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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15. 2024

건축학도 7.

회식

"모두들 수고했다. 디벨롭이 많아진 사람도 있고 비슷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마감 시간이 모두 같으니, 그때까지 다들 더 분발하도록 하자. 오늘 너무나 수고 많았고, 든든하게 먹고, 또 파이팅 해보자!"

박기우 교수님의 목소리는 참 단단하고 잔잔하다. 그래서 회식자리에서 이지만, 다들 그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살짝 단발머리가 아닌 귀를 덮는 스타일에, 깔끔한 캐주얼 스타일을 많이 입으셔서 그런지 더 사람이 진중해 보이는 편이었다. 박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다들 들고 있던 잔을 힘껏 올려본다.

"파이팅!" 파이팅 소리와 함께 서로 잔을 맞대며, 중간크리틱이 끝났다는 마음에 미소가 연신 지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다들 중간마감에 대한 부담과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꼬질한 모습이었는데, 마감과 함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나니 다들 기쁠 수밖에 없다.


회식 장소는 학교 후문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삼겹살집이었다. 넓은 돌판에 콩나물은 마음껏 가져와서 구워 먹을 수 있고, 삼겹살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그리 비싸지 않았다. 아무래도 학교 근처라서 그런지 부담 없는 가격대라는 점에서 학생들도 많이 찾는 맛집 중의 한 곳이었다. 

꽤나 넓은 식당이었기 때문에 설계실 반 친구들 8명 정도 다 같이 술 한잔 하러 오는 날에는 여기 삼겹살집을 종종 찾곤 했다.

단체가 오기에도 좋은 넓은 테이블이 대략 10개 넘게 있기 때문에 공간이 답답하지 않다는 점도 좋았다. 설계반 친구들은 그중에서도 창가 쪽에 있는 긴 테이블에 다 같이 모여 앉았다.

교수님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자 하는 얘기는 지난번에 나왔던 졸업여행이었다. 


"올해는 졸업여행이 있다고 하던데 다들 갈 생각이니?"

맥주잔을 들어 올리며 박교수 님은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는 중이다. 

"원래 가지 않을 예정이었는데 , 그래도 올해 설계반 애들이 다들 잘 맞는지, 가고 싶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굳었대요. 아마도 멀리는 아니라 하더라도 다 같이 가지 않을까 싶어요.

교수님도 이번에 같이 졸업여행 가실 수 있어요?"

교수님 맞은편에 앉아있던 현수는 교수님의 의사도 챙겨 묻는다. 왠지 그런 현수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되는 혜진도 교수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가보면 좋겠지만, 사실 너희들 졸업여행에 내가 가서 뭐 하겠니. 멀리 가는 게 아니라고 하면 잠시 들러보도록 할게. 그래도 졸업설계는 다 같이 하면서 조금은 특별하니까 말이야."

박교수 님의 얘기에 혜진은 잠시 고개를 돌려 교수님을 바라본다. 순간, 교수님과 눈이 마주친 혜진은 살짝 웃어 보였다. 답이라도 하듯 교수님도 혜진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어주시는 모습이 순간 혜진은 두근거림을 느꼈다.





설계반의 회식은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박교수 님과 함께 잔을 기울이며 맥주는 빈병으로 테이블이 채워지고 있었고, 3-4명씩 이제 이야기가 분리되어 가며 이리저리 자신들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졸업작품을 어떻게 더 디벨롭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와, 졸업여행,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나 빠지지 않는 남녀 커플에 대한 이야기가 그 뒤를 이었다.

 그중에 다들 조심조심 눈치를 보며 의상오빠가 물었다. "교수님은 결혼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반은 다들 결혼하셨는지 그 내용을 전혀 몰랐다. 오셔서 단순히 수업만 하시고 가셨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 교수님이셨다. 항상 궁금했지만, 그 누구도 몰랐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혜진 역시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 하하, 뭘 그런 걸 물어보나요?" 박교수 님은 부끄럽다는 듯 조용하게 말씀하셨다.

 " 음.. 결혼은 안 했습니다. "

 "그럼, 결혼하실 분은 계세요?" 다들 궁금한 듯 이번에는 교수님을 일제히 바라보고 있었다. 교수님도 이젠 말할 때인가 싶은 마음이신지 쑥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뭔가, 저한테 궁금하게 많았나 봅니다. 결혼은 안 했습니다. 결혼할 사람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 예정은 없지만, 뭔가 결혼이 꼭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 교수님은 나이가.." 의상 오빠가, 궁금했던 말을 물어줄 때 혜진은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물론 티 내지 않고 가만히 앉아 눈만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때 교수님이 혜진이 쪽으로 얼굴을 들며 얘기하셨다.

 " 35살입니다. 여러분보다는 꽤 많죠? "왠지 모르게 그 말이 혜진을 향해하는 말 같아 혜진은 눈길을 살짝 피하고 말았다.

