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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 Sep 22. 2024

건축학도 10.

졸업여행

졸업여행






벌컥.

조용한 설계실의 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우리 이번에 졸업여행 확정이다."

현수가 문을 열며 하이톤의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현수의 말 한마디에 설계실에서 작업하던 희주, 혜진, 의상은 현수의 소리 지르는 모습에 깜짝 놀라 일제히 쳐다보았다.

 " 아! 우리 이번에 간대?" 혜진도 신기한지 한번 더 물어본다. 건축과 5년 차이지만, 작년까지도 여행 간다는 졸업선배들은 본 적이 없어서 이런 기회가 의아하기도 했다.

 " 진짜 간대. 이번에 학생회에서 주관하지만, 그냥 가고 싶은 사람들 모아서 간다고 그러네. 아직 여행비용이랑 일정이랑 그런 건 안 나와서. 그건 조만간 공지 낸다고 하더라고.

이제 여름 방학이기도 하고, 그냥 방학 겸 졸업여행 겸 겸사겸사 모이는 거겠지?"

설계도면을 치는 캐드화면은 저 아래 내려두고 대신 게임을 하던 의상도, 드디어 헤드셋을 벗고 현수에게 말을 걸었다.

 " 야. 현수. 뭐야?"

목소리는 낮게 들리지만, 뭔가 궁금한 게 한가득인 의상형. 언제나 뒷북치는 1인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이라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 형, 우리 그때 졸업여행 간다고 한 거, 간대요."

 " 아. 졸업여행?"

 "그래서, 너 갈 거야?"

 " 그럼요 형, 가야죠. 형도 같이 가요."

 " 아! 귀찮은데? 갈까?" 능글맞게 웃으며, 입꼬리를 올리는 의상이 흥미가 있다는 듯 물었다.

투덜이와 긍정이의 대화 같은 둘 덕분에 음악소리만 흐르던 설계실에 활기가 돈다. 계속 작업을 하고 있다 보면 다들 자기 작업에 빠지다 보니 이렇게 누군가 와서 소리를 내면 그제야 서로, 이야기하며 쉬어가기 시작한다. 현수는 평소에 밝고 사람들과 다들 유하게 친하게 지내서인지, 다들 현수가 하는 말에는 부담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희주랑 누나도 가자."

현수는 희주와 혜진에게도 함께 가자며, 졸업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태 없었던 기획이기 때문에 다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듯하면서도, 끼리끼리겠지만,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갈 수 있는 졸업여행이 잡혔다는 일에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이미 친한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따로 여행을 즐겨본다는 일은 생각지 못했던 터라, 이번 여행으로 다들 한 번은 다른 곳에서 보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지게 된다.

5년을 함께 한 동기들, 다른 과에 비해 설계실이라는 공간이 있어, 항상 그곳을 내 방처럼 생각하며 지내다 보니 어찌 보면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서 싸우고 토라진 경우도 있고, 이성친구 스토리도 다들 입소문이 나고, 설계하며 말다툼하는 일도 있고, 정말 다양했던 이벤트들이 있었기에 더욱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A반 설계스튜디오부터, 졸업으로 많은 설계반이 있지는 않지만, C반까지 학생들 중 얼마나 갈지도 아직 미지수였다. 

 어느새, 뒤돌아 보면 눈 깜짝할 사이 4년이 흘렀고, 그렇게 마지막 1년이 남은 5학년이었다. 다들 걱정하면서도 기대하는 마지막 학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예민하기도 했지만, 원래 다들 긍정적이고, 어떻게든 다들 취업이 되는 설계사무소 길이 있기에 다들 그리 난감하진 않는 듯했다.

다른 과와 달리 입사시험을 굉장히 준비해 가며 졸업하는 게 아니라, 입소문으로 곳곳에 어떻게든 졸업하고 설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원하는 설계사무소인가가 관건인거지...


 3층 건물로 기획하고 있어 혜진도 마지막 루프층의 도면을 그리고 있었다. 이번 도면까지 끝내고 나면 입면도와 단면도를 더 추가해서 그려야 한다. 레이어를 변경해 코어 부분을 더욱 수정하고 완성해 가는 모습을 어느새 현수가 옆에 와서 섰다.

 " 누나 벌써 루프 그려? 진짜 빠르네."

 " 뭐야, 너도 거의 다 했잖아. 루프까지 우선 그려놓고 다음 주에 크리틱 받아야지. 이번주에 뭔가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벌써 또 일주일 지났어. 슬프다 진짜."

" 누나, 이번에 가면 꼭 같이 가야 돼."

" 꼭 가야 돼? 나는 그냥 아직 잘 모르겠어 갈까 말까 싶네."

"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우리는 하나인 거 몰라?" 웃으면서 대답하는 현수를 보면 또 웃게 되는 혜진이다.

