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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18. 2024

건축학도 8.

8. 졸업여행

이제는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들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포트폴리오와 건축기사 자격증을 따는데 열을 올렸다. 다들 원하는 설계사무소는 비슷했다. 대형 설계사무소에 처음부터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고, 작은 아뜰리에에서 작가주의 설계를 지향하는 동기들도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에 한 달간 실습을 나간 후 해당 사무소에 취업을 준비하려는 동기들도 있었지만, 그건 작은 아뜰리에를 포함되거나 교수님이 운영하는 설계사무소에 가능했다. (학교 때 자신의 제자들을 한두 명 영입하는 건축과 시간강사님들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 큰 설계사무소의 경우에는 (이름 내놓으면 알만한 대형 사무소) 포트폴리오와 면접으로 지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 졸업작품까지도 매우 중요한 포폴 작품 중의 하나라, 다들 매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다른 학기보다 졸업학기에는 설계실은 항상 24시간 불야성이다. 밤늦게 까지 집에 가지 않고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설계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사람도 많았다. 라꾸라꾸 하나면 집에 가지 않아도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그들의 몸상태가 더욱 신기할 만큼. 설계실은 집이나 마찬가지로 24시간 건축학과 학생들이 움직이는 장소였다. 중간크리틱이 끝나고 다들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찾아온 날이었다.


 "우리 이번에 우리 과에서 졸업여행 있대." 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며, 현수가 소리치며 들어온다.

 "무슨 졸업여행? 우리는 졸업여행은 없는 걸로 아는데?" 경석이는 자신이 뭔가 모르는 게 생겼다는 게 언짢은 모양이다. 언제나, 과에서 가장 먼저 잘난 척을 해야 하는 성격인데, 내가 몰랐던 사실이 생긴 게 더욱 불편한 느낌이었다.

 "원래 없지. 그런데 뭐 이번에 학생회에서 한번 해볼까 하나 봐. 가고 싶은 사람들만 가는 거라 , 사실 뭐 그냥 맞는 사람들끼리 가는 여행이나 마찬가지긴 하지.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가보냐? 졸업하기 전에 다 같이 2박 3일 놀러 가는 것도 좋지. 매일 설계실에만 있었더니.. 졸작 마무리 하기 전에  이렇게 여행 가면 괜찮지 않냐?" 현수가 웃으면서 말한다.

 " 누나, 갈 거지?" 문 열고 들어와 얘기하더니 언제 코 앞까지 달려들어 얘기하는지.. 빠르기도 하네.

 "글쎄, 뭐 애들 많이 가면 가고.. 아니면 끼리끼리 동아리처럼 가는 거면 안 가고. 그렇지? " 하며 혜진은 살짝 웃어 보인다. 지금 마무리해야 하는 피피티도 있어서, 모니터에서 얼굴을 돌리지도 못한 채, 영혼 없는 답변만 돌아온 혜진에게 현수는 뽀로퉁하다.

 "누나 가자. 우리도 여행 가서 같이 놀고 오자."

대학교에 가게 되면 사실 친해지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신입생과 편입생으로 만나 같은 경상도에서 왔다는 이유 만으로 현수와 혜진은 많이 친해졌다. 그동안 현수가 사귀는 여자친구들의 변천사도 보며 항상 상담해 주고, 일이 있을 때면 같이 다니며 둘 다 오누이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더욱 얘기가 잘 통했고,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은근히 모르게 신경 쓰며 서로 도와주는 그런 사이였다. 오해할 만할 수 있지만, 둘은 전혀 그런 것 없이 친남매 같은 케미로 다른 설계실이 되었을 때에도 항상 서로 크리틱 하며 서로를 챙기는 게 참 특별했다.

 "우리 이번에 졸업여행 가는 거야?" 성민이가 들어오며 자기 자리로 가면서 설렁설렁 얘길 꺼낸다.

 "어? 너 어디서 들었어? " 현수는 언제나 무슨 일이나 적극적인 게 답변에서도 보이지.

" 학생회 애들이 얘기하던데. 이번에는 졸업여행 가볼까 한다고 의사 묻던데? 갈 사람이 있나...?" 성민이는 컴퓨터 모니터를 켜며 이야기한다. 

