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침실 암막 커튼을 잘 여미지 않았던 걸까. 빛이 쏟아진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해. 왜 환해지지? 몇 시지? 얼마나 잔 거야. 몸이 꼼짝할 수가 없네.’ 눈을 뜨려고 애쓰지만 잘되지 않았다. 불빛이다. 많이 보던 하얗고 인위적인 불빛, 형광등이다. 이곳은 아주 밝은 곳이다.
‘여기가 어디지? 집인가? 집은 이 정도로 밝지 않아.’ 시끄러운 소리에 한 번 더 놀랐다. 기계음들이 크게 들린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헛갈렸다.
‘으악! 갑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면 어떡해? 이 사람 뭐야? 깜짝 놀랐네. 누구지? 저거 고글 맞지? 저 옷은 방호복인데. 뭐지? 코로나 때 의료진이 입었던 거잖아.’ 그녀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여기가 어딘가요? 여보세요. 제 말이 안 들리나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외쳤다.
“저 좀 도와주세요. 아무도 없나요? 여기가 어딘가요?”
다시 외쳤다.
“여보세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나요? 여보세요.”
그녀는 일어나려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부터 움직여보려고 했다. 되지 않는다. 고개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이 환자는 Z30에 감염돼 의식을 잃은 후 계속 이 상태입니다. 다른 감염자들 양상을 볼 때 오늘쯤 호흡곤란이 나타날 것 같습니다.”
“잘 지켜보자고.”
그녀는 정신이 들었다. 신종 호흡기 감염병인 Z30에 걸려 자가격리 돼 있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됐지? 어머니도 감염됐는데. 기억이 안 난다. 내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나 봐. 알겠어. 이곳은 음압병실이고 저 사람들은 의료진이야.’ 그녀는 크게 외쳤다.
“여보세요. 제 목소리가 안 들려요? 여보세요. 도와주세요.”
그녀는 일어나려 하는데,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 의사들이 와서 그녀와 여러 개의 줄로 연결된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녀는 소리쳤다.
“선생님! 제 목소리 안 들려요? 선생님!”
그녀는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자신이 하는 말은 본인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라는 것.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는 건 자신이 현재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거 같았다. 뭐란 말인가.
의사가 또 다른 의사에게 말했다.
“이 환자분 호흡이 불안정해집니다.”
“계속 확인해.”
“네. 이 환자분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환자분 의식이 없는 게 차라리 나은 거 같아요.”
“그렇지. 어머니 돌아가신 거 모르고 본인도 떠나는 거니까.”
그녀는 두 가지 사실과 마주했다. 자신이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게 분명한데, 그러면 의식이 돌아온 거 아닌가.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보인다는 건가. 그래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던 건가. 그녀는 알았다. 자신이 자기 몸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사람 중에 의식이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여겼던 자신의 믿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자신에게 감염된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임종 없이 떠나셨다. 그녀는 죄책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음압병실이 시끄럽다. 방호복과 고글로 무장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의료진 중 한 사람이 현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음압병실을 총괄하는 김 실장이었다.
“2030년 8월 1일 오전 8시 현재, 우리 병원 음압병실에 Z30 감염자 30명이 입원 중입니다. 어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화장 절차를 밟았고, 빈 병상 5개에 다시 감염자가 채워져 30개 병상 모두 가동 중입니다. 30명 중 4명은 호흡이 불안정한 상태이며 모두 의식이 없습니다. 이 가운데 2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해 뒀고, 나머지 2명은 의향서를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병원을 운영하는 재단의 이사장이 말했다.
“김 실장, 의향서를 등록하지 않은 2명 모두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하네.”
“네. 알겠습니다. 호흡이 불안정한 4명 중 의향서를 등록해 둔 2명은 이들 뜻대로 연명의료를 실시하지 않은 채 사망에 이르도록 하고, 의향서를 등록하지 않은 2명은 인공호흡기를 달겠습니다. Z30 감염자가 인공호흡기를 달면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주장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인공호흡기를 달 2명이 불쌍하다는 건가? 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자업자득이라고. 어떻게 본인의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
“맞습니다. 어떻게 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본인 삶의 마지막에 관해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해도 이들은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삶의 마지막이 어떨 것인지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엄을 이야기하는 것도 우습죠. 이들은 인공호흡기를 다는 동안 고통스러워도 할 수 없습니다.”
이사장은 코로나19 때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이 병원에서 감염자가 무더기로 나와 바이러스 온상지로 지목받아 신종 감염병 환자 3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압병실을 만들었다. 그는 이번 Z30 사태에 정부에 잘 보여 이 병원을 상급종합병원으로 인증받게 할 계획이다.
“김 실장, 인공호흡기를 달게 될 2명의 SNS를 꼭 확인해야 해. 혹시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글이나 사진, 기사 링크 이런 게 있으면 안 된다는 말이지. 문제가 될 수 있어. 아니다. 문제가 생길 수가 없겠네. 이 2명은 가족이 없지. 시신은 곧바로 화장 처리되니까 인공호흡기를 달았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거지.”
