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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Nov 19. 2021

[사회] 플랫폼은 어떻게 배달 노동자를 소외시키는가

배달플랫폼 노동자 소외의 원인과 해결 방안

사진 출처: 연합뉴스

  대학에 오고 기숙사에 살면서 나의 끼니는 거의 배달로 해결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바깥에 나가기가 꺼려졌으므로 배달은 내게 더욱 유용했다. ‘배달의 민족’ 앱을 켜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이왕이면 배달료가 조금 더 비싼 ‘번쩍 배달’을 이용해 빠르게는 15분 안에 음식을 받았다. 이런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기숙사 창문 너머로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했다. 빈 오토바이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뛰어와 구급차를 부르고 응급조치를 했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음이나 ‘배달 완료’ 문자로만 인식되던 배달 노동자가, 그날 이후로는 실체를 가진 인격체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내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이웃임을 알았다. 내가 지금까지 배달 노동자를 일상적 관계에서 배제해 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기사 출입을 금지한 사례에서도 이러한 배달 노동자의 소외를 확인할 수 있다. ‘도보배달, 화물 엘리베이터만 탑승, 지하주차장만 이용 가능, 신분증 보관 요구, 헬멧 탈의’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그중 특히 강동구의 사례에는 배달 노동자가 소비자뿐 아니라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는 문제가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이 사례에서 주민들은 택배 기사에게 보도 등 시설물 훼손과 안전사고를 근거로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서는 2.3m 이하의 저탑차량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데, 이 비용은 기사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더군다나 저탑차량은 “90도로 허리를 굽히거나 무릎으로 기어 다녀서 근골격계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다.” 그런데 택배사는 “택배 배송계약은 해당 아파트의 입주민과 택배기사 내지는 택배대리점과의 일이므로 택배 본사가 나설 수 없다”고 말하며 해당 문제에서 빠져 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의 “계약서엔 사장님, 일 시킬 땐 근로자, 일 시킬 땐 우리 직원, 사고 나면 사장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처럼 기업은 배달 노동자들을 이익에 맞게 활용하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배달 노동자의 소외는 ‘플랫폼 경제’의 특성에 기인한다. 현재의 배달플랫폼 구조는 ‘이용자-주문중개플랫폼-음식점-배달중개플랫폼-(지역기반 배달대행업)-배달노동자’로 구성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배달의 민족-배민라이더스’, ‘요기요-요기요 익스프레스’, ‘쿠팡-쿠팡이츠’처럼 주문과 배달 중개플랫폼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형태(통합형)와, 배달대행플랫폼(‘부릉’, ‘바로고’, ‘생각대로’)이 지역 배달대행업을 통해 전속 라이더를 고용하는 형태(가맹형)다(조규준, 「배달 플랫폼 노동의 특징과 문제」). 주문중개플랫폼과 배달중개플랫폼에는 AI 알고리즘이 사용된다. AI 알고리즘은 이용자로부터 주문을 받아 음식점에 전달하고, 배달료와 목표 시간을 계산해 배달 노동자에게 노동을 지시한다. 이렇듯 직접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던 과거의 배달 구조와 달리, 현재에는 플랫폼이 사람들을 매개한다.



  이러한 특성은 배달 노동자의 소외를 불러오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배달 노동자는 이용자로부터 소외된다. 신호를 지키지 않고 거리를 쌩쌩 달리는 오토바이는 이용자에게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며, 노동자에 대한 ‘혐오’까지도 생기게 만든다. 이에 이용자는 도보 배달이나 헬멧 탈의를 요구하며 그들을 경계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AI 알고리즘은 노동자가 배달 시간을 단축할수록, 이후에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거리를 이동해 음식을 배달하도록 명령한다. 또한 AI가 책정하는 배달료는 거리나 시간대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라지므로 예측하기 어렵다. 이에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지 못한다. 한 노동자의 배달 한 건당 배달료는 약 2900원으로, 9년간 200원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시간 압박 속에서 몰아치는 배달 요구를 무리하게 소화해 봤자, 최저임금 정도를 겨우 버는 노동자들이 태반이다. 이에 배달 노동자들은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플랫폼에 자유롭게 가입하여 일하는 프리랜서’라는 인식 때문에, 비난은 배달 노동자 개인을 향하게 된다.


  이런 비난이 더욱 거세지는 것은, 한 논문에 따르면, 배달 노동자와 이용자의 관계가 AI 알고리즘을 통한 얕고 일시적이며 익명적인 관계들이기 때문이다(박선희, 「플랫폼의 전유와 저항 : 배달플랫폼 노동과 AI 노동의 사회적 구성」). 나 또한 소비자로서, 배달 노동자와 음식을 주고받는 찰나의 순간을 빼고는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 ‘배달의 민족’의 메시지 옵션처럼, ‘문 앞에 두고 벨 눌러 주세요.’라며 소통을 아예 단절하기도 한다. 리뷰를 통해 불친절한 배달원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적도 있다. 플랫폼을 통한 거래 상황에서 배달 노동자를 ‘내 주변의 이웃’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따라서 배달 노동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권리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으므로, 제3자의 시선에서 그들을 비판할 뿐이다.


