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
전 세계 모든 산업 분야에서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및 지속가능성이란 주제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OECD의 ITF (International Transport Forum -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이며 탄력적인 교통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Think Tank) 김영태 사무총장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는 지속가능한 교통(Mobility)을 이야기할 때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후 변화(Climate Change), 성평등(Gender Equality), 디지털(Digital) 등의 다양한 범주의 가치가 포함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교통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성평등을 다루고자 하는 접근이 인상 깊었는데, 교통 인프라 디자인이 대체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이루어진 사실과 관련 정책이 실제로 여성들의 사회적 편의를 보장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점은 여성인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관련 포럼이 주로 여성들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여성 참석자가 더 많은 현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남성들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제가 아닐지,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교통 인프라 설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P.S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김영태 사무총장님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ITF가 어떤 비전과 연구를 진행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새삼 이런 세계적인 국제기구의 수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큰 자부심과 국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2024년 마지막 행사!
앞서 '교통과 성평등'의 중요성을 논하는 관점이 생소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필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ESG 및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탄소 중립, 재생 가능 에너지, 에너지 믹스 등 '친환경'이라는 키워드와 연관 지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관련 가치는 환경 보호라는 1차원적인 범위를 벗어나 사회적 책임과 거버넌스 측면까지 고려할 때 더 장기적인 비전과 변화를 제시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러한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관련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간과해 온 영역인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한다.
"예술로 밥이나 먹고살 수 있니?"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을 질문이다. 실제로 이런 질문이 기우가 아닌 것이, (2019년 자료를 기반으로 보았을 때) 뮤지컬 배우의 월평균 수입은 58만 원, 연극배우의 연소득은 100만 원, 화가 4명 중 1명은 무소득자라고 한다.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생계유지라는 현실을 마주하고 좌절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인 셈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2024년의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갖추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영화 및 미디어 콘텐츠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배급과 유통 방식의 변화로 많은 국내외 배우들이 (비교적 출현 규제가 작은) OTT 플랫폼 콘텐츠에 출연하고, 유튜브에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기준, 국내 OTT 이용자는 2020년 66.3%에서 2021년 69.5%, 2022년 72%, 2023년 77%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출처: 메트로신문), 이 시장의 성장과 확장 덕분에 출현 배우들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음은 수많은 수치와 자료가 증명하고 있다 - 단적으로, 최근 헤럴드경제 기사(2024.04.07)에 따르면, 넷플릭스, 디즈니+ 작품의 주연 배우 출연료가 방송사에 비해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모든 문화예술 분야에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물론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산업군 자체를 놓고 보았을 때, 투자 대비 즉각적인 수익(ROI) 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경제적 효율성과 단기적인 성과로 작품을 평가하기 어려운 현실, 수익의 양극화 현상, 그리고 실제 경제적 창출까지 도출할 수 있는 콘텐츠가 현 생태계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은 무엇으로 실현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쉽사리 명쾌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스스로도 이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과정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하나 명확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고민에 선제되어야 하는 것은 그 산업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가고, 그 문화가 세대 간 교류 및 전수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무엇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본다. 그럼 그 적절한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번 포스팅에서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문화도심'과 연관 지어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문화도심'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참여, 경험 및 교류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들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 - 작게는 문화적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커뮤니티, 크게는 도시로 간주해 볼 수 있다. 이 크고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일상과 소통이 유기적으로 발생하고, 그 상호작용이 하나의 문화로 성장해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 및 경제적인 효과까지 도출해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문화도심의 모습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명력 있는 문화도심'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문화도심'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변수와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 간의 소통과 상호작용이 자유롭게 발생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예술은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교류이며, 일방적인 소통으로는 그 역할과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문화예술의 미래는 '공간, 사람 그리고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감히 주장해 보려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삶을 깊이 파고드는 치밀한 관찰과 취향의 고도화를 고려한 라이프스타일 기획. 이것이 장기적인 호흡으로 이루어질 때, 사람들이 모이고,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서 진 짜 문화 생명력과 자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사람들의 삶을 깊이 파고드는 치밀한 관찰과 취향의 고도화를 고려한 라이프스타일 기획'이 문화도심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러한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자사 수익 사업에 반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많지만, 오늘은 도쿄에서 문화도심을 주도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기업, '모리 빌딩'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일본의 초대형 부동산 개발업체인 모리 빌딩(Mori Building Compnay)은 부동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도쿄 도심의 유명 초고층 빌딩에서 이 회사의 로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롯폰기 힐즈, 오모테산도 힐즈 등 일본의 대표적인 관광지와 문화 명소들 모두 모리 빌딩이 개발하고 운영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특히 'Vertical Garden City (관련 링크)'를 구현하며 세계적인 도시 모델로서 비전을 제시한 롯폰기 힐즈는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도심'의 개념을 널리 알린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문화라니! 처음엔 일본의 부동산 개발사가 문화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이 진행한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연관성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다.
