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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촌자 Mar 04. 2020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

은하수 데스밸리

무지(Badland)를 지나간 자와 황무지를 찾아 들어와 살아간 자가 있었다.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간 49ers는 데스밸리를 지나갔고 하얀 소금밭을 보고 돈맥을 감지한 보락스 컴퍼니의 자브리스키와 황폐한 사막에서 혹성 같은 미지의 땅을 발견한 조지 루카스, 그들은 이 곳 황무지를 찾아 들어왔다.

Pacific Coast Borax Company. 멀리 뒤쪽으로 떨어진 산과 이쪽 언덕 사이에서 에어 울프가 날아 올라올 것 같은 분위기의 원근감은 요근래 느껴보지 못했던 낯선 멋짐. 


당시 이곳에서 보락스를 정제한 후 철도역이 있는 모하비까지 20 마리 노새가 끄는 마차(20-mule team wagon)를 이용하여 제품을 수송했다. 20마리 노새라고 하지만 사실은 18마리 노새와 2마리의 말이었다. 하기사 그게 뭐 중요하겠나. 

해저였던 바닥이 융기되면서 만들어진 지형 덕분에 소금과 함께 보락스가 공장 주위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래서 보락스는 재료비보다는 운반비가 비즈니스 결정요소.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보락스가 발견되자 이곳은 문을 닫는다.

당시 이 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멕시코인들이 아니라 중국인들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보락스 컴퍼니가 운영을 시작한 것이 1872년.  황금을 찾아 이민 온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와보니 금을 캘 곳은 없고 딱히 할 일도 없고 먹고살자면 뭐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루 일당 1불 30전을 받고 거기서 숙박비와 식비를 공제한다. 1890년의 $1이면 2020년 $29불 수준. 그러니 하루 $37.7불을 받고 일을 한 것인데 물가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던 중국인들은 뉴딜 정책으로 시작된 후버댐 공사에 투입되는데 이 당시엔 임금 지불 체계가 어느 정도 정상화되었었는지 중국인들이 그 돈을 가지고 샌프란시코로 돌아갈 수 없도록 라스베이거스를 만들어 번 돈을 다 탕진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날짜를 확인을 해보니 라스베이거스가 시로 승격된 것은 1911년이고 후버댐 공사가 완공된 것은 1936년. 그러니 라스베이거스가 중국인들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다만 중국인들의 미국에서의 이민역사가 깊고 굵다는 정도는 인정해야겠다. 

루카스가 스타워즈의 노다지를 발견했던 황금 계곡과 아티스트 팔레트 진입로. 우주선이 경주하는 모습을 담아도 될 만큼 넉넉한 벌판의 광활함이 낯설다.

아티스트 드라이브를 따라 올라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각양각색의 바위 언덕.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퍼다 놓은 듯한 색상인데 각종 암석의 산화작용의 결과물이다.

팔레트 바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알투디투와 시스리피오가 거닐었던 협곡이 보인다. 멀리서 다가오는 자동차가 성냥갑보다 작아 보이는 것이 마치 미니어처 같다. 그 당시 저걸보고 미니어처 방식의 영화 촬영을 떠올렸을까? 


영화 연출적인 역량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알려져 있지만 비즈니스 감각은 탁월했던 조지 루카스. <대부>의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 <ET><쥐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한때 할리우드 3인방으로 불리며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는데 실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과 영화 공동작업을 하기도 했고 스필버그 감독과는 <인디아나 존스>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공동 제작을 하기도 한다. 코폴라 감독과 제작한 영화가 폭망 하는 바람에 동업 관계를 청산하고 독립 영화 <청춘 낙서>를 제작했는데 당시는 이전 영화가 폭망한 뒤라서 자본이 없어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이름을 엔딩 크레디트 자막으로 한 명 한 명 이름을 기록했다. 요즈음은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 올라가는 것이 정석처럼 되어 있는데 루카스 이전엔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청춘 낙서>가 흥행에 성공을 하여 오랜 시간 꿈꿔왔던 스타워즈 제작을 위해 루카스 필름을 설립하여 스타워즈 에피소드 4를 제작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 단 두 가지 영화로 할리우드 영화감독 중 최고의 부자에 올랐는데 그 사연을 보면 기가 막힌다. 스타워즈 시나리오가 워낙 엉망이어서 모든 영화사에서 거부를 당한 뒤 인맥을 통한 압력으로 20세기 폭스에서 스타워즈 제작을 하는데 제작사의 제작 예산편성이 넉넉하지 않아 감독 보수를 포기하고 대신 영화 수익의 40% 지분과 프랜차이즈 판권을 받는다. 그런데 이 영화가 개봉과 동시에 대박이 난 것. 이후 스타워즈는 승승장구하고 조지 루카스는 2012년 루카스 필름과 관련 기업 일체를 디즈니에 40억 달러 (4조 원 규모)에 넘긴다. 좋은 것(감독 보수)을 버리고 훌륭한 것(지분과 판권)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마도 이 또한 그가 데스밸리를 오가며 체득한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것으로 향하기 위해 좋은 것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마라. - 존 록펠러
Do not be afraid to give up the good for the great.