  다음으로, 배달 노동자는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소외된다. 기업의 지시를 플랫폼의 AI 알고리즘이 대신 전달하다 보면, 배달 노동자는 스스로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거나 지시를 받아 일하는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스스로 배달할 곳을 ‘선택’하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은 노동자에게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관리·감독한다. 직접적으로 지시하지만 않을 뿐, 플랫폼 기업은 AI 알고리즘을 조직하며, 약관을 제정하고 계약을 성사·파기해 이익을 추구한다. 노동자에게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한 예로, ‘쿠팡이츠’는 호출 취소와 거절이 잦은 배달 노동자에게 하루 동안 배달을 제한하고, 이러한 조치를 3회 이상 받을 경우 계약해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통보했다. 배달 노동자들은 “약관에 ‘배달 거절’은 명시돼 있지 않고, 장거리 배달을 거절하는 것은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플랫폼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앱 접속을 막을 경우, 법적 대응이 어렵다. 한 배달 노동자에 따르면, 산업재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기업에 근로기록을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직접 앱에서 일일이 캡처하는 수밖에 없다. ‘쿠팡’은 ‘쿠팡플렉스’·‘쿠팡이츠’의 배달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독립계약자라고 믿는다”며 “이들이 서비스 제공 여부와 시간·장소를 선택하고, 다른 일을 하거나 경쟁업체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에 따르면, “프리랜서인지 노동자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감독했다고 볼 정황이 있는지”다. 플랫폼 기업은 출-퇴근 근태 관리부터 ‘강제배차’에 이르기까지 배달 노동의 전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한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과 배달 노동자의 관계를 엄연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은 플랫폼 뒤에 숨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배달 노동자는 소비자와 기업으로부터의 소외를 겪는다. 하지만 소비자나 기업이 이러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배달 노동자를 위해 이익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글을 쓰며 배달 노동자의 고통을 낱낱이 조사했으면서도, 소비자로서 여전히 배달이 빠르고 수수료가 낮은 곳을 찾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플랫폼 기업은 경제적 관점에서, 자유롭게 가입하여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모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소외 문제를 소비자나 기업의 양심적 선택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소비자는 빠른 배달과 낮은 수수료라는 이익을 얻으면서도, 신호를 위반하는 배달 노동자를 기피하고 혐오한다. 기업은 배달 노동자를 통해 이익을 얻으면서도, 산업 재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배달 노동자의 소외는 가장 근본적으로는 이해관계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소외 문제의 해결 방안은, 배달 노동자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새로운 형태인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면서 관련 법률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배달 노동자의 소외는 그러한 기술과 법률 간 간극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나는 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소비자가 배달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법을 개정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워진다. 적극적으로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배달 노동자가 소외되고 있다는 데 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한데, 당장 내가 찾은 기사의 댓글들만 봐도 절반 이상이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물론 (배달 업무가) 힘든 일이겠지만, 모든 일은 힘이 들며, 회사원도 만만치 않다는 댓글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배달 오토바이가 교통법규를 어기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또, ‘배달거지’, ‘딸배’ 등의 혐오 표현을 통해서도 사회적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배달원들이 음식을 훔쳐 먹거나, 불친절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사례들을 전체의 사례로 가져와서 조롱하는 바탕에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 오토바이를 타면 ‘양아치’라는 인식이 이어져, 배달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마련하지 못한 ‘사회적 낙오자’라는 인식까지도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이 변화해 소비자들이 배달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동의할 때, 소비자 인식은 기업 이익과 밀접하게 관련되므로, 기업 또한 변화할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다면 배달 노동자의 권리 증진 문제는 우리들의 삶과 동떨어진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권리와 관련한 문제다. 건설일용노동자, 연극배우, 마트 현금계산원 등, 나열할 수도 없이 많은 1천만 명 이상의 비정규노동자들의 이야기다. 배달 수수료나 산업재해, 계약 파기와 관련한 배달 노동자의 권리가 개선될 때, 비정규노동자의 임금 차별과 고용 불안까지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배달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게 되면, 비정규노동자 안에서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사이의 분리가 생긴다. 이러한 권리의 배제가 생겨나면, 결국 ‘나’ 자신의 노동권에까지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이는 차도에서 교통법규 위반 오토바이를 마주할 위험 없이 안전하게 운전할 권리와도 관련된다. 교통 단속을 하는 등 배달 노동자 개개인을 처벌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토교통부(장관 김현미)는 작년 5월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으로 이륜차 교통안전 협의회를 신설하여, 이륜차의 도로교통법 위반 사항을 제보받고 안전교육 강화를 위한 협약(MOU)을 체결했다. 그러나 배달 노동자들의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10월말 기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019년 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이륜차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9% 증가했다. 즉, 배달 노동자에게 교통교육을 하고 신호를 잘 지키도록 규제하는 것보다, 그들이 ‘빨리 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는 결국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배달 노동자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과 관련된다.



  결국 ‘배달 노동자의 권리 증진’이 플랫폼 노동과 관련한 특수한 사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자의 권리 증진이나 교통안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과도 연결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로부터 기업이 변화하고, 법이 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양심이 아닌 기업 방침과 법에 근거해 배달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착한 소비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일상과 닿아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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