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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내편인 친구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완전 내 편인 친구 



수진이에게 그 사이 있었던 일을 쭉 말했다. 다 듣고 난 수진이가 살풀이를 권하려고 작정한 점쟁이처럼 다그쳐 물었다. “그 남자 이름이 뭐라고?” 수진이의 태도(나는 촉이 좋은 여자야) 때문인지 “최도영”이라고 말하는 내 모양새가 빳빳했다. “야, 야! 그 남자 이름에 ‘나는 까칠합니다’하고 딱 쓰여 있네. 근데 너, 불친절하면 쥐약 먹은 애처럼 멍청해지잖아. 그 남자랑 둘이 처음 만나는 게 언제라고? 내가 따라가 줄까? 시작부터 기죽으면 안 돼! 처음이 중요해. 처음이!” 수진이의 조언을 되뇌다가 살짝 자신감을 잃은 나는 ‘정말 같이 갈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미팅이다. 이미 시간과 장소에 비공식적인 느낌이 다분한데, 거기에 친구까지 동행하면 내가 먼저 허투루 보이는 셈이다.           



     

수진이와 내가 다시 만난 건 창업한 그해 3월이었다. 중학교 동창이긴 했지만 여자아이들은 보통 무리를 지어 노는데, 서로 다른 무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연락처를 모르는 사이였다. 그날도 나는 눈 뜨자마자 관리자 페이지에 업데이트된 새로운 회원 리스트를 확인하고, 그 회원들이 남긴 정보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왜 지태주 다이어트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도 있었고, 현재 키와 몸무게, 과거 다이어트 이력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도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고 기대하며 샤워를 하는 것이 일종의 모닝 루틴이었다. 82년 1월생 박수진 ― 성도 이름도 워낙 흔해서 그간 여러 명의 박수진이 있었지만, 82년생이니까 혹시 내가 아는 그 박수진일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 맞다. 그 박수진은 날씬했었지,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아는 박수진은 중학교 때 전학을 갔다. 마지막으로 학교 운동장 모퉁이를 초라하게 돌아 나가던 뒷모습이 떠올랐다. 한 달 전쯤에 있었던 일 때문에 교내에서 수진이를 모르는 친구들은 몇 없었다. 우리 중학교에서 전교 1-2등을 다투면서 얼굴까지 예쁘장한 혜란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혜란이가 인근 고등학교 오빠들과 노래방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되어 경찰서에 잡혀가는 사건이 생겼다. 학생들이 이런 빅뉴스를 놓칠 리가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혜란이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본보기로 정학을 매겨야 한다는 쪽과 우리 학교 얼굴인데 덮어주자 라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런데 다음 날, 혜란이 엄마가 긴 복도를 마이크 삼아 쩌렁쩌렁 고함소리를 냈다. “박수진이 어딨어? 박수진! 이년 나와!” 수진이는 우리 반이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나?”하는 표정으로 잔뜩 쪼그라들었다. 혜란이 엄마는 굶주린 맹수 같은 몸짓으로 우리 반에 도착했고, 수진이를 보자마자 먹이를 낚아채듯, 수진이의 머리채를 끌어 잡고 다시 고함쳤다. “니 년 때문에 우리 혜란이 버려놨어. 이년아. 부모님 뭐 하시냐? 나 이대로는 원통해서 못 살겠다. 당장 앞장서. 니년 부모님 면상 좀 보자. 니년 같은 년들이 남의 귀한 딸 망쳐놓고 이렇게 뻔뻔하게 낯짝 들고 다니는 꼴, 나는 못 본다. 당장 앞장서!” 한 달 뒤에 혜란이와 수진이 모두 전학을 갔다. 한동안 소문은 무성했고 진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전에 수진이가 좋은 애일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그 얘기를 하려면 중학생이었던 당시 나는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에 미쳐 있었다는 고백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그 세트는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6학년 때부터 출시되었지만 그땐 용돈이 부족해서 냄새만 자주 맡고 다녔다. 본격적으로 사 먹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부터다. 나는 마치 불고기 버거 세트를 먹기 위해 하루를 사는 애처럼, 집 앞 롯데리아에 살다시피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가기 전에 비는 시간 내내 나는 거기 앉아 있었다. 달달하고 퇴폐적인 패스트푸드 향을 코끝으로 즐기며 숙제를 빠르게 끝냈다(곧 그걸 먹을 생각에 속도가 잘 났다). 마침내 먹을 시간이 되면 콧바람을 내뿜으며 계산대로 달려가서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요!”라고 숨차게 말했다. 어떤 날은 큰 맘먹고 치즈 스틱을 보태기도 했는데, 그 돈을 세 번만 모으면 일요일에도 세트를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그러지는 않았다. 다들 알겠지만 불고기 버거는 빵 크기는 작아도 소스가 떡칠되어 있기 때문에 칼로리가 꽤 나간다. 물론 그때는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고 그저 혀가 즐겁다 하니 나도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입 안 가득 베어 무는 크기로 먹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세네 번의 입 질만에 끝이 났다. 우리 집이 좀 잘 살았으면 하루에 열 번도 먹을 수 있는데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로, 포테이토를 찍어 먹다가 남은 케첩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먹으며 한 자리에 전세를 내고 앉아 있었다.          



