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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13. 2024

건축학도 6.

중간크리틱

10. 중간 크리틱






혜진은 덮고 있던 이불을 뒤척이며, 기숙사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어제 설계실에서 출력물까지 들고 와 패널 준비를 마치고,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기숙사에 들어왔다. 발표가 있는 날은 밤샘을 하게 되면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라, 무얼 얘기해야 하는지 정리가 안 되는 걸 알고 있기에 혜진은 그 이후로 크리틱 전날은 밤샘을 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 마무리 하는 최종발표에서 , 잠을 자지 못해 멍했던 머릿속의 이야기를 내뱉기는커녕, 그동안 준비를 잘했던 크리틱 내용들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었다. 모두들 한 학기 하며 친해진 설계실 분위기였지만, 다른 반 교수님들도 처음 뵙는 자리에서 PT를 하며 심하게 크리틱 당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로 4년간 혜진은 마감 일 전에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그 날 만큼은 숙면을 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수님들 앞에서 내가 낸 아이디어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않으면, 곧바로 여기저기 크리틱이 들어온다는 걸 알기에, 그전에 교수님들이 하실 수 있는 반박 가능한 내용들을 먼저 질문을 뽑아, 마음속으로 크리틱을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4년을 지내다 보니 어느새 온순한 줄 알았던 혜진도 꽤나 말발이 늘었고, 언제나 크리틱에 내쳐지더라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타당성 있는 말하기 실력을 장착했다.



"06:00 AM"



혜진은 이불을 개고 일어나며, 시계를 보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룸메이트, 민주는 여전히 잠을 자고 있다. 혜진은 민주가 깨어날까 봐 조심스레 책상 뒤에 있는 자신의 옷장을 열고, 안에 있던 샤워용품을 꺼내 들어 문을 살금살금 나간다.

설계실에 바로 가기 전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나면 뭔가 정신이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어 혜진은 아침 시간에 샤워를 좋아했다.

5분 정도 물을 맞고 서 있으면, 뭔가 잠들었던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느낌에 혜진은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딱"

문을 닫는 소리에 살짝 민주가 몸을 뒤척인다. 룸메이트와 함께 사용하는 2인 1실이기 때문에 각자 스탠드가 있다. 민주가 자고 있어 혜진은 자신의 테이블에 있던 스탠드를 켰다. 옷장을 뒤적여 오늘 입고 갈 옷을 골라본다.

'오늘은 뭐 입고가지?'

아무래도 크리틱 하는 날이라, 다른 날 보다는 조금 마음이 차분해진다. 평소에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고 다닌 캠퍼스였다면, 왠지 이날은 원피스 입고 차분한 마음으로 설명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옷걸이 안쪽에 걸린, 한 번도 올해 입지 않았던, 무릎까지 내려오는 얇은 검은 원피스를 꺼냈다. 여기에 평소에 입고 다니는 V넥의 검은 카디건에, 블랙의 3CM짜리 낮은 로퍼를 신었다.

이미, 설계실에 모형과 패널을 두고 왔던 터라, 특별히 가져갈 것도 없었다. 혜진은 입술에 마지막으로 립스틱 한번 살짝 그려준 다음 아침이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기숙사 식당으로 향했다.


기숙사 식당은 오전 7시부터 9시 30분까지 아침식사가 가능하다. 학교 기숙사에 입사하면서 무조건 식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매번 설계실에서 오후 늦게 오거나 점심때에는 학교에 있는 동안 교내이긴 하지만, 기숙사 들어오는 게 힘들어, 대부분 아침은 다들 챙기는 편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면 빵과 우유로 교환도 가능했기 때문에 그렇게 들고 학교 설계실에 가져다 두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7시에 일어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아, 이 시간에 오면 항상 식당은 조용했다. 넓은 식당 안에 띄엄띄엄 앉은 학생들은 눈으로 세어봐도 10명도 안 되는 숫자였다.

학교 가기 전에 뭔가 긴장하면 배가 고파지는 터라, 혜진은 오늘 2시부터 있을 크리틱 전에는 먹지 않을 예정이라, 아침을 챙기러 들어왔다. 큐알로 온라인 식권을 찍고, 식판과 수저를 들었다.

이날 식사는 흰밥에 혜진이 좋아하는 돈가스와 맑은 소고깃국, 그리고 김치와 가벼운 어묵조림까지 함께 나왔다. 이른 아침이라 그렇게 배가 고프진 않았던 터라, 혜진은 그릇에 반찬을 조금씩 담아 올렸다.








타타타타다닥.

타타... 타타타탁 탁탁.

곳곳에서 빠르게 수정하는 자판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침만 먹고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반 8명 중 아직 오지 않은 건 2명뿐, 곧 그 말은 다들 설계실에서 밤새워 작업했다는 말이었다.

곳곳에 모형 만들다가만 쓰레기가 나뒹굴고, 스프레이는 곳곳에 떨어져 있다. 폼보드와 3d 모델링으로 뽑은 모형들은 아직 접착제를 붙이다 만 부분들도 책상 위에 버젓이 올려져 있었다.


