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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는 매화를 보며 조급해하지 않는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땐 모든 게 눈에 거슬렸다. 계절까지도 짜증 나게 했다. 봄의 활기는 나의 기를 죽였다. 그러다 꽃이 피어나면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를 위로한 건 봄꽃의 아름다움도 향기도 아니었다. 오로지 팩트(fact) 하나. ‘봄꽃은 봄 언젠가 꼭 핀다’는 것이었다.

봄꽃은 종류마다 지역마다 개화 시기가 다르다. 그 사실이 좋았다. 저마다 사정이 있어 꽃망울을 터뜨리는 시기가 같을 수 없다는 것. 봄이 존재하는 한, 꽃은 피어난다는 사실에서 위로받았다. 겨울 끝자락에 모습을 드러내는 매화를 보며 벚나무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매화가 지기 시작하면 벚나무는 꽃을 피우니까.


봄꽃의 의연함은 자존감과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다. 봄꽃은 꽃잎들이 떨어져 스러진 후 1년 동안 다음 봄을 준비한다. 여름의 열기와 폭풍우를 견뎌야 하고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야 한다. 인고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관심이다. 꽃이 만개했을 때 사람들에게 들었던 찬사, 그들의 손길에서 느낀 따뜻함은 자양분이다. 자양분이 고갈될 때쯤이면 외로움이 고개를 든다.

봄에만 꽃을 피우는 운명인 이들에게는 사람들의 관심과 무관심이 양립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람들은 꽃이 져버린 꽃나무를 봐도 감흥이 없으니까. 돌아올 봄에 꽃이 만개할 것임을 알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인간의 감각이란 작동하지 않는다. 봄꽃 나무는 서운하지 않다. 자신의 운명을 알고 받아들이며 운명의 주인으로서 겸허히 성실히 살아내고 있기에… 외로움의 시간을 통해 오롯이 자신과 마주하며 자아를 확장해 나간다. 성장의 시간이다.


이렇듯 계절에 따른 생리를 겪고 버티는 것의 의미를 배운 봄꽃은 피어난다. 자신의 개화 시기를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봄꽃의 의연함과 지혜로움을 찬양한다. 조급해하지 않으며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닮고 싶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대로 살아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였다. 도전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괴로운 건 난관으로 인한 게 아니었다. 문제가 생길 때 나의 시선은 타인에게 향했다. 내가 걷길 간절히 원하는 그 길을 이미 가고 있는 누군가였다. 그의 성공과 성장을 지켜볼 때마다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으며 보상 없는 고통은 없다는 진리를 믿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흔들릴 때가 많았다.


2023년 2월, 17년의 기자 생활을 마치며 퇴사한 후 기다림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꿈을 향한 여정이 기다림의 연속임을 알지만, 희망 고문도 당해보고 절망의 벽에 갇혀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한 적도 있다. 꿈은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붙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갔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 겪으며 나라는 인간은 꿈 없이 살 수 없으며 도전함으로써 어떤 고난도 이겨내며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을 향한 여정에서 자빠지고 고꾸라지고 나가떨어져도 끝내 다시 일어나 달려 나가는 게 나라는 사실.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배우고 깨닫는 것들의 가치를 알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커나가고 깊어진다는 것에 감사했다. 실패에 감사함을 느끼기까지 고통은 지독했다. 이런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 더 큰 실패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까지 온전한 일상을 누릴 수가 없었다. 절망은 내 목을 졸랐고 부정한 기운들은 꿈을 포기하라고 귓가에서 속삭이었다. 지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간,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제 답한다. 난 앞으로 어떤 실패 앞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던 좌절을 딛고 일어나니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강하고 단단한 내가 돼 버렸다. 꿈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깊은지, 나라는 인간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더 이상 초조해하지 않게 됐다.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자신을 믿고 흔들림 없이 나아간다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실패는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실패는 또 경험이다. 그래서 난 실패하다라는 말 대신, 실패를 겪다, 실패를 경험하다 이렇게 표현해 왔다. 난 실패가 두렵지 않다. 물론, 실패할 요인들을 최소화하고 피할 것이지만 실패하더라도 성공으로 가는 살과 피로 삼을 것이다.


봄꽃이 꽃을 틔울 수밖에 없다는 운명임을 알 듯, 나는 내 운명을 믿는다. 꿈을 향한 여정, 이제부터는 모든 걸 즐기자.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63vve4ceP_p1AGOp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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