대자연을 보다 보면 가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에피소드 1편이 아니라 4편을 처음 제작한 것도 데스밸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49ers 시절 Bennett-Arcan가족이 금을 찾아 길을 떠나 데스밸리에서 곤경에 처해있으면서 만리와 로버트를 한달 가량 기다리면서 죽다가 살아났으니 이곳은 죽음의 땅이자 새롭게 태어난 곳인 셈. 만리 일행이 돌아오지 않으면 이곳에서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던 것. 스타워즈 또한 스토리 흐름상 당연히 에피소드 1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스토리의 흐름을 포기하고 가장 핵심이 되고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에피소드 4부터 시작한다. 데스밸리는 조지 루카스에겐 더 이상 죽음의 땅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게이트웨이였다. 그래서 “아주 먼 옛날 은하계 저편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로 시작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다. 왜 은하계 저편이냐고? 그것이 궁금하다면 데스밸리에 와 보시라. 이곳은 육안으로 은하계 저편에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가 보이는 어두운 밤하늘을 가진 지구 상의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니까.  

상상력만으로 스타워즈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본 것과 들은 것을 토대로 한 것이고 상상력은 거들었을 뿐이라는 것을 이 곳에 와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지 루카스가 만든 히트작은 딱 2개,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 데스밸리 사진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그림이 떠오르는 건 또 뭘까?

아티스트 팔레트를 빠져나오면 데스밸리의 광활함을 느낄 수 있는 도로를 만날 수 있다.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스타워즈 촬영지 모래언덕이 나온다.

바람이 불어 날아와 계곡에서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쌓인 모래언덕. 그래서 알갱이가 곱고 가볍다. 


메스퀴트 나무가 많아서 메스퀴트 모래 언덕이라고 불리는데 봄부터 여름 사이에 콩깍지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다. 사막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스토브 파이프 우물이 있으니 근처 수맥에서 이들에게 수분을 제공하지 싶다. 사람이 자는 데는 수맥을 피해야 하지만 생명이 살아가는 데는 수맥이 목숨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외치는 “I’ll be back” 장면과 오버랩되어 깜짝 놀랐다.

스타워즈의 또 다른 촬영지. 이곳에 존재하는 3가지 모래언덕 중 별 모양 언덕이 멀리 보인다. 나머지 2가지는 뭐냐고? 그야 평탄 언덕과 경사 언덕이다. 

화석이 되어 버린 아주 오래된 메스퀴트.

그런가 하면 이제 막 꽃을 피우며 열심히 크고 있는 메스퀴트도 있다. 

꽃을 피워 열매를 기다리면서 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마침 이 곳은 봄철 바람이 엄청나다. 그 바람이 모래를 날려 사막을 만들 정도이니 그 바람을 이용하는 식물에겐 그 바람이 고맙다. 첫날 저녁엔 우렁찬 바람 소리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으니 잠귀가 예민한 분들은 귀마개를 미리 챙기는 것이 좋겠다. 

메스퀴트 모래 언덕에서 고개를 돌리면 투키산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파노라마 사진 1장 만드는데 사진 5장을 합쳐야 했다.

이상하게 이곳에선 황량함에 실망하기보단 광활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가족들이 사막에 나와서 석양을 보며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백발 노부부의 손자로 보이는 녀석은 무엇이 그리도 불만스러운지 손으로 모래를 퍼올리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저 나이 또래 애들을 강아지라고 부른다. 세상 모든 강아지는 다 귀여우니까. ^^

밤이 되면 하늘을 빽빽이 채워 한동안 잊히지 않을 별들의 반짝거림을 어김없이 볼 수 있다. 밤하늘이 더 예뻐지는 3월부터 9월 사이에 오시는 분들은 은하수의 향연을 놓치지 말고 챙기시라. 북반구에서 4월, 5월, 6월은 은하수 보기에 특히 좋다. 5월이 되면 밤 10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장장 5시간 동안 은하수가 가로눕기부터 물구나무서기까지 갖가지 모습을 보여주니 이 기간 동안 방문하시는 분들은 사진 찍을 준비 잔뜩 하고 가시라. 준비는 별다른 것 없다. 어떤 전경을 놓고 은하수를 사진에 담을 것인지만 생각해 두시면 된다. 한국은 경상북도 영양군 반딧불이 공원이 어두운 하늘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니 5월엔 가족과 함께 밤하늘 구경을 계획하셔도 좋겠다. 

데스밸리 계곡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데스밸리 국립공원 내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본토에서 가장 넓은 국립공원 (330만 에이커, 참고로 경기도 면적이 252만 에이커)이니 빠져나가는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49ers 들이 지나온 길을 따라 나오니 직선으로 뻗어있는 190번 도로가 휘어진 듯 곧은 듯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다. 

曲則全, 枉則直 (곡즉전 왕즉직) 굽으면 온전해지고, 구부리면 곧게 되며
窪則盈, 幣則新 (와즉영 폐즉신) 파여있으면 채워지고, 해지면 새롭게 된다.
- 도덕경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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