모리빌딩은 그들이 세우는 빌딩을 중심으로 녹지를 조성하고 상업시설과 문화시설을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데 소위 도가 튼 기업이다. 이유는, 모리빌딩 자체가 직주락 (職住樂: 근거리에서 일(Work)하고, 거주(Live)하고, 놀(Play) 수 있는 도시를 의미)을 융합한 라이프스타일 시티로의 진화를 진즉부터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례들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롯폰기 힐즈 모리타워 최고층에 위치한 Mori Art Museum을 대표적으로 보자. '문화 예술은 경제적 이익보다 우위에 있다'는 브랜딩 철학을 반영하듯, 퇴근 후 문화생활을 즐기는 도쿄 직장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도심 속 문화생활을 동시에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까지 아우르는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Mori Art Museum에 대해서 이야기를 덧붙여보면, 이곳은 롯폰기 힐즈 타워 최고층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이외에도 주기적으로 전시주제를 바꿔 도쿄 전망과 미술관람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기획한 특성으로 유명하다.『도교를 바꾼 빌딩들』이란 책에는 이 미술관이 설립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데, 짧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문화도심 콘셉트의 기획'을 이루기 위해 현대미술관의 필요성을 느낀 모리 미노루 (모리빌딩 창업자의 차남)는 당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토마스 크렌스 관장을 만나 많은 논의와 조언을 얻었다고 한다. 실제로 롯폰기 힐즈에 구겐하임 분관을 낼 것을 제안받기도 하였으나 모리빌딩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 제안이라는 판단을 하였다고 한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MoMA의 도움으로 세계적 미술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리고 각 미술관으로부터 미술품을 빌려와 기획전이 가능한 독자적인 시스템을 구상했고, 그게 현재 모리 미술관의 기반이 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문화시설에 계속적인 변화를 선보이는 시스템이 (단순이 한번 방문하는 건물이 아니라) '계속 가게 되는, 지속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는 건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모리빌딩의 능력은 하드웨어(도쿄 부동산)와 소프트웨어(문화)를 엮어서 바라볼 수 있었던 통찰력이라는 점이다.
모리 타이키치로 (모리빌딩 1대 회장)
"좋은 빌딩을 세우고, 도시의 모습이나 토지 결이 좋아지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집세는 받지만, 손님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확고한 나의 빌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관리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부동이라는 것은 공공적인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음식이나 기모와 같이 옷장에 넣어두고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P.S 모리빌딩의 외면을 넘어 사적인 영역을 엿본 까닭일까, 최근 DDP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대문 시장 부지가 눈에 들어왔다. 도쿄는 민간기업의 오랜 노력 끝에 오모테산도 힐즈를 만들었다는데, 상가별로 주인이 다른 동대문 시장의 부지를 위해 상가 소유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귀담아 줄 부동산 개발업체가 과연 한국에도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가 모리빌딩의 성과를 칭송하고 그 업적을 존경하면서도 쉽사리 그 과정을 모방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앞서 언급했던 모리 다이키치로의 굳센 신념과 정신이 쉽게 표방하기 어려운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모리빌딩은 부동산 개발이라는 사업을 통해 다양한 민간주도형 도시재생사업을 운영하고, 공공재(Public Goods)의 역할을 수행하는 하드웨어 속에 자생력 있는 문화를 꽃피운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번에는 모리빌딩과는 다른 측면으로,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원하는 민간기업 UBS 사례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개인적으로 예술이 (값을 치른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인) 사적재로만 여겨지지 않을 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런 사회 분위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정부의 꾸준한 행정적 지원 및 경제적 후원이 있다. 하지만 한정적인 공적 예산을 벗어난다면 어떨까. 여기 UBS는 민간 기업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UBS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금융 서비스 기업으로, 1862년 설립 이후 주로 투자 은행, 자산 관리, 그리고 개인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이 유럽 2위의 스위스 은행이라는 타이틀로 알려진 것보다, 2013년부터 아시아권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의 최대 후원자가 된 점(관련 기사), 그리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94년부터 아트 바젤의 공식 후원사로서 활동하며 '아트뱅크 UBS'라는 명성을 얻은 것으로 더 유명하다(관련 기사).