" 우리 반은 다들 가나?" 졸업작품을 하며 한 번에 정원은 7-8명이다. 이렇게 설계실이 5반이 개설되어 있기 때문에 대략 40명의 졸업생이 있다. 여기에 복학생들도 함께 섞여 있고 재수 편입생들이 두루 섞여 있어서, 다들 여행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정이었다.

성민이는 한번 쓱 둘러보며 혜진과 눈이 마주쳤다. 누나지만, 항상 웃으며 지내는 혜진을 내심 좋아했다. 이번 졸업여행을 가게 되면 한번 같이 이야기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터라. 은근히 말끝을 흐리며 물어본다.

"혜진 누나는 가고 싶어?"

"글쎄 잘 모르겠어. 2박 3일 얘기하던데.. 갈 수 있을까나? 지금 마감도 어떻게 될지 몰라서.. 다들 많이 가면 가고 아님 그냥 졸작 해야지."

피피티 자료를 정리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두 시간 정도를 발표자리를 만들러 자료를 찾고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하네. 공학관 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사러 갈까 일어나는 길이다.

"현수야 우리 커피 마시러 가자."

"알았어, 누나 잠깐만."

현수는 언제나 커피를 즐기는 아이라, 반복적인 일상인 듯 혜진도 현수를 부른다. 하던 것도 그냥 두고 지갑 하나 들고일어나는 현수와 혜진은 설계실을 나섰다.






"우리 이번에 졸업여행 가면 교수님도 가시는 거야?" 5층 설계실에서 나가며 혜진은 현수에게 물어본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 성민이 형이 원래는 졸업여행 없는데, 올해는 다들 가볼까 하던데. 그런데 이게 뭐 어차피 개인경비니까. 학교에서  좀 지원받고, 비용 우리가 조금 내고 이렇게 뭐 생각하는가 봐. 그러면 교수님도 한분 가셔야 하지 않나? 학생들이 졸업여행 식으로 가게 되니까. 조만간 정리해서 얘기해 준대."

"응. 그렇구나. 우리 학교는 졸업여행을 공식적으로 가고 한 적이 없잖아. 가면 재밌긴 하겠다. 다들 설계 안 하고 와서 마음은 싱숭생숭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일탈이네 다들. 매일 설계실 있다가 놀면 너무나 좋지. 어디로 갈지는 알아?"

혜진도 나름 학교에서 여행을 가본 적은 없었던 터라, 생각해 보니 들뜨기는 한다. 이렇게 같이 학교에서 가는 게 아니라면 언제 또 동기들과 여행을 가보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들 설계실에서만 보던 사람들과 여행이라니.. 그래도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네. 그리고 혹시나 교수님 중의 한분이라면 그분도 가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공학관 입구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오는 길에 교수실을 지나고 학교 공지 포스터들이 붙은 알림판을 쳐다본다.

"이번에 취업설명회 있네. 현수 너 유학 준비는 잘 되고 있어?"

"그러게, 지금은 유학으로 가닥을 잡았으니까. 집에서도 유학 가라고 하셔서 아마도 그걸로 준비할 것 같아. 누나는 설계 계속할 거야? 아니면.. 건설사 가려고?" 현수는 의아한 듯 혜진을 쳐다본다.

"그러게. 고민이야. 건설사 갈지 설계사무실 갈지.." 혜진은 긴 머리를 넘기며, 눈을 찡긋거린다.

" 누나. 지금 수업도 잘하고 나왔잖아. 교수님한테 한번 얘기해 봐.."

"뭘 그런 걸 또 얘기해.  포폴이랑 면접도 봐야 하는데.. 건설사 가면 돈도 많으니까 이리저리 고민 돼." 혜진은 웃으며 손사래 치며 말했다. 항상 학기 중에도 장학금도 꾸준히 타 온 혜진이기에, 교수님께 얘기드려 사무소를 간다면 조금 기회가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건축사무소에서 설계를 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건설사에 비하면 설계사무소 신입은 늦은 일에 스트레스는 많지만, 역시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박봉이다.

" 그건 그래 누나 건설사가 페이가 좋긴 하지. 그래도 누나 디자인이 너무 좋은데.. 잘 생각해 봐."

