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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23. 2024

건축학도 11.

설계수업

 혜진은 어제저녁 12시 즈음 기숙사 통금 시간에 거의 맞추어 들어왔다. 오늘 있을 설계수업에 또 뭔가 하나 크리틱 받을 내용을 적어야 하고, 또 지난 시간과 달리 변화된 모습을 가져와야만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5년간 해오는 수업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진도가 빨리 나가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해 온 만큼 크리틱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해서 하지 않으면 수업은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이 또한 모든 과정이 교수님께 보이는 성실함의 태도로 성적도 이어지기 때문에 며칠 사이 디벨롭이 없다는 건 모든 학생들에게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 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는 한 번쯤은 다들 못했다고 오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찌나 다들 신기한지, 수업시간이 있는 당일에는 꼭 뭔가를 만들어 내 수업시간에 자신의 차례에 빈손으로 오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혜진도 마찬가지였다.

 공식적으로 설계수업은 화요일과 금요일에 각각 5시간 시수로 잡혀있지만,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그 5시간을 체크하는 건 거의 무의미하다.  수업 역시 자유로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수업 시간 1시에 정확히 오시지만, 그 시간 동안에 아이들은 자신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크리틱이 필요한 순서에 맞추어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자유로웠다.

단체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있을 때에는 단체로, 거의 개인별로 맞추어져 있다 보니 전체 크리틱이 아닌 이상에는 개별 크리틱을 중간 자리에서 진행했었다.

  아무래도 디벨롭이 더 된 사람도 있고, 이날은 조금 부족한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아닌 듯해도 서로 눈치를 보게 되는 설계다. 그중에 잘 진행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보이지 않는 등수가 매겨지다 보니 다들 집중하게 되는 메인 수업이기도 했다.

 5년간 하다 보면 대부분 설계일을 지향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종종 있다. 대부분 설계 쪽에서 두각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못하거나, 설계와 같이 하나의 디자인보다는 회사를 지향하는 친구들은 건설사를 가기 위해 건축기사 시험에 더욱 집중했고, 건축 디자인에서 상업디자인으로 진로를 바꾸는 경우, 공무원이 되기 위해 변리사나 5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휴학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혜진은 편입생이라 나이도 있었고, 건축설계와 함께 인테리어도 하고 싶었던 터라, 이번 학기에도 성적 및 공모전 관리도 필수였다. 이미 공모전에 입상하여 이력서에 여러 줄을 적어둘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지막에 가는 실습 역시 빠질 수 없는 터라, 교수님들께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면,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는 것도 기본이었다.


 오전에 일어나 혜진은 설계실에 갈 준비를 했다. 오전 시간에 일어나 어김없이 아침샤워를 하고, 기숙사에서 밥을 먹고 나가야 하지만, 어제 늦게까지 마감하고 와서 그런지 도통 밥 먹을 기운이 없다. 혜진은 가는 길에 기숙사 식당에서 밥 대신에 빵과 과수원을 바꾸어 가기로 했다. 식권은 학교 기숙사에 등록하게 되면 필수로 구매해야 하는 매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은 경우에는 식권이 남게 되다 보니 대부분 기숙사생 중 식사를 하지 않으면 그만큼 밥과 과수원이나 우유로 바꾸어 갈 수 있었다.  혜진 역시 종종 그 방법을 선택했다. 설계실에 가면 항상 동기들이 있다 보니 식사를 하지 않아도 12시 즈음에는 다 같이 학관이나 공대식당에서 학교 밥을 먹거나, 설계실 사람들은 설계실에서  밥을 시켜 먹기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도 정말 좋네.'

혜진은 기숙사에서 나와 빵과 우유를 챙겨, 공과대학으로 향해 걸었다. 학교는 붉은색 건물로 이루어진 캠퍼스로, 초록한 잔디와 나무가 많은 자연풍경이 멋진 캠퍼스였다. 이쁘기로 소문나 있어서 캠퍼스 드라마 에도 종종 나올 만큼 나지막한 건물과 주변에 산책로가 잘 되어 있는 매력적인 학교였다.

