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_JINZAKA_그림일기장
2024년 1월22일 월요일 / 날씨: 맑음
제 목: 시대는 좋아졌으나 변한 것이 없네…….
그들은 일제히 일어선다. 질서도 없고 충동의 재료도 없다.
다만 그저 앉았기 싫으니까 이번에는 일어서 보았을 뿐이다.
일어서서 두 팔을 높이 하늘을 향하여 쳐든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본다.
그러더니 그냥 그 자리에서들 겅중겅중 뛴다. 그러면서 그 비명을 겸한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났다. 여북하면 저렇게 놀까. 이들은 놀 줄조차 모른다.
어버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이들 귀여운 애기들에게 장난감을 사다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뻗치고 그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뛰는 그들의 유희가 내 눈앞에는 암만해도 유희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하늘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
산은 벌판은 왜 저렇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푸르냐는 조물주에게 대한 저주의 비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이들은 짖을 줄조차 모르는 개들과 놀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이 찾느라고 눈이 벌건 닭들과 놀 수도 없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무 바쁘다. 언니 오빠조차 바쁘다.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노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놀아야 하나, 그들에게는 장난감 하나가 없는 그들에게는 영영 엄두가 나서지를 않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듯 불행하다. *(이상 「권태」中)
*이상 「권태」 - (12월 19일 미명, 동경서) / <조선일보>, 1937.5.4.-11 / (한국문학을 전하다 23 : 오감도, 권태: 이상시, 산문전집, 애플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