      

저녁 6시 15분. 학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단념하는 마음으로 입 안에 남은 불고기 양념을 게워내려고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댔는데, 얼음만 남은 콜라 팩이 드르륵드르륵 신음소리를 냈다. 이 진상 손님아, 이제 그만 가시라고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치사하다고 툴툴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메고 나가면서도 불고기 버거에 대한 아쉬움을 버리지 못하고 계산대를 한 번 더 애잔하게 바라봤는데, 그때 수진이를 봤다. 열 살 남짓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주문을 하다가 난감해하고 있었다. 세트를 사 먹기에는 1,000원 정도가 모자라는 모양이었다. “단품으로 바꿔드릴까요?” 주문원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답변을 재촉했으나 아이는 우물쭈물 거리고만 있었다. 바로 뒤에 서 있던 학생이 수진이었다. 수진이는 꼬마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허세가 섞인 입 꼬리로 천 원을 내밀며 “여기” 했다. 그리고 무심하게 뒤돌아서서 내 쪽(출입문)으로 걸어 나왔다. 그쪽(계산대)을 구경하고 하고 있던 나는 민망해하며 눈인사를 했다. 그때 마주친 수진이의 눈에는 순진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수진이가 혜란이 사건의 주도 자일리 없다고, 난 생각했다.          




그때까지 내가 아는 수진이 사정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우리가 서른을 막 넘긴 채 다시 만난 날. 나는 묻지 않았지만 수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들려주었다. 시작하는 말은 “다 지난 일이야”였지만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전해서 마음이 아팠다. 혜란이 사건의 주도자가 자신이라는 건 누명이 명백한데,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어쩌면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기가 사건 당일 거기에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혜란이와 고등학교 오빠들을 연결시켜 준건 자기라고 했다. 동네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독서실이었고 자기는 거기서 밤 9시부터 12시까지 알바를 했었단다. 카운터에 앉아만 있으면 되는 일이라 거기서 숙제도 하고 드라마도 보고 졸기도 하면서 시간을 때웠단다. 그런 입장이다 보니 거기 드나드는 학생들을 자연스레 구경하게 됐는데, 알다시피 혜란이는 좀 눈에 띄지 않았느냐고 강조했다. 그런데 혜란이가 몇 날 동안 옥상에 가서 우는 것 같았단다. 그 모습을 번번이 보고만 있다가 마음이 쓰여서 따라 올라 간 날. 구석에서 몰래 담배 피우던 오빠들이 무슨 일 있냐고 말을 걸었는데, 그 오빠들이 개그를 잘하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자기가 먼저 말을 받아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몇 번 정도 수다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스트레스를 풀던 사이였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힘없이 말했다. “난 밖에서 만난 적은 없었는데……”                   



ⓒ 일러스트 김유은



난 뭐라고 대꾸해야 될지 몰라 기억 신경 세포를 다그쳐서 또 다른 수진이를 소환했다. 그리고 급격히 화제를 돌렸다. “넌 소풍날이 제일 짱이었어!” 우리는 중학생이 되면서 매일 교복을 입었다. 그러다가 일 년에 딱 두 번, 봄 소풍과 가을 소풍은 사복을 입는 날이었다. 그날이 되기 몇 주 전 주말은 시내 보세 가게와 아울렛이 엄청나게 붐볐다. 저마다의 패션 감각을 자랑하기 위해서 여중생들의 온 신경이 날 서 있었다. 본래 예쁜 애들이야 교복을 입어도 예쁘고 사복을 입어도 예쁘기 때문에, 뭐 당연한 진리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약간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애들이 사복을 입는 순간 매력이 폭파하는 경우가 있었다. 수진이가 그랬다. 딱히 비싼 옷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유행하는 옷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입고 나온 것과는 뭔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봄 소풍과 가을 소풍, 계절의 때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고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극도로 잘 부각하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러나 수진이는 작정한 듯 화제를 다시 그쪽으로 꺾었다. “그럼 뭐하니. 누가 봐도 혜란이보다 내가 날라리로 보이는데…… 아무도 안 믿어주더라. 내 말을. 나 그때 진짜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잖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때부터 폭식증이 시작됐다고 했다. 이후 15년이 넘도록 갖가지 노력을 시도했지만 도돌이표 찍는 기분으로 다시 폭식하고 토했다고. 그러다 우연히 네이버 블로그에서 나의 ‘다이어트 칼럼’을 읽고 묘한 기분이 들었단다. 마지막 방법이 될 거라는 희망과 아는 얼굴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죽기보다 싫은 비틀린 감정이 뒤섞였다고. 결국 닉네임으로 자기를 가리고 지태주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나, 이후 차례로 스텝을 밟으며 자연스레 나와 연락이 닿았다. 반년 가까이 함께 하면서 100%는 아니지만 ‘충분히’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회복했다. 이 부분에 대해 나에게 단단히 고마워하고 있음으로, 나에게 알맞은 남자를 직접 골라주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수진이는 도영과의 첫 컨설팅 당일까지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따라가겠다고 때를 썼다.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프롤로그: 오늘 일하기 싫은 당신께

1. 이 이야기의 시작

2. 완전 내 편인 친구  

3. 아무 말 대잔치 일기장   

4. 초심을 부르는 질문

5. 속 시원한 수다

6. 입가엔 미소와 단잠

7. 취향 저격 아지트

8. 게으름 피우는 요일

- 에필로그: 꾸준한 사람들이 모두 가진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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