 기숙사에서 공대까지 가는 길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도보로 5분 정도 거리라 부담 없이 갈 수 있지만, 건물에서 또 꼭대기층에 위치한 5층까지 올라가는 설계실까지 거리가 있어서 조금 산책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깨끗한 하늘에 오전 7시 경이라 사람이 없는 캠퍼스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혜진이다.

' 가서 2층 평면도 정리하고, 조금 더 자료 찾아봐야겠다. '

혜진은 오늘 해야 하는 내용을 한번 더 체크하며, 길을 걸었다. 아침이라 조용한 캠퍼스에 뭔가 이날은 여유로운 아침을 맞는 느낌이 들어 상쾌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 그래 졸업여행, 어쩌면 졸업 전에 해보는 여행이기도 하고, 사실 제주도 못 가봤는데 이번 기회에 가보면 좋겠어. 그나저나 여행비용까지 하려면 이번학기도 꼭 장학금 타야겠네.'

혜진은 참가비 역시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 가보는 제주와  함께하는 제주 여행에 뭔가 기대가 되기도 했다.

 졸업여행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우선은 눈앞에 있는 수업이 우선이다. 졸업여행으로 간다고 하지만, 주말 동안에 다녀오는 여행이었기에, 사람들과 함께 가기 전에 먼저 어느 정도 진도도 미리 해둬야 했다. 여름방학 전에 가는 여행인 만큼 다들 들뜨는 마음도 있었다. 요즘 들어 더욱 진도가 천천히 나가서 다들 힘들어하던 찰나에 어찌 보면 또 리프레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냐며 다들 반기는 분위기의 졸업여행이다.


 들어선 설계실에 여전히 컴퓨터들이 돌아가고 있다. 설계실은 총 8명이 함께 하고 있지만, 컴퓨터 모니터는 10대 이상이다. 노트북을 쓰는 사람은 혜진을 포함해 두 명이며, 모두 듀얼모니터를 사용하고 있다. 도면을 쳐야 하다 보니 한대로는 부족함을 느껴 각자의 테이블에 모니터는 두대, 여기에 노트북까지 가진 경우에는 3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설계실은 항상 모니터가 켜져 있고, 불은 끄는 둥 마는 둥 했다. 거의 24시간 불을 켜두고 잠도 자고, 설계도 하고 게임도 하고 미드도 보고, 음악도 튼다. 

 건축과 학생들에게 설계실은 학교이자 집이었고, 내 방과 같이 나의 책상 구역은 나만의 세상이기도 했다. 다행히 다들 개인취향과 배려가 있었기에 헤드셋은 필수로 모두 갖고 있었고, 다 같이 듣는 경우에는 함께 사용하는 공용 스피커도 있었다. 5년간 그들은 보이지 않는 룰을 따라 서로 배려하고 학업을 진행하는 친구이자 동료였다.

 아침의 풍경은 여간 다르지 않다.

설계실 구석에 라꾸라꾸에 누운 의상은 그대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고, 한쪽에 있는 경호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 있다는 건, 누군가 설계실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가 아침일 만큼 시간 개념 없이 작업하고 먹고 자고 또 작업하고를 반복하는 게 건축학과 학생들에게는 일상이었다.


 " 경호, 안녕!"

 " 누나 왔어요?"

경호는 헤드셋을 벗고 혜진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 누나 일찍이네?"

경호는 복학생으로 혜진과 두 살 차이 나는 동생이었다. 집은 서울로 지하철을 타면 1호선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항상 학교에 상주하는 학생이다. 주말에 한 번씩 집에 가고, 너무 학교에서 먹고 자고 다 하는 중이었다 씻고 싶을 때에는 기숙사 사는 애들한테 부탁해서 꼼수로 들어가 샤워도 하고 오곤 했다. (물론, 안되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어느 정도 가능한 방법이기도 했다. 경비아저씨들의 틈을 타서 가끔 기숙사 샤워실을 이용하곤 했다.)

