기기로 해서 추가금이 붙었는데???' 싶었지만 '그래 굴려서 가는 건 계획에 없던 거다 보니 추가금을 받나 보지...' 생각하고 "아, 네~"라고 했다.
추가금 얼마냐고 물어보려다가 아버지 뻘의 기사님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거기서 돈 따지는 건 아닌 것 같아서 나중에 과도하게 부르시면 그때 이야기해보자 싶어서 일단 넘어갔다.
배송기사님이 계단에서 큰 홈바를 굴려서 올리시는데 순간순간 손이 너무 시리다면서 손 호호 불면서 하시길래 핫팩이라도 드릴까 싶어서 4층에 올라가서 핫팩을 뜯었다. 따뜻한 곳에서 더 빨리 따뜻해지니까 집 안에서 막~~~ 흔들고 이불속에도 넣고 해서 조금 따뜻해졌을 때 다시 계단으로 나갔다. 어느새 4층까지 거의 다 올라오신 상황이었다.
우리 집 현관을 통과하고 나서 바로 핫팩을 드렸다.
"따뜻하실지 모르겠지만 쓰세요 아니면 따뜻한 물에 손 씻으셔도 돼요."
"(핫팩으로 손 녹이면서) 아 그러면 동상 걸려요~"
"아 그래요? 그럼 핫팩이라도..."
그리고 주방까지 질질 끌고 와서 드디어 홈바 놓을 자리에 도착했고 박스를 뜯으면서 말하셨다.
"어우 너무 추워요. 원래 이렇게 손이 시리지 않은데 날씨가 너무 춥네요. 손이 이렇게 시린 적이 잘 없는데..."
"그렇죠 요즘 날씨가 너무 추운 거 같아요"
"영하 17도래요"
"아 그렇구나"
"너무 추워요. 이러면 추가금 있어요"
"네?"
"날씨 때문에"
아까 굴려서 옮기는 거 추가금 받는다고 할 때는 그냥 넘어갔는데 날씨 추가금???? 이때는 좀 황당했다.. 아니 가구 배송하는데 추우면 추가금을 내야 하나? 물론 이번 주가 최강한파라고 했지만 날씨 추가금은 생판 처음 듣는 말인데? 사전에 안내되어있지도 않았다.
요즘 금액은 금액대로 오르고 이전에는 당연하게 포함되어 있던 걸 분리해서 옵션사항으로 넣으면서 추가금액을 받는 경우들이 요즘 너무 많아졌다 보니 사실 추가금에는 넌덜머리가 난 상태였다.
근데 이번에도 또? 엘리베이터 없어서 추가비용 받는 건 납득이 가는데 굴려서 올라간다고, 날씨가 춥다고 추가비용 달라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으니 함부로 따지지는 않는 편이라... 일단은 "아 그래요?"라고 했다.
슬쩍 인터넷에 가구배송 날씨 추가금이라고 검색해 봤는데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황당... 내가 만만해 보였나?
그분이 설치를 다 끝내고 나가면서
"계좌번호는 어디로 보낼까요?" 그러시길래
"네 이전에 연락하시던 번호가 남편 번호인데 남편한테 보내시면 돼요."라고 말하고 뒤에 덧붙였다.
"추가금도 남편이랑 이야기하시면 돼요."
혹시 내가 마음 약해 보여서, 호구 같아 보여서 나한테 추가금 추가금 남발한 거 아닌가 싶어서 일부로 '남편'한테 이야기하라고 했다.
"그럼요 당연히 계속 그 번호로 연락했으니 거기에 이야기해야죠"
기사님이 가시고 좀 있다가 남자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설치 잘 됐어? 어때?"
"설치 잘 됐어 근데 있잖아..."
남자친구한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추가금 이야기..!!!
"너무 황당하지 않아? 날씨 추가금이라는 게 있어?"
"농담하신 거 아니야?"
"농담 아니야 진심이었어"
"그래? 근데 나한테 계좌번호 보내셨던데 추가금 이야기 없이 원래 이야기했던 금액만 말하셨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더 말 없어? 그렇게 끝났어?"
"응 보내고 끝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어이가 없었다
본인 힘들까 봐 걱정하고 핫팩도 챙겨주고 하니까 내가 호구처럼 보였나 보다.
혼자 타지에서 자취하고 직장 생활하면서 나쁜 놈들, 더럽고 치사한 놈들도 많이 겪어보며 세상 참 더럽다는 거 많이 배웠는데 이 사람도 역시나였다.
이렇게 어이없는 인간들을 만날 때면 점점 내 동정심도 배려심도 이타심도 다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을 많이 마주한다. 인류애 상실의 과정이랄까...ㅎㅎㅎㅎ
사회에서 이런 걸 처음 배워갈 때처럼 이 일이 나한테 충격적이라거나 세상이 왜 이렇게 악하나 싶어 두렵다거나 그런 생각은 전혀 없지만 너무 열받고 황당했다. 홈바 배송받은 사람은 나랑 남편 둘 다인데 나는 추가금이 있고 남편은 추가금이 없었다.
사회초년생 시절, 뼈저리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사람은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인데, 오늘도 역시나였다. 배송기사 걱정하고 도와주고 싶어 하고 괜시레 미안해졌던 내 마음은 모두 그 사람에게는 '돈 벌 건수'였던 거다.
가구배송하면서 말도 안 되는 추가금 요청하는 그 뻔뻔함과 앞에 까는 밑밥들도 참...
돈이 중요한 세상에서 벌어먹기 위한 방법이겠다 싶으면서도 남의 마음을 이용해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싶고^^ 내가 진짜 마음 약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이었으면 그냥 돈 냈을 덧 아닌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누울 자리 보며 눕는 사람들 틈에서 가구 배송 굴려서 추가금, 날씨 추우니까 추가금처럼 이런 황당한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어도 인류애는 잃고 싶지 않는데 쉽지 않다. 이게 사회에 찌든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싶다.
이럴 때면 '나도 그냥 동정심 배려심 다 버리고 막살까.' 싶다가도 마음을 다잡는다.
외강내유, 외유외유 말고 외유내강..!
다른 사람의 좋은 마음 이용해서도 돈 벌어먹으려는 세상이지만, 그거 때문에 내 인류애 다 버리면 내가 이 세상에 지는 거 아닌가?! 인류애 없이 이 세상이 어떻게 이어지겠어. 인류애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마음인 걸! 이 안에서도 인류애 잃지 않고 이해하는 넉넉한 마음과 세상에 상처받지 않는 강하고 지혜로운 마음 품고 살아가서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