"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

" 글쎄, 그건 아직 공지가 안 났는데, 다들 많이 가는데 가지 않을까? 이제 여름이고 하니까 제주도나 강릉 속초 뭐 강원도 바다 이렇게 이야기 중인 거 같아.'

 " 누난, 어디 가고 싶은데 있어?" 현수가 루프층을 그린 도면을 현주 마우스를 이용해 이리저리 돌려보며 이야기했다.

 "글쎄.. 나 제주도 오래돼서 가보고 싶긴 하다."

현수가 옆에서 마우스를 뒤적거리며 보는 걸 옆에서 보고 있던 희주를 바라보며,

"그래?  나도 제주도 가고 싶긴 한데. 아니면 우리끼리 가. 우리 설계반끼리."

현수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되지 않는 건 없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할 수 있는 거라, 항상 즐거워 보이는 현수가 혜진은 언제나 그리 밝고 귀여울 수가 없다.








공지



드디어 공지가 났다. 다들 긴가민가 했던 공지가 전체 홀에 붙었다. 건축과가 위치한 공학과 4,5층은 설계실과 함께 5층에는 전체 큰 홀이 있어서, 다 같이 모여서 전체 발표를 하거나 이벤트를 진행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다른 과 학생들은 건축과학생들이 있는 설계실을 매번 신기해했다. 자신들은 특정한 공간이 없는 반면 건축과는 자신들만의 설계실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24시간 지낼 수 있다는 것도, 학교 교실 내에서 밥을 주문해서 먹는 것도, 자기들 작업을 하며 만들기를 하는 모습도. 스윽지나가면서 가끔 보이는 건축학과는 뭔가 재미가 더욱 있는 대학생활 같았다.

 하지만 실상 저녁까지 집에 가진 않지만, 3-4시간씩 다들 모여 컴퓨터에서 오락하기 일쑤였고, 매번 도면을 치는 게 아니라 도면은 켜두었을 뿐 미드를 보며 몇 시간을 내리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종일 3d프로그램을 돌리며 작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하루종일 게임을 틀어두고 서로 팀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 같아도 시간이 되면 자기들의 분량은 어떻게든 확실하게 만들어오는 걸 보면, 다들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며, 머릿속으로 뭔가를 정리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컴퓨터에 앉아서 자신들만의 일을 하며, 누군가 설계실을 지나며 하는 말에 일제히 중간 테이블에 시선을 돌렸다.

문이 열린 틈 사이로 누군가 " 건축과 애들 졸업여행 가나 봐."라는 말이 들려온 것이다.

언제 붙었는지는 모른다. 물론 과에서 다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제 드디어 홀에 공지가 붙었나 보다.

 " 어? 공지 붙었나? 보고 올게."

언제나 이런 일에 앞장서는 우리 반의 소식통은 현수였다. 중간 테이블에 앉아 모형을 만들던 현수는 록타이트를 붙이던 걸 마무리하고 나서 일어나 문으로 나섰다.






[공지]


날짜 :20xx. 08. 20 -8월 23일 (2박 3일)

여행지 : 제주도

비용 : 티켓비용 + 숙박비 + 버스대절 등 포함 (XX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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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학생들의 소소한 졸업여행

제주에서 만나는 마지막 여행을 즐겨보고 싶다면.

신청은 과대표에게!







현수와 혜진, 희주는 공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넓은 홀에 셋이 서서 일정을 보며 서로 고민하는 중이다. 역시 처음으로 가겠다가 얘기한 건 현수였다.

"누나, 이런 거 이번에 처음 생긴 거래. 다들 알아서 가는데 몇 안되더라도, 아무튼 우리 과 애들이랑 올해 다 같이 만나서 가는 게 어디야. 아니면 못 간다니까. 가자 가자."

역시 가고 싶어 했던 현수는 망설임 없이 졸업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을 결정했다. 이내 혜진에게도 같이 가보자는 졸업여행. 생각해 보면 5년 동안 설계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낸 시간이 5년의 가장 큰 부분이라, 마지막 졸업여행은 또 다른 이색적인 즐거움이기도 하다.

"희경아! 이번에 졸업여행 어디 가는지 알지?"

현수는 웃으면서 희경이를 놀리듯 이야기한다. 희경이의 집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야! 너 장난하냐? 난 가야 돼 안 가야 돼?"

희경이도 웃으면서 현수를 보며 안경을 고쳐 쓴다. 대학은 전국에서 오는 아이들의 학업장소이다 보니. 어느 지역이든 고향인 이가 있기 마련이다

희경이는 제주에서 온 여학생이라, 사실 제주도로 가는 여행이 단체로 가야 하나 혼자 가야 하나 묻는 중이었다. 다들 처음 보는 졸업여행 공지에 조금씩은 들뜬 느낌이다. 하나둘 공지를 보러 들어오는 홀 안. 그때 휴대폰 전체공지방에 알람이 하나 뜬다. ' 5층 홀 공지 확인 필수! 제주 졸업여행 갈 사람?'


' 다들 가려나?'

혜진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마음속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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