물론, (민간 기업 중에서도) 경제적 우선을 최우선시하는 금융 서비스 기업이 예술품 수집에 참여하고 아트페어를 후원하는데 적극적인 이유는 비단 공적인 가치 때문은 아니다. UBS는 (다양한 금융 서비스 분야 중에서도)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서비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아트바젤 후원은 자본력을 가지고 있는 고액 자산가 고객들에 대한 일종의 프리미엄 서비스이자 차별화된 재산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고급 브랜드 이미지 덕분인지, UBS는 2015년부터 매리 로젤(Mary Rozell)이 컬렉션을 책임지면서 국제적 미술관으로의 영향력을 더욱 선보이고 있다 - USB의 경영권이 Credit Swiss로 넘어간 상황에서도, 컬렉션의 규모는 줄어드는 추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실로 고무적인 행보라고 본다 - 현재 뉴욕미드타운 중심에 있는 UBS Art Gallery(공공 미술관)에는 사라 모리스의 대형 작품이 걸려있어서 이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UBS는 지역사회의 예술 작품을 구입 및 관리하는데 적극적인 것은 물론 공연, 문학, 요리 예술을 포함하는 문화예술 생태계로의 지원으로 그 포용력을 확장하고 있다 - 관련 조사를 하며 흥미로웠던 점으로, 아트 바젤과 UBS가 최근 고액 순자산가(HNW) 미술품 수집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있다. 관련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작성된 보고서에 따르면, 고액 순자산가(HNW - High Net Worth) 수집가의 66%가 전체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10% 이상을 예술품에 투자하고 있다는데, UBS는 아주 명민한 전략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느꼈다.
UBS의 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며 예술의 역사적, 경제적 가치를 존속하는데 동참하며 경제적 이득도 챙기는 똑똑한 행보에 눈길이 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민간 기업이 문화예술품을 공공재로 다루며 예술 생태계를 지원하는 것을 기업의 핵심 가치로 여기며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것, 나아가 명석하게 그 행보를 브랜드 이미지로 구축한 고급화 전략은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예술로 밥이나 먹고살 수 있니?" 이제는 이 질문에 대해 자생력 있는 문화예술 생태계의 사례를 다각도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많은 사례를 접하진 못했지만) 이번 포스팅을 준비하면서 얻은 인사이트는, 문화예술계의 지속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이 생태계를 벗어나 다른 산업과의 접점/교집합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생존 전략이 성공 전략이라는 말처럼, 문화예술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할 때도 이상적인 정책과 기획보다는 자생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지속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향성인지 고려해보아야 하고, 다양한 산업과의 교차점을 통해 조감도를 가져보아야 함을 느낀다.
연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고, 사회 전반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뒤숭숭한 마음이 불안의 불씨를 키우는 시기인 것 같다. 낭만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삭막한 시기를 견디게 해주는 건 ‘겨울은 결국 지나간다’는 믿음과 일상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다정한 온기일 때가 많다고 느낀다. 모든 사람이 같은 시각과 관점을 공유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도, 문화예술이 더 접근성 있고 사적 재화를 넘어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이 다정한 온기를 위함이라고 믿어본다.
모든 일에 좋은 대의와 명분만을 내세울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삶이 (1년, 5년이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지속가능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감성적인 소견도 더해본다. '불확실한 내일 속에서 지속가능한 방향성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믿으며, 2024년의 마지막 포스팅을 마친다.
P.S.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남겨두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백남준의『I Never Read Wittgenstein』작품을 통해 알게 된 철학자인데, 그가 주장한 '말의 한계가 한 인간의 한계'라는 말에 괜스레 마음에 동하는 요즘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면, (문법과 단어 싸움이 아니라) 한 사회를 이해해 보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가져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를 어느 정도라도 엿볼 수뿐이 없기 때문일 텐데.. 2025년에는 내 세계의 확장과 함께 더 차분한 어른이 되어보기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를 부단히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Au revoir 2024 - 다사다난했던 삼재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