현수는 내심 혜진이 걱정이다. 자신은 부모님 덕분에 걱정 없이 학교 생활을 했지만, 항상 매 학기마다 장학금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 항상 짠해 보였다. 누나가 얼른 돈도 많이 벌고 디자이너로도 성공하길 바라 준 동생이었다.

"그건 그렇고 현수 뭐 마실래? 오늘 내가 사줄게." 둘은 공학관 1층에 있는 카페루노에서 뭘 마실지 고르는 중이다. 

"그래. 나는 아메리카노." 

" 너는 꼭 내가 산다고 하면 아메리카노 먹더라. 그냥 너 좋아하는 카페모카 마셔."

"어? 누나 그거 알고 있었어?"

"내가 그걸 왜 몰라. 매일 사준다고 하면 아메리카노래. 그러니까 내가 그냥 사다 주는 거 아니야.. 먹고 싶은 거 그냥 먹어. " 둘은 서로 황당함에 웃는다. 알면서도 그렇게 알아주는 착한 동생. 그래서 마음을 터놓게 된다.

"이번에 우리 졸업여행 하면 꼭 가자 누나."

" 알았어 알았어. 우선 네 거 받아 커피 나왔어" 아메리카노 한잔 카페모카 한잔 나왔다는 말에 혜진은 서둘러 현수 등을 살짝 친다. 








어젯밤까지 설계실에서 작업하고 겨우 12시 되기 전에 기숙사에 들어왔다. 기숙사 통금은 12시라 그전에 들어와야 기숙사에서 발을 뻗고 잠을 잘 수 있고, 그 후에는 오전 6시에 개방하기 때문에 12시 이후에는 설계실에서 잠을 자야 했다.

밤늦게 까지 작업하는 게 어려워 혜진은 항상 밤에 작업을 하더라도 밤 12시 기숙사 통금 전에는 들어왔었다. 이번학기는 졸업이라, 설계수업과 교양수업 전공과목 하나만 있어서 정말 여유로운 시간인데도 종일 매달려도 설계수업은 진도가 나가는 날이 있고, 하루종일 멈추어져 있는 날도 있다. 도면을 확인하고 모델링을 하는 작업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지만 매 학기마다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부담감은 여전하다. 언제나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힘들기도 하지만, 뿌듯한 성취감이 있는 건 아마도 내 디자인에 대한 애착이 넘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턱.

"민주야, 안녕 잘 있었어?"

헤진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축 쳐진 몸만큼이나 목소리에도 힘이 없이 주욱 늘어지는 긴 단어들의 나열, 민주는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고, 혜진을 돌아본다.

"언니, 이때 또 작업했어요? 오늘은 일찍 온다고 하더니.. 오늘도 할거 많았나 보다."

민주는 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화학과는 4년 제 이 기 때문에 내년에 졸업할 생각에 민주 역시 너무나 바쁘게 학점을 관리하는 모범생이었다. 남자친구는 같은 과 4학년 선배로, 둘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곤 했다. 저녁 시간에도 데이트를 하고 들어오느라 늦게 오는 날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 시기라 그런지 요 며칠새는 기숙사에 일찍 들어오고 있었다.

"어, 왜 이리 해도 해도 줄 질 않아. 도면들 하나하나 다 수정하다가 시간이 벌써 11시 반이더라고, 짐 급하게 싸고 왔어. 저녁 먹고 왔어? 남자 친구는?"

기숙사 방은 좌우로 나뉘어 있다. 각자 베드가 하나씩 있고, 문을 열자마자 있는 책상 뒤편으로 옷장과 수납장이 있다. 혜진은 자신의 책상에 노트북과 모형 그리고 가방을 차례로 올리며 민주에게 물었다.

"나는 저녁 먹고 왔어요. 언니 저녁은요?"

"나 아까 전에 기숙사에서 먹고 갔다가 작업했어. 아. 근데 이 시간 되면 요즘에 너무나 배고프더라. " 힘이 쭉 빠진 혜진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나 라면 있는데 줄까요?" 책장에 놓아둔 컵라면을 꺼내며 보여준다. 

"아.. 진짜? 근데 지금 먹으면 내일 완전 얼굴 불을 거야.. 내일 교수님 수업도 있어서 안 되겠네? 하하하"

"맞아, 언니 설계교수님 멋있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멋있으셔. 다들 디자인하는 분들이라 그런지 멋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아. "

"언니, 지금 과제할게 아니라 얼른 자요. 내일 이쁘게 하고 가야겠구나!"