 "누나 아침은? "

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담배를 하나 들고 나오며 혜진 자리로 와 물었다.

"나 그냥 기숙사에서 빵이랑 과수원 갖고 왔어. 너 아침은 의상 오빠랑 먹어?"

라꾸라꾸에 누운 의상을 슬며시 보며 혜진이 물었다.

 " 어, 일어나는 거 보고. 누나 나 담배 피우고 올게."

 "응"

혜진은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설계실에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몇몇 있었다. 교수님들도 자유로운 편이라 교수님과 함께 외부 테라스에서 같이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자유로운 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사실 건축설계 하는 강사님들 중에는 같이 맞담배를 하며 자유롭게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혜진은 경호가 나간 다음 모니터 전원을 켰다.

 ' 그럼 얼른 해볼까?'






다다다 다닥.. 탁 탁.  + 게임소리 + 음악소리

모든 소리가 혼재하는 공간 설계실은 뭔가 정답이 없다. 그냥 안 켜두면 심심해서 켜두는 소리, 스트레스받으니까 하는 게임. 심심하니까 보는 미드, 따라 보르고 싶어서 틀어두는 음악소리

하지만, 공간이 그리 작지 않고 다들 자기 자리에서 듣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리 소리가 크진 않다. 아마도 모든 소리들이 가 섞이면 다들 어떤 반응일지 싶을 만큼, 그래도 그 안에 나름의 규칙이 있어 다 같이 설계실에 공존하는 중이다.


 " 아악!, 아 씨 날아갔어."

이런 소리는 뭐 한두 번 간간이 들린다. 

" 아, 형 많이 했어요?"

현수는 모니터를 보면서 의상의 말에 반응한다.

 " 아니, 그건 아닌데.. 아.. 포토샵 하고 있었는데 아 씨.. 이제 수업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오늘은 마지막에 크리틱 받아야겠다." 의상은 투덜거리며 오늘 수업 걱정이 시작된다. 


사실 지금은 각자 디벨롭 중이라, 이전 학기처럼 해오지 않는다고 그리 다들 신경 쓰는 건 아니다. 교수님도 수업시간에 앉아 계시며, 학생들과 토론하며 어딘가 아이디어가 막히거나 필요한 부분에 더 체크할 뿐 개인의 프로젝트는 개인이 알아서 디벨롭을 더욱 하고 있다. 실무에서는 터무니없겠지만, 이제는 졸업하는 학년인 만큼, 나름 5년간의 방식이 쌓였다.

첫 학기에 들어와 에셔의 착시를 배우며 공간이란 무엇인가를 하던 시기부터, 이제는 제법 큰 사이트에 직접 자신이 설계를 제안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마지막 학기였다. 그중에 3,4학년때에 건축대전에서 입상한 사람도 있고, 열심히 교수님들 아뜰리에나 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아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 형, 나 때문에 그런 건가?"

현수는 의상의 모습에 미안함이 들었다.

"뭔 소리야. 그냥 컴퓨터가 뻑난 거지. 걱정 마, 안되면 뭐 얘기해야지. 아.. 이제 30분 남았네"








"안녕, 다들 많이 했어?"

"안녕하세요!"

박교수는 매일 똑같은 인사다. 수업시간 시작 10분 전에 도착한 박교수는 중간 테이블에 가방을 올려두고 입구에서부터 또 책상에 있는 모니터를 쓱 돌아보는 중이다. 그러다 의상의 모니터에서 잠시 멈춘다.

"어? 의상. 너 이거 지난 시간에 했던 거 아니야? 디벨롭된 거 없어?"

"아.. 그게 교수님, 포토샵 작업하고 있는데 그게 파일이 날아가는 바람에..."

" 그러면 안 되는데.. 우리 이제 너희 다음 달 졸업여행 가고, 1학기 마지막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렇게 시간 보내면 안 된다. 오늘 그럼 나 보여줄 거 있어?"

" 아.. 그게.. 다시 해볼게요" 의상은 머리를 긁적이며, 교수님 눈치를 보며 조심히 얘기했다.


