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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11. 2024

건축학도 5.

 5년제 건축학과

9. 건축과 5학년 A스튜디오





"언니 패널 마감했어요?"

"아니, 아직도 붙잡고 있어. 모형도 아직인데.. 아.. 벌써 2시야? 이제 마감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패널은 오늘 무조건 출력 걸어야지. 패널은 다 했어?"

"아니, 나도 아직요.. 진짜 울고 싶다. 교수님이 내일 못 온다고 하시면 좋겠어요."

"뭐야~ 그건 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희주야."

혜진은 걱정하며 투덜거리는 희주가 너무나 귀엽다. 4살 아래인 희주는 언제나 긍정에너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할 수 있어!라는 말로 항상 사람들을 응원하는 아이인데, 이날은 어찌나 속상한지 투덜거리며 말하는 게 그리 귀여워 보일 수가 없다.


설계실에는 총 8명의 건축학도가 공부하고 있다. 서로 테이블은 기본 하나씩 주어지지만, 이제는 제법 자기들 자리를 차지하느라 테이블 2개 정도는 넉넉히 사용한다. 그래서 설계실에 8명이 정원이지만, 언제나 공간은 부족한 느낌이랄까? 희주는 혜진과 제법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서 들어오는 문 뒤편에 희주는 자리를 하고 있고, 혜진은 입구에서부터 가장 끝부분 창가 자리 대각선에 앉아있다. 바로 맞은편 창가 앞에는 언제나 함께하듯 둘은 지난 4년간 총 8번의 학기 중에 5번을 같이 수업을 들을 만큼, 서로에게 잘 맞는 친구였다. 


모형 만들 준비로 모든 재료를 사들고 책상 위에 놓으며, 희주는 연신 걱정과 억울함이 가득 담긴 표정이다. 사실은 내일 중간마감이다 보니 다들 어느 정도 기본 패널과 모형이 완성이 되어야 한다. 모형이야 중간평가이기 때문에 굉장히 디테일한 완성 모형이 아니라 하더라도, 가볍게 매스스터디 한 것 정도의 규모검토 사이즈와 매스형태는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다 보니 그것만 대충 만들어도 3-4시간은 소요되는 터라, 다들 밤샐 준비를 하고 오게 된다. 오늘 밤은 설계실의 모든 불이 껴지지 않을 불야성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겠구나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혜진도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잠시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본다. 도면을 치고 있긴 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중간평가. 교수님과 함께 3달 동안 크리틱하며 준비하고는 있지만, 뭔가 완성도가 높아지진 않았다. 다른 학기와 달리 졸업설계이다 보니 살짝 스터디가 조금 더디긴 하다. 기존에는 한 학기에 두 개의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만큼 뭔가 디테일도 있지만 빠르게 스터디를 진행해야 하지만, 졸업하기에는 전 학년의 모든 과정을 담아 스스로 주제 설명 및 사이트선정부터 계획과 전체적인 건물의 모습까지 도면과 3D까지 완성하는 작업인 만큼 공을 많이 들인다. 어떻게 되면 4학년때까지 해온 일들보다 훨씬 진도는 느리지만, 그만큼 공들인 티가 나는 졸업반이 되어 그런지, 속도감이 느릿느릿하다.

그만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이거나 시간을 끌어본 적이 없다 보니 사실 한 해 동안 한 가지 프로젝트만 매달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속도감 있게 뭔가 끝내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하나로 마무리에 공들인다는 게 생각보다는 더 집중력을 요하기도 하고,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라 쉽게 마무리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스스로 인지해 가고 있는 중이다.


내일이 중간평가이지만, 사실 다른 학년에 비한다면 그리 중요한 중간평가는 아니었다. 그래도 평가를 받는다는 건 내가 여태 해온 이야기들을 한 번에 5분 PT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만큼 공들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여태까지 한 것들이지만, 도면 수정도 한번 더 손봐야 하고, 매스스터디 정도의 입체도면과 사이트분석까지 포함하여 패널 완성은 필수였다. 혜진은 어느 정도 모형도 완성되었던 터라, 창턱에 올려두고 모니터에서 마지막 도면 한 장을 수정하고 있었다.

이것만 수정하고 애들 다들 몰리기 전에 얼른 출력소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건축과 학생들이 한 설계실에 8명 정도이긴 하지만, 학년당 입학 정원이 40명 정도이다 보니, 5년제 학과 아이들 모두 중간마감 때 출력을 보내게 되면 인근 출력소에서 밀림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다. 출력소들도 마감전날에는 늦은 시간까지 해주시기 때문에 그리 부담은 없지만, 그래도 빨리 마무리하는 게 조금은 마음이 편한 혜전인 이날 중간 평가는 조금 서두르기로 했다.


"야, 너 다 했어?"

역시 에너지 넘치는 현수는 들어오면서부터 희주의 진도 먼저 체크한다.

"야, 나 아직 멀었어. 이거 언제 패널하고 모델하냐?" 현주는 여전히 암울한 목소리로 현수에게 말했다.

"ㅋㅋㅋ, 야 걱정 마! 너 그래도 다 하잖아. 꼭 죽을상이야.ㅋㅋㅋ 누나는 다 했지?"

오늘따라 더 에너지 넘치는 현수다. 설계실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트레이닝에 점퍼 하나 걸치고 떡진 머리하고 슬리퍼 끌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현수는 오늘도 멀끔하네. 깔끔한 청바지에 자주 입는 셔츠까지 화려한 패턴이 눈길을 끈다.

"어, 이게 도면하고 이제 출력하러 가려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혜진도 현수가 말을 걸자 , 다시 의자를 고쳐 앉는다.