"예쁜 건 둘째 치고.. 이제는 씻고 와야겠다 민주야. 갔다 올게"

혜진은 샤워용품을 챙겨 수건하나 챙긴 다음 샤워실로 향했다. 

'그러게. 내일 교수님 수업인데.. 뭐 좀 예쁘게 입어야 하나?' 혜진은 내심 교수님 수업이라 신경이 쓰인다. 수업 크리틱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학기 교수님께 수업을 들으며,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시간이 기대되기도 한다. 

'교수님 좋아해서 뭐 해. 어차피 나는 학생인걸.'

이번학기 설계강사님으로 처음 오신 교수님이었다. 학교수업 수강신청 때 대부분 동일한 교수님이 5학년 수어를 맡는데,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오신 교수님이 계셨다. 사실 처음에는 수강신청을 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다른 교수님 수업을 클릭했는데. 수강신청 날에 늦어 원했던 교수님 반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신청한 반이었는데, 지금 반학기 지나며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유명한 설계사무실 팀장이기도 하지만, 워낙 젠틀하셔서, 매일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다른 교수님들과 달리, 차분한 어조로 아이들을 다독이는 스타일이라, 다들 잘 따르고 있었다. 특히나, 혜진이 좋아하는 젠틀한 스타일이라 더욱 관심이 생겼던 것이다. 아무도 혜진이 교수님께 관심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없지만, 혼자만의 짝사랑으로 바라보는 수업 시간이 또 요즘 학교 수업하는 재미가 있다. 

헤진 은 내일 수업을 생각하며, 머리까지 감고 일과를 마무리한다. 힘들었던 요즘 설계준비 시간이 조금 버겁다고 느끼던 찰나. 오전에 설계실에서 얘기한 졸업여행이 생각이 났다. 

'졸업여행이라.. 공지 나면 나도 간다고 하긴 해야겠다.'











"언니 저 먼저 밥 먹어요"

혜진과 민주는 아침에 대부분 같이 밥을 먹는 편이지만,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민주는 얼른 먹고 수업을 간다. 오늘은 민주의 1교시가 있는 날이기도 하지만, 헤진의 설계수업이 있는 화요일이었다. 주말과 월요일은 그래서 항상 바쁘다. 아무래도 마지막 학년이다 보니 교양이나 필수과목의 경우 거의 수강을 완료했고, 건축설계와 전공필수 2과목만 듣고 있기 때문에, 거의 일주일의 에너지는 화요일을 위해 모두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불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혜진이 말했다.

"어, 민주야 오늘 수업 잘하고 와, 나중에 저녁에 봐" 목소리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한 채 느릿느릿한 어투다.

"알았어요 언니. 언니도 얼른 준비하고 밥 먹어요" 민주는 1교시수업에 모두 준비하고 나서며 혜진에게 인사를 했다.

 민주가 나가며 깨우는 바람에 헤진 은 일어나 이불속에서 눈만 멀뚱멀뚱 앞에 창을 내다본다.  침대 옆에 놓아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벌써 7시 30분이다. 수업은 2시에 있지만, 아침을 기숙사에서 먹고 알파에 들러 재료를 산 다음 설계실에 가야 했던 터라 혜진은 여전히 침대에 함께 있고 싶지만, 이불을 걷으며 몸을 일으켜본다.

 "하.. 그래 일어나야지. 아. 근데 졸리다."

일어나야 하는 마음과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교차하는 아침의 순간이다. 헤진 은 풀어둔 머리를 다시 살짝 묶으며 이불에서 일어섰다.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정돈하고 슬리퍼를 신고, 우선 책상에 올려둔 치약 칫솔을 들고 치약을 짰다. 오른손으로 이를 닦으며, 한 손으로는 샤워용품을 챙겼다. 눈까지 부은 듯한 느낌에 모닝샤워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서 머리와 가벼운 선크림을 바르고 오늘은 청바지에 위에 핏 감이 있는 흰색 티셔츠를 입었다. 이리저리 거울에 얼굴과 머리, 옷까지 체크하고 나서야 방을 나섰다. 