" 그래, 파일 세이브 잘하고. 지금은 여러분이 하나하나 해야 하는 만큼, 시간 조절 잘해야 돼요. 우리가 지난번 보다 하나 프로젝트로 길게 하긴 하지만, 그만큼 집중력 있고 더 깊이 있게 스터디하라는 뜻이니까, 느슨해지면 안 돼. 그리고 졸업여행 있다고 너무 들뜨지 말고! 집중하고, 크리틱 받고 싶은 사람들은 한 거 갖고 나오자."

박교수는 모두들에게 집중하라며, 모두에게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설계시간이라 그런지 다들 이런 말을 들으면 다시 한번 긴장하게 된다. 수업은 작년보다 훨씬 시간이 여유로워졌지만, 스트레스는 더욱 많아지는 5학년이랄까? 다들 긴장과 스트레스와 여유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5학년이었다.


크리틱은 언제나 여유로운 마음의 현수가 먼저 노트북과 출력 도면을 들고 와서 크리틱 받을 준비를 했다.

"오! 역시 현수, 일등이네?"

박교수는 웃으며 현수의 노트북을 자리 앞으로 가져온다.

"음, 해 봐."

" 지난번에 여기 커뮤니티 센터 평면 코어 부분이랑 앞에 있는 공개공지 활용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봤는데요.  기존에 우측에 있는 코어 부분에서 조금 동선이 길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긴 매스 부분에서 저층부에는 램프를 길게 둬서 2,3층 커뮤니티 공간까지 오픈스페이스를 조금 더 확장시키는 건 어떨까 해서요.  입면 부분이 지금 다 막혀있는데 저층 부분에 램프로 오픈된 공간느낌도 주고, 아래에 있는 공개공지와 커뮤니티 시설의 연결성도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음, 오픈스페이스의 개념과 연결성은 너무나 좋은데, 공개공지는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된 공간인데 안전성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려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저층부를 거의 3층까지 모두 오픈한다는 건데 그렇게 되면 , 연결성이나 접근성은 좋은데, 명동 특성상 사이트에서 안전성은 어떻게 고려할 건지 그것도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여기에 입면 부분에서도 한쪽 매스는 거의 커튼월을 사용했는데, 안에 도서관 시설이나 그거 있지 않아? 그럼 조금 입면 형태적으로도 커튼월로 다 이루어진 것보다, 명동의 길과 연계해서 입면에도 스토리를 같이 주는 입면 디자인을 좀 고민해 보면 어떨까?"


 피피티를 보며 현수와 박교수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다들 조금 더 크리틱 받을 내용들을 준비하기 위해서 수업시간에는 조용하게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 네, 입면도 그래서 커튼월 디자인에 다른 디자인들도 찾아보고 있거든요.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 그래 , 저층부 뚫는 건 좋은데, 안전성이나 제한적인 공간활용도 조금은 더 생각해 봐"

 크리틱은 자유로웠다. 딱딱하게 피티 하는 게 아니라, 거의 1:1로 프로젝트에 대한 조언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공개크리틱 시간이 아니라면 요즘에는 수업시간은 자유롭다. 다른 사람이 크리틱 하는 동안에 화장실을 가거나 너무 수업이 길어지면 간혹 매점이나 식당에 다녀오는 경우도 있었다.


 현수가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들어오며 혜진에게 웃어 보였다. 혜진도 현수가 끝나면 크리틱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라,  우선 자리에서 일어서며 노트북을 챙겼다.

 " 오늘은 혜진이가 2등이야?"

노트북을 받으며 박교수는 웃어 보였다.

 " 네 그런데 지난번에서 크게 많이 못했어요. 주말에 더 많이 해서 다음시간에는 조금 더 많이 해올게요. "

혜진은 뭔가 많이 해오지 못해서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노트북을 켜고, 출력 한 1,2층 도면을 꺼냈다.

