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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27. 2024

건축학도 12.

없는 거였어.

"다들 수고했어, 오늘 의상까지 한 걸로  수업은 끝내고, 다음 시간에 더 디벨롭해서 보자."

"네"

오후 5시 33분. 목요일의 저녁이 드디어 마무리가 됐다. 내일은 다들 수업을 많이 빼기도 하는 금요일이지만, 대부분 5학년 수업은 설계수업만 듣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거의 목요일 설계수업이 끝나고 다면 주말이나 다름없었다. 수업이 끝난다는 말에 다들 뭔가 홀가분한 모습이다.

 걱정하던 의상오빠는 수업 막바지까지 어찌했든 교수님께 보여드릴 파일을 완성했고, 다들 순차적으로 크리틱을 받다 보니, 자신의 크리틱이 끝나고 나면 뭔가 목요일 수업 후의 표정은 밝아지거나 , 걱정이 더 쏟아지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조금 수월하게 넘어가면 그대로 디벨롭하면 되지만, 뭔가 크리틱 받아서 더 교수님의 요구사항이나 문의사항이 많아지는 날에는 스트레스가 배가 된다. 주말이 길다는 이점도 있지만, 그만큼 고민해야 하는 날이 길어지기 때문이었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우리 회식 때 얘기했었는데 혜성건축에서 방학에 인턴 하고 싶은 사람 있나?"

박교수는 설계실을 한번 쓱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이미 가고 싶은 건축사무소가 있거나, 혜성이면 으레 손꼽는 몇 친구들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혜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진이는... 지원... 할.. 거지?"

박교수는 혜진을 보고 말했다.

혜진은 뭔가 손을 드는 게 부끄러워, 고개만 살짝 끄덕했다.

"지금 말하기 조금 그러면, 나한테 따로 얘기해 주면 좋고.. 나 말고도 다른 학교에 수업 가시는 분들도 몇 분 계셔서, 아마 거기에도 공지가 나기 때문에 인원을 몇 명 뽑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아무래도 졸업반 인턴이라, 여태 했던 포트폴리오를 한번 내긴 해야 하니까. 한 달 남았으니 미리 포폴 준비한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준비해 두면 좋을 듯해요.

혜성건축 홈페이지에 공지가 나와있으니까 참고하고! 우리 학교에서도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2-3명 돼서, 그건 내가 아무튼 체크하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친구들은 포폴 준비 조금 더 추가적으로 합시다."

박교수는 마지막 공지를 끝으로 테이블에 놓여있던 서류파일을 챙겨 지갑과 휴대폰을 서류 가방 안에 담았다.


언제나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에 발목까지 오는 검은 세미정장팬츠, 그리고 블랙톤의 가벼워 보이는 셔츠 차림에 블랙구두, 그리고 검은색 가방까지. 올블랙을 선호하는 느낌이 깔끔함이 가득하다.

봄부터 항상 이어져온 블랙사랑은 한여름이 되어도 그대로다.  검은 가방까지 챙긴 박교수는 수업이 끝나고 인터넷서칭하며 쉬고 있던 혜진을 불렀다.


"혜진아, 잠깐만 이야기할까?"

"네"

"홀에 전시하던데 거기로 와"

모니터를 보고 있던 혜진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교수님을 보며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서 이제 다들 편안해 보였다. 수업마무리 이야기와 동시에 나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거나, 게임을 하거나.. 수업이 끝나면 자유세상이었다. 다만 자신의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한다는 게 기본이니까.

" 다들 수고하고 다음 주에 봅시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들어가세요""주말 잘 보내세요"

몇 안 되는 설계실이지만, 마지막 인사는 항상 다양하게 흘러나온다.




쓱.

박교수는 5층 중간홀에 있는 전시를 보며 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5층에는 4학년 공학과 학생들의 건축구조 발표 패널이 부착되어 있었다. 건축과와 공학과가 함께 사용하는 중앙홀은 대부분 전시가 있거나, 과별로 초청강연이 있을 때 주로 사용했고 그 외에는 자유롭게 지나고 밥도 먹는 편한 공간이었다. 오픈스페이스라 누구나 들를 수 있지만, 공학과 특성상 5층은 건축과가 사용하는 공간이라, 거의 건축학과 학생들이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5층 홀 벽면 패널에는 건축공학과 학생들의 구조설계도가 가득했다. 3-4학년에 건축구조 수업이 있는데 이때에는 건축과 1인 공학과 3인이 포함되어 한조를 이룬다. 건축과 학생은 디자인과 전체적인 도면을, 공학과 학생들은 구조적으로 계산해서 체육관 등 대규모 공간을 트러스로 구성하는 수업이다.

구조와 설비수업을 포함하여 대규모건축설계를 하는 것으로, 물론 설계사무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배움을 고스란히 해볼 수 있는 프로젝트로, 같이 점수가 나가기 때문에 누구 하나 못하는 인원이 있으면 난감해지는 수업이었다.