"뭐야. 다들 밤샜어?"

"어? 언니 왔어요?"

희주는 얼굴도 보지 않고 인사를 먼저 한다. 다들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같이 이야기할 시간도 없다. 헤진 도 자기 자리까지 비집고 들어가, 가방을 올림과 동시에 책상 앞에 있는 모니터를 켰다.

시간은 오전 8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설계실은 여전히 오후 시간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다.

"아, 밥 먹으러 갈까?"

공학관에 있는 식당은 오전 8시가 되면 오픈을 한다. 외부에서 먹는 밥도 있지만, 설계실에서 밤을 새우고 나면, 아침에 일찍 허기진 날에는 다들 제1공학관 1층에 위치한 공대식당에서 아침끼니를 챙기는 게 다반사였다.

언제나 밥 책임 이는 뭐가 그리 배가 고픈지 의상이가 제일이다.

"혜진이 너 어제 다 하고 갔어?"

"어, 나는 어제 거의 다 했어, 오늘 ppt만 조금 손보려고. 오빠 오늘은 좀 씻어."

학교에 늦게 온 의상오빠가 있어 혜진은 언제나 자신이 나이가 동기들보다 많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뭔가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았다면 어색했을 것 같은 학교 생활이 의상이로 인해 뭔가 조금은 나이에서 부담감을 덜어낸 느낌이다. 그래서 둘은 나이가 있어 그런지 꽤나 가깝게 지냈다.

"어, 밥 먹고 오늘은 좀 씻어야지."

집이 그리도 멀지 않으면서 항상 집에 안 가고 설계실 라꾸라꾸에서 24시간을 보내며,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 가는 의상이는 대부분 아침은 공대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야, 너 안 갈 거야?" 의상은 찌뿌둥한 듯, 몸을 비틀며 특유의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경석에게 묻는다. 의상은 항상 아이들에게 이름을 잘 안 부른다. 그래서 다들 의상이 말하면 한 번씩 고개를 쳐다본다. 눈 마주치는 이에게 말을 걸고 있기 때문이었다.

"형 가요. 나 5분만." 모니터를 보던 경석이 의상과 눈이 마주친다.

"어."

아침시간이 어떻게 지났나 모를 만큼, 혜진도 점점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 음.. 여기 도면만 더 컬러링 하고, 조금 수정하면 되겠네.'



오후 1:30분

다들 이제 말도 없는 조용한 설계실이다. 각자 자기 자리에 앉아서 마무리 ppt를 정리하고, 각자, 모형까지 책상 위에 완성해서 올려져 있다. 그때 벌컥 열리는 문, 교수님이다.

"다들 준비 끝났죠? 2시부터는 발표합시다."

박기우 교수님은 입장과 함께 테이블에 본인의 서류가방을 올리며 발표시간을 공시했다. 3개월간 보며 교수님 성격상 조금만, 이라는 말은 절대 용납하지 않으시는 만큼, 다들 "네"라며 준비하기 분주하다.

"오케이, 좋아요." 교수님은 뭔가 기분이 좋으신 듯, 가방을 올려두고 설계실을 한 바퀴 돌기 시작하셨다.

"중간 크리틱인데 벌써 모형에 이렇게 돈을 썼어?"

현수의 중간모형을 보시고는 웃으시며 깜짝 놀라신다. 요즘 3d프린터를 이용해서 모형을 만들기는 하지만, 사실 중간모형은 간단한 매스모형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현수의 모형이 너무 색달라 보였다.

"네! 대충 매스사이즈랑, 평면 구성 조닝은 마무리해서, 같이 해봤습니다."

현수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친다, 뭐가 잘 못 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수정하기도 하지만, 또 자신의 생각을 웅얼거리지 않고 항상 자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항상 자신감 넘쳐 보여서 좋다.

"그래."

현수의 자리를 지나, 혜진의 자리에 멈춰 섰다. 자리에서 현재 모니터에 펼쳐 둔 피피티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혜진인 도면은 대략 나왔어?"

"네, 도면은 저도 조닝하고 코어 정도만 지금 위치 잡았고요, 입면은 아직 못해서 단면까지만 우선 대략적으로도 면 완성했어요."

"그래 알았어, 나중에 발표하는 거 볼게."

"네"

"오늘 혜진이 원피스 입은 거 봤어? 이쁘네 그렇지?"

"오올~ 누나." , " 언니 오늘 신경 쓰고 온 거죠?"

교수님 한마디에 갑작스레 설계실이 소리가 가득 메워진다. "자자! 다들 빨리 마무리하고, 노트북도 하나 세팅해 줘."

손뼉을 치며, 잠시 시끄러워진 설계실을 집중하게 만드는 교수님이다. 웃으며 쓱 설계실을 한 바퀴 둘러보신 다음에 문으로 향하는 모습에 내심 혜진도 마음이 심쿵한다.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효준이의 발표가 끝났다. 중간발표는 각자 자리에서 시계방향으로 발표를 시작했으며 효준이도 3개월간 준비한 자신의 사이트 및 콘셉트, 동선계획 및 공간계획, 층별 계획에 대한 대략적인 pt자료를 준비했다.