손에는 지갑하나와 열쇠 그리고 기숙사 식권을 챙겨 나오는 길이다. 아침을 먹고 학교 앞 알파에서 재료를 사서 다시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기숙사 관은 남 여가 분리 된 건물이었지만, 식사는 남자기숙사 앞에 위치한 식당에서 함께 먹었다. 그래서 다른 학과 남학생도 함께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혜진 역시 5년간 학교 생활을 하며 건축공학과 학생들과 조인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경과 수업을 듣기도 했으며, 교양과목을 수강하며 전기과 화학과 등 다른 과의 남학생들을  만날 일이 많아, 교내 기숙사에서 인사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에는 혜진에게 호감을 표하는 친구들도 꽤 있던 터라, 그중 혜진도 사귀어 본 남자친구도 있었고, 그냥 그렇게 친구로 지나가는 남학생도 있었다.

혜진은 기숙사 식당에 들어서서 식권을 내며 한번 쓱 식당 내를 둘러본다. 누군가 아는 친구가 있을까 싶어 둘러보는 길이지만, 이날 이 시간에는 같이 식사할 만한 친구가 보이지 않아 혼자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혼자 멍하니 그냥 밥을 하나하나 입속에 넣고 있을 때쯤, 누군가 혜진의 옆자리에 식판을 두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지난 학기 건축설비 수업 때 조인해서 같이 프로젝트 팀을 했던 경록이었다. 사실 둘은 조금은 애매한 사이였다. 혜진과 경록 그리고 건축공학과 친구 3명이 더 해서 총 5인이 한 팀으로 설비수업을 했었다. 그중에서 건축공학과 친구 둘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경록과 다른 친구 한 명은 여자친구가 없었는데 경록이 혜진에게 호감을 표한 것이었다. 경록이 키가 크고 똘똘하게 생긴 딱 공부 잘하는 범생 스타일의 이상적인 남자 친구이기는 했지만, 왠지 경록이 그리 남자로서 마음엔 썩 들진 않았다. 그래서 경록의 고백을 거절했던 터라.. 혜진에게는 조금 불편한 사이이긴 했다. 하지만, 경록은 그런 혜진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헤진에게 관심을 표하는 중이었다.

" 이제 밥 먹으러 온 거야?" 

" 어? 경록아. 너 오늘 1교시 아니야?" 앞자리에 앉으려는 경록을 보며 혜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 맞아. 원래 1교신데 어제 갑자기 휴강됐어. 교수님 일 있다고 하셔서 다른 시간 잡는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늦잠도 좀 잤지. 너는 웬일로 늦게 나가?" 경록은 혜진이 테이블에 식판을 올릴 수 있도록, 앞에 두었던 모자를 치워주며 얘기했다. 그래도 내심 자기의 시간표를 기억해 주는 혜전을 보니 기분이 좋다.

"응.. 오늘 그럼 수업은 오후야?"

"어, 그렇지. 밥 먹고 도서관 가서 공부 좀 하고. 수업 가야지?"

"요새 많이 바빠? 너네 마감이 언제야?" 경록은 다 먹은 듯 식판을 정리하며 혜진을 바라보았다.

"나 오늘 다크서클 내려오지 않았어? 이제 곧 방학이니까 얼마 안 남았지. 오늘도 모형이랑 패널 준비하러 밥 먹고 설계실 가봐야 돼."

오늘 나온 저녁은  부대찌개와 쌀밥, 그리고 돈가스와 김치 숙주나물 반찬까지 아침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간편 메뉴였다.

"나 이제 가봐야 돼. 오늘 설계 그리 늦게 안 끝나면, 저녁 같이 먹을까?"

혜진은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으며 경록을 올려다봤다. 언제나 담담하게 , 조용하게, 얼굴 변화 하나 없이 말하는 천상 공학도. 왠지 그런 모습 보고 있으면 뭔가 반박하지 못할 것 같은 표정에 거절이라는 게 참 쉽지 않다.

"어.. 그래. 나 오늘 수업 끝나면 6시 정도야 괜찮아?"

"응, 내가 6시에 설계실 데리러 갈게. "

"알았어. 그럼 나중에 봐."

갑작스레 잡히는 저녁 약속 시간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어차피 저녁에 저녁도 먹고 쉬기도 할 예정이라, 함께 만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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