 혜진과 경록이 만나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혜진이 편입생이었기 때문에 건축공학과 학생들은 군대를 다녀온 복학생이라 하더라도 다들 나이가 같아서 편하게 수업을 했었다. 물론 손발이 잘 맞아 성적도 좋았으니, 다들 윈윈 할 수업 중의 하나였다.


" 교수님!"

혜진은 10개가 넘는 패널 중에서도 지난번에 패널 이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 패널 앞에 서서 내용을 읽어보고 있는 박교수 옆에 와서 섰다.

" 이거 디자인을 깔끔하게 했네. 내용은 일반적인데, 패널디자인이랑 공간 형태 디자인이나 디테일 보여주는 게 좋네."

박교수는 디테일 부분을 표현한 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혜진이게 말했다.

" 음.. 단순히 구조만 확대한 게 아니라 샘플사진이랑, 규격들도 디테일하네요. 얘네가 잘하나 봐요."

" 그렇네, 구조적으로도 잘 푼 거 보니 공학과 애들이랑 얘기도 많이 했나 보다."

" 참, 교수님 저 그러면 이번에 혜성 지원할 때 1학년 거부터 포폴 같이 하면 될까요? 작년에는 공모전에서 입상한 것도 있는데, 자료를 우선 정리해서 목차랑 다음 주에 한번 보여드려도 돼요?"

 패널을 들여다보던 박교수는 혜진을 보았다.

"작년에 공모전 입상한 게 있었어?"

"네, 작년에 혜성에서 했던 거.. 학생공모전이요."

"아! 혜진이가 작년에 나갔었니?"

"네, 상은 소소하게 받았지만, 수상은 했었어요."

쑥스러운 듯 혜진은 말 끝을 흐렸다.

' 아.. 작년에 내가 없었으니.. 나중에 한번 봐야겠구나.'

"그럼 , 그 부분도 수상 내역 체크해서 꼭 넣어주면 좋겠네. 회사에서도 알겠구나. 오히려 잘 됐다. 경쟁력이 더 높아지니까."

혜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모르셨구나. 나중에 찾아보시면 부끄러운데.. 그래도 뭐 어차피 아실 일이니까.'

"그럼 저 가볼게요."

혜진은 박교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순간, " 혜진이 오늘 데이트 가는 거니?"

웃으시며, 말하는 모습에 혜진은 눈이 번쩍 뜨였다.





"네? 아. 그때.. 후문에서... 아...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혜진은 가슴 앞에 손을 양손으로 휘저으며 말했다.

"아? 그래. 나는 둘이 사귀는 줄 알았는데, 너무 잘 어울리던데?"

"아니에요. 공학과랑 수업할 때 같이 조 했었던 친구예요. 지금 이거 건축구조수업이요."

혜진은 앞에 있는 패널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그렇구나. 잘 어울려서 남자친구인가 보다 했지. 그럼, 남자친구는...."

혜진은 다급하게 말했다.

"없어요. 남자친구"

갑자기 정색하며 얘기하는 혜진에 박교수도 살짝 놀랐다.

"아. 미안해. 나는 잘 어울리는 거 같다고 생각한 건데.. 기분 상했으면 미안해."

박교수는 혜진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괜찮아요. 그때 교수님 여자친구분이 정말 이쁘시더라고요. "

혜진은 박교수를 바라보며 살짝 웃으며 얘기했다. 애써 ,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 그날... 미소 말이구나? 오해야. 나는 만나는 사람 없어. 여자친구도 아니고.

그날은 그냥 일이 있어서 온 김에 같이 서울로 올라간 거야. 수원에 오는데 차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연락이 왔었거든. 그때도 말했잖아, 우리 회식할 때 만나는 사람 없다고."

박교수는 차분한 어조로 혜진의 눈을 보고 얘기했다.


'그래 그러셨지. 그런데 너무나 이쁘셔서 그새 생기신건가 했는데,.. 다행이다..

그런데 이렇게 쳐다보는 건 처음인데, 눈이 정말 맑으시구나.'

혜진은 박교수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혜진이 그럼 주말에 포폴도 조금 정리해 볼 수 있으면 다음 시간에 한번 보자.

주말 잘 보내고"

박교수는 혜진에게 인사 후에 뒤돌아서 걸었다.

"네 교수님."

박기우교수가 먼저 가방을 들고 걸었고, 그 뒤로 혜진 역시 설계실로 향했다.





'여자친구가 아니었어. 여자친구가 없는 거였어.. 눈을 보고 있으니까 왜 이리 두근거리는 거야.'

혜진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남자친구가 아니었어, 남자친구가 없는 거였어.. 내가 오해한 거야.'

앞 서 걷는 박기우교수도.. 뒷모습을 보고 걷는 혜진도 서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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