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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08. 2024

건축학도 3.

6. 그림 한번 그려보세요.



생각보다 시험은 쉽지 않았다. 2달 만에 공부했던 고등수학은 그래프가 어떻게 그려지는 건지,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은 채로 수학이 들어가는 학교의 시험지는 찍기로 대신했고, 그래도 알파벳 꼬부랑글은 조금 이해했던 터라 영어만은 제대로 풀어보려고 애썼다. 며칠 만에 5곳의 대학의 필기시험을 치러 여기저기 모르는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시험을 보려고 하다 보니 나중에 시험 친 2곳은 면접에도 응시하지 않았다. 필기에는 붙었지만, 막상 면접을 보러 가면서 보니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다.

참.. 무슨 배짱인지, 처음에는 어디든 붙으면 좋겠다는 욕심 하나로 왔었는데, 이제는 돼도 안 가겠다는 마음이 생기다니 사람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걸 여기에서도 느낀다.

막상 가보니 학교가 너무나 산꼭대기에 있거나, 생각보다 도심이 아닌 꽤 먼 곳에 위치하거나, 건물의 시설이 노후화 됐거나 등의 이유이기도 했지만, 왠지 그 안에는 내가 어느 원하는 학교에 붙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학교에서도 필기에 합격했고, 그날은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뜬금없이 편입을 생각했고,  준비 없이 2개월 동안 잠시 공부하고 학원도 다니지 않았던 터라 면접에서 어떤 문제가 나올지에 대한 정보 역시 1도 없었다. 옷만 깔끔하게 입고 필기 합격에 대한 기쁨으로 면접장을 찾았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의 준비가 꽤 많이 되었나 보다. 서로 얘기하는 말에서 혜진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작가의 이름이 나오거나, 건축에 대한 생각을 서로 토론하면서 얘기하는데 이게 뭔가 싶은 순간이었다. 면접을 보는 것은 공지가 되지만,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학원에는 가보지도 못한 터라 정보 없이 들어서야 했던 면접장.

들어가기 전에도 몇 명이 면접을 보는 것인지, 어떻게 면접을 보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일주일 전에 시험 보러 왔던 이 학교에 다만 나도 학생이 되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을 뿐 아무런 것도 아는 게 없는 나는 그냥 초초히 기다리기만 했다.


"김혜진 님 들어가시면 됩니다."


하필, 면접도 첫 번째였다. 칠판이 있는 강의실이었는데, 3개의 테이블에 3명의 교수님이 각각 앉아계셨다. 면접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본적인 자기소개와 함께 왜 건축을 하고 싶은지, 왜 지원하게 되었는지는 기본적으로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어 점수가 그리 좋진 않네요? 턱걸이네?"

"네" 그때 알았다. 겨우 턱걸이로 시험에 붙었었구나 나는 건. 아마도 그리 잘 보진 못했다고 생각했다. 영어시험을 패스했다는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도 놀라웠으니까. 그날 그렇게 부랴부랴 뛰어가서 정신없이 보았던 시험인지라, 잘 나왔을 거라 생각지 않았지만, 콕 집어서 턱걸이라고 표현하시다니. 부끄럽긴 하네.

그 외에도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왜 건축과를 지원했는지와 동기를 물어보셨다. 그다음에 나온 질문까지는 사실 대답하긴 어렵지 않았다.

"혹시 기억나는 특별한 건물 있어요?"

" 제가 있는 지역에서 보면 새롭게 지어진 센터가 있는데, 건물 아랫부분이 오픈되어 있어서 길로 이어주는 모습을 보고, 지역과 건물과 사람들이 함께 하는 건물에 대해서 매우 멋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2층에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브릿지가 되어 있고, 1층에서는 양쪽으로 입구가 있어서 중간에 오픈된 공간은 앞뒤의 길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건물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

불쑥, 중간에 계시던 교수님이 "그.. 건물.. 한번 그려보세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처음으로 필수과목을 들으며 만나야 했던 교수님이었는데, 참 앙증맞게 생기신 듯하면서도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런 분이셨다.

'건물을 그리라고?'

사실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는데, 순간 민망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이라니. 나는 그림을 그려본 적도 없고, 건물을 스케치해보라고 하실 줄도 몰랐다. 그때에는 그게 입면인지 단면인지 조감도인지 그런 단어도 모르고 단순히 보이는 간략한 입면도를 그렸었다.

"음, 알겠어요."

참 민망했다. 이건 내가 봐도 초등학교 수준도 안 되는 애가 와서 건축을 하겠다고 그림을 그렸으니.. 마음속으로 이번 면접은 망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면접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 어떻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셨지? 망했네.'라는 생각뿐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다른 면접본 아이들이 뭉쳐서 이미 같이 얘길 하고 있다. "르꼬르뷔지에 물어보셔서 나는 얘기드렸어"라는 얘길 듣고 그 사람은 누구지?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물어보지 않으셨는데..라는 생각으로 면접도 그냥 지나가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모든 면접까지 시험이 끝나고 3일 후 발표날, 컴퓨터를 켰다.











7. 합격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뭔가 엄청 대단하게 해 둔 게 아니라 하더라도 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욕심은 누구나 있다. 이날 혜진 그랬다. 사실 시험을 잘 본 것도, 전적대가 그리 좋은 것도, 다른 아이들처럼 나이가 적거나 뭔가 건축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 나였지만, 그래도 탈락의 고배는 언제나 쓴 법이니까.

그렇게 인터넷 검색창에 합격창을 띄우고 들고 있던 수험번호를 적어본다. 혹시나...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합격자 발표"

"xxxxxxxxx" 수험번호를 검색해 보았다.

"김혜진 합격"

정말 이럴 수가 있을까? 내가 합격이라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던 그날의 시험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그려낸 1차원적인 칠판 앞 그림이 머릿속을 그리 스쳐가는 순간에 다시 한번 더 내 눈에 들어온 글자 "합. 격" 다른 이름이 아닌 나의 수험번호와 나의 이름이라니. 혜진이 합격했다. 남들에게 무시당하던 그때가 사라지듯,  보란 듯이 대학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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