" 매스 구성은 총 5개의 공간으로 나뉘었는데요. 여기에서 애도, 두려움, 전쟁의 실상, 통일, 평화관 총 5가지 조닝으로 구분을 했어요. 처음에는 전쟁에 대한 실상보다는 슬픔의 애도공간으로 시작해서, 갖고 있던 두려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쟁의 모습과 실상, 이후에 통일관 그리고 평화관으로 순차적으로 공간을 구성했고요. 여기에 사이트가 레벨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위로 올라갈수록 조금 더 빛과 공간을 확장해서 평화의 안정성과 전쟁의 두려움에서 멀어지는 ,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유와 함께하는 루프탑공간으로 순차적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래서 모든 장소들이 램프로 이어지고, 자연과 수공간이 연결될 수 있도록, 매스 사이에 축과 대지 레벨에 따른 흐름을 가져왔습니다."

혜진은 대략적으로 구성한 5가지 공간의 레벨에 따른 도면을 꺼내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했다.

 " 음.. 그래 우선 접근은 재미있네, 레벨을 따라 달리하는 것도 좋고, 공간을 안과 밖을 조금 더 자유롭게 활용하는 건 좋은데 대지에 따라서 건물마다 프로그램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해서 규모검토도 조금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그거는 다음 시간까지 좀 더 해보자."

" 아.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혜진은 박교수와 함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도면을 챙기고 혜진은 일어섰다.

" 자. 다음 준비한 사람?"

의상과 현수는 그새 나가서 음료수를 마시는지 자리에 있지 않았고, 다들 말없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교수는 시계를 보더니 벌써 수업은 한 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 자! 그럼 우리 조금 쉬었다가 봅시다. "

어차피 설계시간은 조금 자유로워 따로 휴게시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교수님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만들었다. 

혜진도 자리에 노트북과 도면을 올려두고, 지갑을 꺼내 들었다.






'현수는 어딨 지? 나도 음료수 하나 마셔야지.'

혜진이 문을 열고 자판기로 가는 길에 박기우교수님과 마주쳤다.

" 혜진아, 지난번에 남자친구야? 잘 어울리더라."

박교수는 혜진을 보며 웃으며 얘기했다.

"네? 아.. 그때.. 아니에요. 지난번에 공학과 같이 수업 들었던 친구예요."

"아, 그래?"

박교수는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교수님도 그때 그분이 여자친구 분이세요? 후문에서.."

"아! 아.. 그건 아니고, 잠깐 약속이 있어서."

"네, 여자친구분이 신줄 알았어요. 너무 이쁘시던데요"

혜진은 박교수 님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하하, 그런가? 어디 가는 거야?"

" 저, 콜라 하나 마시려고요."

" 아.. 같이 사러 갈까 반 애들 거도 사고"

둘은 같이 자판기 쪽으로 걸었다. 걷기만 하던 둘 사이에 말을 꺼낸 건 박기우 교수였다.

"혜진이도 졸업여행 가니?"

"네 이번에 제주도도 한번 가보고 싶어서 가려고요."

"그렇구나, 다들 갈 생각인가 보네?"

"아마도.. 원래 있는 행사도 아니라서 많이 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 잘 다녀와, 동기들이랑 가면 재미있지. 추억도 만들고."

박교수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며 말했다.

"교수님들도 가세요?" 혜진이 물었다.

"안 가시지 않아? "

"아.. 저는 한분이라도 가시는 줄 알았는데 진짜 저희들끼리만 가나 보네요.

그래서 이전에는 오셔서 인사도 해주시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제주도라서.."

"그때는 너희가 신입생이고, 이제는 다 큰 성인인데.."

"아.. 그렇구나.. 그래도 제주 가고 싶으시면 오세요 교수님."

혜진은 그냥 흘러가는 듯 자판기의 콜라를 누르며 말했다.

"그래그래, 우리 애들 거 이제 다 뽑았나?"

박교수는 이미 두 손에 콜라를 여러 개 뽑아 안고 있었다.

"네, 가요. " 혜진은 주변을 두리번 하며 현수를 찾았다. 음료수 마시러 간 줄 알았던 현수는 두리번 해도  없었다.

  ' 오빠랑 또 밥 먹으러 공학관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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