 '35살.. 나랑은 6년 차이구나' 혜진은 속으로 자신과의 나이를 생각해 봤다. 혜진은 대학을 졸업 후, 일을 하고 학사편입을 했던 터라, 학사 친구들의 졸업 시기가 24-25살인 것에 비하면, 혜진은 학사편입으로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었다. 막상 교수님의 나이를 알고 나니 뭔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자신과 생각보다 크게 차이 나지 않는 교수님 나이에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 교수님 그럼 결혼은 하실 때가 되신 거 아니에요?"

 " 글쎄요. 결혼도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보니.. 하하. 아무튼 이 얘긴 그만하죠? 학생들한테 괜히 제 나이가 부담을 주는 것 같은데요?"

 " 그래, 우리나 이번 졸업 설계 열심히 해서 교수님 계신 회사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교수님은 유학도 다녀오신 건가요?" 의상오빠가 언제부터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았던 건지. 이번 회식에서는 굉장히 주도적이다.

 " 네, 저는 동경대에서 석사를 했죠. 유학을 선택하고 싶다면, 유학을 가셔도 좋고, 그게 아니면 설계사무소나 다들 요즘에는 건축기사 자격증을 필수로 하니까 건설사도 많이 지원하죠. 나에게 어느 분야가 맞을지 고민은 충분히 하고 지원해 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에 회사에서 인턴을 모집할 예정이라, 혹시나 실습해보고 싶으면 얘기해줘요."

 교수님이 계시는 혜성건축은 다들 가고 싶어 하는 큰 건축사무소라, 이번 인턴은 혜진도 해보고 싶었던 터였다. 어떻게 하면 인턴쉽에 지원해 볼 수 있을까 했는 찰나, 교수님이 얘기해 주시는 걸 듣고 혜진도 궁금해졌다.

 " 교수님 저희 그럼 인턴쉽은 교수님께 우선 그냥 얘기드리면 돼요?" 혜진도 해보고 싶었던 인턴쉽을 물었다.

 " 혜진이도 해보고 싶어서? 음.. 우선은 알았어." 교수님은 혜진을 보더니 잠시 생각하 신 후에 말씀하셨다.

 " 네" 알쏭달쏭한 교수님의 표정에 혜진은 갑자기 걱정이 된다. 괜히 한다고 해서 부탁드린 건가 싶어, 괜히 걱정이 앞섰다.

 "아!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서, 우선은 일어나야게는데? 여기까지는 내가 우선 결제하고 갈 테니까, 다들 지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더 주문할까?"

 박교수 님은 이제 가방을 조금씩 정리하며, 말씀하셨다.

" 역시 교수님!, 저희 그럼 고기랑 술 조금 더 주문하겠습니다." 역시 분위기 메이커로 빠질 수 없는 현수가 말을 하며 추가 주문을 했다.

교수님이 일어서자 혜진은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진다.

'괜히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교수님이 불편하신가?' 싶어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 찰나, 교수님이 살짝 혜진을 향해 오셨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 혜진아, 잠깐 바깥에서 볼까?"

혜진은 놀란 눈으로 "네"라고 조용히 대답하며 잠시 밖으로 나섰다.

" 자, 그럼 나는 이만 갈게. 다음 시간에 보자."

교수님이 한 손을 들어 인사하자 다들 일어나  꾸벅 인사드린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혜진은 문 밖에 서서 그렇게 나오는 교수님을 잠시 기다리고 서있었다.

스르륵.. 자동문이 열리며, 교수님은 혜진이를 보며 어깨 한쪽에 있던 가방을 끌어올렸다.

 " 혜진아, 너 회사에서 이번에 인턴 할 생각이 있니?"

 "아.. 네. 안 그래도 교수님께 혹시나 인턴 할 수 있는지 여쭤 보려고 했어요."

 " 음.. 그래. 잘 됐다. 내가 이번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널 생각하고 있어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다른 애들한테는 아직 확정이라고 말은 하지 말고, 방학 시작하면 하는 걸로 알고 있어. 괜찮을까?"

 " 네? 그럼요 교수님, 전 너무나 좋아요. 이번에 방학에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는데.. 기회 주시면 열심히 해볼게요."

 박교수 님이 웃으며, 혜진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 그래, 그렇게 알고 있을 테니까.. 우선 오늘은 수고 많았어. 얼른 들어가."

 " 네, 감사해요! 교수님 들어가세요."

혜진은 연신 미소가 절로 나왔다. 기쁠 수가 없었다. 해보고 싶었던 인턴쉽을 혜성건축에서 해볼 수 있다니.. 거기다 교수님 프로젝트에 같이 하게 되면, 더 자주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교수님과 함께 인턴쉽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혜진은 가게 안으로 눈길을 돌렸다.

현수는 혜진을 향해 얼른 들어오라며,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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