“SNS는 물론이고 이 사람들 주소를 아니까 직원을 시켜서 집에 들어가서 일기장 이런 것도 살피겠습니다. 혹시라도 연명의료 거부한다는 뉘앙스의 글이 있으면 안 되니까요.”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고 가족도 없고 화장할 건데 뭐 하러 그래. 그건 그냥 두시게.”
이사장은 감염자 2명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서 며칠이라도 연명시키려 한다. Z30에 걸리면 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를 달더라도 연명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열흘이다. 그런데도 인공호흡기를 매달게 하는 건 정부의 Z30 현황 일일 브리핑에 늘어나는 사망자 수로 잡히지 않게끔 꼼수를 피우는 것이다. 며칠 뒤 사망자 수로 들어가더라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해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고 있다는 걸 정부 당국자들에게 ‘어필’하려는 것이다.
이사장의 큰아들인 이 병원의 홍보팀장이 말했다.
“이사장님, 기자가 음압병실을 취재하고 싶어 합니다.”
“미쳤어? 하지 마.”
“우리 병원 음압병실이 모범적이라며 좋은 의도로 기사화하려 하는데.”
“그걸 그대로 믿어? 언론에 무조건 대응하지 마.”
‘멍청한 놈. 저런 게 어떻게 내 아들이라고.’ 이사장은 화가 났지만 참았다. 큰아들은 이 병원의 비리를 거의 알고 있기에 언제든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사장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객혈이다. 그가 쓰러졌다. 홍보팀장이 나섰다.
“이사장님이 피를 쏟았는데 Z30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습니다. 변종은 피부터 쏟는다고 하니까 변종에 감염된 게 확실합니다. 곧 호흡곤란이 올 겁니다. 의료진은 이사장님 기관절개술부터 시행하신 후 인공호흡기를 달도록 하세요.”
“팀장님, 이사장님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셨어요. 연명의료를 거부하셨는데요.”
“실장님, 제가 이사장님의 큰아들이라는 걸 잊으셨나요? 보호자가 이렇게 연명의료 중단에 반대하는데도 이러실 건가요? 우리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망자 발생을 단 며칠, 몇 시간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이게 아버지의 뜻이기도 했고요. 아셨습니까.”
이들이 퇴장했다. 그녀는 충격과 공포로 떨고 있었다. 신종 감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갈 때 어떤 이들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 꼼수를 피우고 의료윤리를 저버리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그녀가 알던 세상, 그러니까 Z30 사태가 일어나기 전의 세상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가. 의향서를 왜 작성하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저들 눈에 그녀는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저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사리사욕 채우는 데 이용당하는 게 화가 났다.
의사 두 명이 그녀 곁으로 왔다.
“Z30 감염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면 무척 고통스러울 거라고 하던데요.”
“할 수 없지.”
“이 환자분, 평소에 의향서 좀 써놓으시지. 이분 어머니도 인공호흡기 달았다가 고생하고 돌아가셨는데. 이 환자분도 혼자서 쓸쓸히 돌아가시겠네요. 기관 절개하러 옆방으로 옮기겠습니다.”
간호팀이 그녀를 이동용 베드에 눕히더니 끌고 나갔다. 그녀는 더 이상 소리칠 기운도 없었다. 어차피 저들한테 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왜 이런 비극 속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신종 감염병에 걸려 격리된 상태에 있고 곧 죽는다는 것. 그리고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데 억지로 인공호흡기를 매달아야 한다는 것, 잘못이라면 본인이 평소에 의향서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병실에 있는 의사들은 대화를 이어갔다.
“홍보팀장 진짜 대단하지 않아? 이사장 죽기만을 기다렸어.”
“이사장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써놓은 상태라니까 본인이 큰아들이라며 뒤집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소리 듣고 소름 돋았어요. 이사장을 미워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인지 몰랐어요. 고생하면서 세상을 떠나라 이거잖아요.”
“이사장도 허망하게 갔어. 이 정부에 충성하겠다고 사망자 숫자 가지고 장난질 치다가. 그나저나 자네랑 자네 가족 모두 의향서 써놨지?”
“그럼요. 애들은 SNS에도 연명의료에 반대한다는 글 올려 놨습니다.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가야죠. 혹시라도 우리 같은 병원에 실려 왔는데 누가 장난질 치면 안 되죠.”
“그래. 삶의 마지막을 대비해야 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세상이라고. 코로나 때, 이것보다 더 강력한 바이러스가 올 거라고 생각했어? 삶도 죽음도 각자도생이야. 각자도생.”
이 이야기는 허구다. 다만, 이야기 속 세 가지 ‘사실’을 주목하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①평소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등록하면서 죽음을 어느 정도 설계할 수 있다는 것. ②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한 신종 감염병이 나타나 언제든 일상을 파괴할 수 있고 ③신종 감염병이 창궐할 때 나의 임종이, 내 가족의 임종이 지켜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평소 죽음에 관한 인식이 삶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개인이 죽음에 관해 준비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소재로 삼았다.
임종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서류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두고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연명의료결정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한계가 크다는 건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미비한 제도라도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한다. 개인이 깨어있어야 문제가 제기되고 사회적 논의가 무르익으며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마지막에 이르는 과정은 어느 정도 설계할 수 있다. 이 종이 한 장만 이해해도 길이 보일 것이다.. (후략) ..
★삶과 죽음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은, 이달 중순 출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