"이제 혜진이가 마지막인가?"

"네. 현수야 나 이거 usb 연결 좀."

"어, 줘 누나."

"혜진이 모형은 역시 깔끔하네, 시작해 볼까?"


"네 , 김혜진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혜진이 준비한 ppt는 50페이지 중에 39페이지째에 있는 도면을 설명하는 중이다. 다들 지난번 사이트 접근방법과 도면 조닝 방법과 달라진 혜진의 아이디어와 중간 매스 모형에 함께 집중하며 듣는다. 15평 정도 되는 설계실에는 혜진을 포함한 총 7명의 건축학도가 같이 공부하고 있다. 중간에 모형을 두고, 벽면에 빔으로 쏘는 ppt를 보며 다들 설명과 모형, 그리고 도면을 번갈아가며 다른 사람들의 해석법도 함께 공부한다.

"기존의 전시관 박물관 조닝을 기초를 담아보았다면, 전쟁기념관인 만큼, 전쟁의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슬픔의 공간을 시작으로 전쟁의 두려움, 전쟁의 폐해, 전쟁으로 인한 무력화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내용들을 함께 담아 보았습니다. 앞으로 더욱 공간에 대한 디벨롭을 통해 도면을 더욱 세세히 다룰 예정입니다."

혜진은 마지막 피피티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빔프로젝트를 쏜 벽면에서 앞으로 몸을 돌렸다.

"이것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음, 그래 혜진이도 준비 잘했어. 우선 사이트 접근은 좋았는데, 그게 건축 콘셉트에서 우리가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보다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정리가 된 느낌이네?"

"네 전쟁기념관을 생각할 때 우선은 슬픔 애도의 공간보다는 현실적인 부분을 먼저 부각했었는데요. 계속 디벨롭하고 생각하다 보니, 우선은 전쟁에 대한 사실과 두려움, 현실을 만나게 해 준 분들에 대한 애도의 공간을 시작으로 전쟁이라는 테마를 풀어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공간에 대한 조닝을 조금 더 고민하면서, 기존의 구성에서 변경된 공간으로 구성을 해보았습니다."

"음, 우선은 너무 공간을 현실적으로만 전쟁을 풀어가고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애도의 목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은 굉장히 좋은 것 같아. 그런데 이게 보이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공간을 표현하고, 그 마음을 집약적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에 대한 요소들을 또 고민하게 되면, 너무나 깊게 들어가야 할 수도 있어. 우리가 졸업작품이지만, 이게 또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고민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해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 기존 구성과 조금 달라져서 놀라긴 했지만, 접근법은 사실 이게 더 좋은 것 같아. 아무래도 또 고민하게 되면 시간이 줄어들게 되는 거니까, 이번달에는 이런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서 공간구성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혜진 알았지?"

"네 교수님!" 역시 교수님이다. 혼자 끙끙대며 갑작스레 여기에서 바꾸어도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후회하는 것보다는 빠르게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했던 부분인데, 그분을 잘 알아봐 주셔서 조금 마음이 편했다. 혜진을 마지막으로 크리틱이 끝난 시간은 4시였다. 오랜만에 빨리 끝난 시간에 다들 너무나 들뜬다. 항상 설계 수업은 개인 크리틱을 하다 보면 6-8시에 마무리가 기본이었는데, 해가 있는 시간에 수업이 끝난다니 다들 설레는 모습이다.

사실 중간크리틱에 반에서 친구들과 진행했던 터라, 그리 크게 긴장하지도 않았고, 교수님의 성격상 모질게 얘기하시는 분이 아니었기에 반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자, 오늘 그럼 우리 크리틱 끝이지? 중간평가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오늘은 다들 조금 쉬어, 보니까 수고했네. 내용들도 다들 정리 잘했어. 수업 때 들었던 내용들을 그래도 다들 정리가 되어 가는 분위기라 조금 마음이 놓이네, 우리 한 달 뒤에 전체 발표이건 알고 있지? 오늘 한 거 기반으로 조금 더 타이트하게 해야 해. 다음번에 다른 반 교수님들한테 우리 반 구박받지 않으려면 스피드 좀 올리자고!"


 언제나 아이들에게 응원을 보내주는 박기우 교수님 덕분에 다들 어제 밤새고 힘들게 마무리한 시간에 뿌듯하다. 

"우리 오늘 회식할까?"

"와~ 교수님 최고예요!"

"학교 앞에 삼겹살 집에서 다 같이 봐, 어디로 갈지 얘기해서 알려줘요"

교수님의 회식 소리에 다들 너무나 기분이 좋다. 설계실에서 노트북이나 컴퓨터는 언제나 켜두기 때문에 다들  끌 생각은 없다. 어느 고깃집으로 갈지 한 마디씩 하고 있을 뿐.

오랜만에 들뜨는 회식이지만 , 언제나 머릿속에서는 졸작에 대한 생각이 가득하고, 다들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으니 아마도 오늘 저녁은 술과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설계실에서 또 다른 2차가 시작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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