"올~ 역시 누나야."

"뭐래."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지금 짜장면 시킬까?"

그러고 보니 벌써 또 시간이 1시가 넘어간다. 5학년에는 다들 교양 1개 정도만 남았고, 나머지는 설계수업만 듣는 경우가 많아 다들 설계실에 모여있는 시간이 많다.

현수는 다 같이 모여 앉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전단지 중에서 자주 시켜 먹는 중식당 팸플릿을 들어 올린다.

"짜장면 먹을 사람?"

"나도" , "나 짬뽕".

설계실에 있던 희주, 혜진, 현수 , 그리고 경석과 의상까지. 말도 없던 애들도 한둘씩 라꾸라꾸에서 일어난다.

"의상이형 있었어?"

"어, 나 있었지. 애들이 왜 밥 먹는다고 안 깨우는 거야"

라꾸라꾸에서 잠자고 있던 의상이 오빠가 함께 일어났다. 밥 소리에 깨는 거 보면 정말 밥에 진심이야. 요즘에는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벌써 며칠째, 설계실에서 씻고 먹으며 24시간을 보낸다. 인근에 자취하는 아이들 집에 가서 한 번씩 씻고 오는 건축과의 터줏대감이라고 할까?

그렇게 다섯은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까지 포함하여 세트메뉴를 주문했다.


 









"짜장면 어디 올릴까요?"

앉아서 도면 레이어 정리만 조금 했는데 벌써 짜장면이 도착했다. 각자 자리에 있던 다섯은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모였다. 위에 에올려진 폼보드 위에 그냥 짜장면을 올리고, 다 같이 소스를 어떻게 할까 가 고민이다.

"부울까?"

현수가 그릇을 들고 좌우로 보며 소스를 부으려고 하자, 옆에 있던 의상이 " 야, 붓지 마, 나 그냥 먹을 거야'"

라며 갑자기 끼어든다. 

"오빠 그럼 오빠 거 몇 개면 꺼내서 먹어" 라며 혜진이 웃으며 얘기한다.

"뭐야, 니들 나만 빼고 지금 부먹이라고 왕따 시키는 거야?"

"뭐래에."

언제나 어리광 가득한 의상이 오빠는 투덜이의 정석이다. 

"됐어, 나도 그냥 부어먹을 거야, 더 부어버려!"

그렇게 또 탕수육 하나에 다들 웃음 나는 시간이네, 5년간 얼굴을 보고 온 사이라, 사실 다들 어색함이 별로 없지만, 학기마다 달라지는 설계실 조합이다 보니 사람들마다의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언제나 어색함 없이 다들 잘 어울리도록 해주는 의상과 현수는 설계스튜디오의 분위기메이커였다.


"형 도면은 조금 했어요?"

먹으면서도 언제나 졸작 이야기다, 현수는 찍먹 탕수육을 들며 의상형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만큼, 사이트와 주제선정이 모두 개인이라, 공유하는 건 서로의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하고, 또 각자의 설계를 크리틱 해주며, 디벨롭하는 게 많았다.

"어, 지금 도면은 거의 다 했는데 , 별로 마음에 안 드네. 우선 크리틱 끝나고 나서 교수님이랑 쫌 얘기해 보려고."

"너는 그때 패널하더니 다 했냐?"

"형.. 이미 끝냈죠. 지금 오면서 그거 출력한 거 들고 오고 지금 모델하고 집에 갈 거예요"

알고 보니 현수가 기분 좋은 이유가 있었네. 어제 집에 가서 마무리한다더니 그새 패널은 마무리하고 출력까지 해왔다니, 역시 항상 놀면서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거 보면 대단하다 싶다.

"아씨, 너 또 다했어? 넌 맨날 설계실에 안 있냐 마감이 코앞인데."

"아니야 형! 어제 집에서 꼴딱 밤새고 다 하고 온 건데, 나는 설계실에서 하면 밤에는 졸리더라고."

현수는 자장면 한입 먹으며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항상 대단해, 마감 때 늦어서 투덜거리는 걸 본 적이 없어 현수는.. 너 유학 준비도 잘 되고 있지?"

혜진은 탕수육을 하나 집으며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그거야 뭐 이번에 포폴 나오고 나면 유학원에서 하는 거라. 그냥 준비하고 있어."

"부럽다. 유학도 가고" 의상이 투덜거렸다.

"그냥 공부하는 거죠 형, 갔다 와서 뭐 할지는 잘 모르겠어"

찡긋거리며 여유롭게 얘기하는 현수, 현수네 아버지가 지방에서 건설사를 하고 계셔서, 현수는 유학을 다녀오고 나면 아버지 회사에서 디자이너 겸 회사 경영을 공부할 예정이다. 항상 웃고 있지만, 뭔가 속을 모를 것 같은 때도 있는 조금은 본인을 숨기는 듯한 현수지만, 항상 밝아서 학교에서는 인기가 많다.


"언니도 거의 다 했죠?" 희주는 혜진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응, 내일은 그냥 여기까지만 하려고. 도면은 하려던 거 거의 다 마무리 돼 가고, 모델은 매스만 할 거라, 콘타도 해뒀고.. 그냥 두 시간 정도면 스터디모형은 할 거 같아. 나 어제도 밤새서 오늘은 못하겠어."

혜진도 거의 다 마무리 해가는 중이다. 중간평가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번 중간평가는 각 반에서 교수님과 설계실 반 친구들과 진행되는 만큼, 조금은 부담이 덜한 게 사실이다. 그래도 졸업작품에 대한 개요를 설명하는 만큼 깨끗한 피티 준비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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