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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09. 2024

건축학도 4.

8. 다시 시작 그리고 미안해.




2016년의 봄


"엄마 여기 어때?"

엄마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처음 와보는 도시에 딸 혼자서 올라와서 지내야 한다니. 혼자 지내는 것도 걱정이긴 하지만, 내심 학비와 생활비가 걱정이다. 자식 셋을 키워 내기도 힘들었고, 이제야 조금 자기들끼리 자립하나 싶었더니 대뜸 뜬금없이 2년 일하고 나서 잘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다시 공부를 하겠다는 걸 보니 마음이 꽉 막힌다. 그것도 저 멀리 타지에서 월세 40만 원이나 되는 집을 구해 다닌다고 하니 부모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그냥 조용히 돈 벌어서 집에도 조금 보태주고, 결혼이나 하면 좋겠구먼. 뭘 그리 어마어마한 꿈을 완성할 거라고..

"여긴 월세가 얼마교?"

"500에 40만 원이고요. 전기세랑 세금은 별도예요. "

혜진은 아무 말도 않고 엄마만 쳐다본다. 사실 학비와 입학금을 내긴 했지만, 고작 2년 벌어서 꾸준히 학비를 낼 수 있을까 걱정이긴 하다. 1-2년이야 견디긴 하겠지만, 월세와 학비까지 만학도나 마찬가지인 우리 집 말썽꾸러기로 5년을 다녀야 하는 사립학교를 선택했으니, 학비뿐 아니라, 생활비와 재료비까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은 새 학기에 기대하는 마음에 며칠 앞으로 다가온 학기가 기대 겸 걱정이 반반이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편입으로 올라온 터라, 나이차이도 있고,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의 입학이기에 잘 어울릴까? 조금은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이제는 그런 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고 해도 이제 고작 나이 26살이면, 그래도 나이가 어린 건가 싶기도 하고. 이리저리 마음이 복잡하다. 우선은 눈앞에 내가 살아야 할 집부터 마무리를 지어야지.


"여가 하고 싶나?" 한숨 반, 포기 반, 걱정이 뒤엉킨 그런 목소리로 엄마는 물었다.

"응." 무슨 말이 할 수 있을까? 얼른 구하고 마무리해야겠다는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름 둘러본 방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기가 괜찮죠. 너무 학교랑 가까운 게 아니라서 친구들 와서 잘 일도 없고, 또 너무 가까우면 그게 더 불편해요. 여기로 계약할까요?"

"그럽시다."

그렇게 집을 둘러보는 일을 마무리하고 엄마와 함께 부동산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사실 먼 훗날 안 사실이지만, 전세도 집 매매도 아닌 월세는 크게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주인도 직접 오는 게 아니라 부동산에서 모두 대리로 가능했기 때문에 부동산계약은 보증금을 보내주고 월세를 선납하고 2장짜리 계약서에 간인을 찍는 일로 마무리했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학교와 혜진의 첫 방 계약은 마무리되었다.

말은 못 했지만, '엄마, 고마워.' 혜진은 먹먹하게 마음으로 말했다.








"이게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방도 계약 다 했으니까, 열심히 하고."

"응, 미안해. 엄마. 장학금 탈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

"그게 뭐 마음대로 되나, 혼자서 있으니까 밥 잘 챙겨 먹고 알았지?"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자식 걱정은 끝이 없는 게 아닐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현관과, 바로 맞은편에는 조리대와 가스레인지가 함께 놓인 주방이 작게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평 남짓한 방한칸과, 우측으로는 주방 벽 쪽에 있는 작은 욕실이 하나 있고, 양쪽으로 창이 나 있는 방한쪽에는 반투명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발코니에 세탁기와 건조대가 하나 있다. 

엄마가 간 다음에 하나하나 짐을 풀어 옮기고, 필요한 것들은 가까운 다이소에서 사 오기로 했다.


"그럼 이제 거의 다 된 건가?"

힘들게 들고 있던, 마지막 책들을 책꽂이 꽂으며 방을 한 바퀴 둘러본다. 별거 없는 공간에 작은 방이지만, 내심 언니와 함께 지내다가 혼자만의 방이 생기니 뭔가 기분이 좋다. 미안함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하루. 그래도 이제는 제법 잘해 낼 일만 남았다.


엄마가 가고 난 다음에 홀로 나와서 한 바퀴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아직은 뭔가 어색한 익숙지 않은 동네의 공기가 뭔가 와닿지는 않는다. 타지에서 시작하는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점도 걱정이 앞선다. 정작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갑작스레 시작하게 된 이런 시작에서 동네를 걸으며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앞선다. 동네라고 해봤자, 그리 돌아갈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4층짜리 원룸 빌라에 3층에 있는 방 한 칸을 빌려 시작하는 첫 자취라 사실 살 물품도 많지 않았다. 도보로 15분 정도 걸으면 위치한 대형마트에 들러, 저녁에 먹을 먹거리를 몇 개 사들고 다시 빌라 계단을 올라왔다. 그렇게 얼마 남지 않은 개강 전에 모든 준비를 마무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 학기를 기다렸다.












'잘 있으라고 하긴 했지만, 혼자 두고 또 나도 이제 혼자될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네.'

다들 자기 살길 찾아간다고 하는데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할 순 없고, 할 수 있는 건 해줘야지.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차창 밖으로 참 어색하다. 아는지 모르는지, 코 앞에 먹는 것만 생각하는 남편은 아이들이 타지에 간다고 해도 한번 올라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이를 데리고 올라와 같이 방을 구해주고, 혼자 가는 길에 만감이 교차했다. 차창밖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잠시 버스에 앉아 이내 잠이 들었지만, 혜진이 없는 집에서 또 그렇게 보낼 시간들이 참 걱정스럽다. 그래도 먹고살 걱정에 더 이상 아이들 걱정을 해줄 수는 없기에, 싱숭생숭해진 마음으로 코트 자락을 끄집어 올리며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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