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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대잔치 일기장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아무 말 대잔치 일기장



엄마는 자주 나를 ‘냉정한 년’이라고 불렀다. 엄마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하동이라는 시골에서 7남매의 맏딸로 자랐다. 먹고살기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탓에, 크게 차려 놓은 한 상 앞에 우르르 모여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시간을 즐기셨다. 반면 나는 태생적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모인 곳에 오래 있으면 두통이 생겼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좋고 싫음을 떠나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지경이 되면 나는 방문을 닫았다. 혼자 있고 싶어서였다. 엄마 눈에는 그런 내가, 정이 부족해 사람들을 가까이할 줄 모르는 ‘냉정한 년’이었던 거다.                




청소년기에는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이 꽤 깊어졌다. 하루는 세 살 터울 남동생을 붙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만약에 말이야. 오늘 하루가 엄청나게 피곤했어. 그리고 니는 곧 집에 도착해. 니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둘 중에 하나야. 1번은 노랑 노랑한 조명이 잔잔하게 깔려있고 나직한 음악 정도만 틀어져 있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집’ 2번은 형광 조명이 완전 환하게 켜져 있고 된장찌개 냄새 팍팍 풍기고 ‘TV 소리가 니를 반기는 집’ 니는 어느 쪽인데? 골라봐 바!” 내 입장에선 고민할 것도 없이 1번이었다. 남동생도 고민 없이 바로 답했다. “당연히 2번이지!” 아… 그렇구나. 사람의 성향이란 저마다의 것이 있구나. 하고 무릎을 쳤었다.        



         

대학생이 되어 동기들과 술을 퍼 마실 때도, 직장인이 되어 환자들에게 월급 값을 해야 할 때도 나는 달라지지 못했다. 여지없이 내 방문 밖을 나설 때마다 머리 꼭대기에 모래시계를 달고 나갔다. 모래가 서서히 닳아 없어질 때쯤이면 나는 오직 집에 갈 궁리만 했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 엄마 딸답지 못하게 지독히 내성적인 성향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소통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일기를 썼다. 오히려 학창 시절보다 어른이 된 이후에 더욱 제대로 일기를 쓰게 되었다. 선생님이 검사하지 않으니까 종이 위에 온갖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안네의 일기」에는 “종이는 사람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는 옛말이 나온다. 나도 그 말에 동감했다. 모든 말을 다 받아주는 일기장과 함께 내 공간에서 안락하게 숨 쉬는 동안,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 일러스트 김유은

          


창업 이후 내가 가장 많이 한 일은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 핸드폰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회원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었다. 통화는 잦아졌고 또 길어졌다. 나의 보스(BOSS) 이어폰은 파업을 선언한다는 듯 여러 가닥의 전선을 밖으로 삐죽삐죽하게 내보냈다. 처음 김이사님의 손에 끌려 보스(BOSS) 매장에 갔을 때, “무슨 이어폰 하나 값이 19만 원이나 해요?” 펄쩍 뛰며 내가 말했다. 콩나물 가격이 언제 이렇게 올랐냐고 펄쩍 뛰던 우리 엄마와 영락없이 닮은 얼굴로. 김이사님은 그런 내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씀하셨다. “좋은 이어폰은 우아한 목소리를 만들지.” 나는 그 말이 두고두고 좋았다. 내 목소리가 보스(BOSS) 이어폰을 타고 흐를 때마다 왠지 조금은 우아해지는 것 같아, 저절로 허리가 곧게 펴졌다. 시간대별로 타이트하게 예약을 잡아 놓고, 1시간에 1명꼴로 10명씩, 10시간을 상담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입니까?’하는 뉘앙스가 다분히 섞인 통신사 상담원의 설문조사를 받기도 했다.     



          

매일매일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그 이야기들은 대게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또 먹어 버린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그렇게 사소한 이야기들이 백 가지, 천 가지, 만 가지가 쌓이면 그 속에 어떤 맥락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아른거렸으나 점차 또렷해졌다.   

    

있잖아.
사람들이 왜 자꾸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줄 알아?

처음부터 계획에 실패를 포함시키거든.
어차피 이번 방법도 나에게는 효과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은 마음을 제일 밑바닥에 쿠션으로 깔고 시작하는 거야.
(그러면 나중에 넘어져도 덜 아플 테니까)

그러다가 구실 삼기에 딱 좋은 단초가
톡-하고 튀어 오르면
미리 깔아 놓은 쿠션의 힘을 보태
퉁-하고 튕겨 보내는 거지.



  


앞서 고백했듯이, 타인과의 소통은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싫지는 않았다. 그저 남의 감정에 잘 전이되는 편이라서 빨리 소진되니 힘들었을 뿐. 특히나 그날은 소이 말하는 진상 회원이 대소동을 벌였으므로 조금 더 힘들었을 뿐. 이유는 본인이 또 먹어버렸는데 그 이유가 아무래도 우리 때문인 것 같다고. 분명히 나아지고 있었는데 이걸 시작하고 나빠졌다고. 그리고 본인이 꽤 잘 나가는 블로거라는 부분을 넌지시 알렸다.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수 시간 내로 다수에게 악평을 노출할 수 있음을 뜻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떨어진 바닥을 보면 기겁하는 결벽증 환자처럼,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거실에 한 점의 악평이라도 자국 남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조아리고 달래고 사정하는 하루를 보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기분이 풀린 그 회원은 ‘믿고 계속해보겠다고’ 했다. 그 연락을 받은 것이 저녁 7시 10분이었다.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화가 나서 글씨를 날치기해버렸다. 기록을 소중히 여기는 스타일이지만, 이건 나중에 못 알아봐도 좋았다. 속 풀이를 해야 살 것 같았으니까. 잽싸게 날치기를 끝내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또 핸드폰이 울렸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싶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슬그머니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훔쳐보았다. 다행히 수진이었다.        



         

“세뇨리따~ 준비됐나요?”

전화를 받자마자 수진이가 목청 높여 노래를 불렀다.

“아! 맞다.”

내가 아 맞다 하면서 입을 벌리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면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맞기는. 개가 몽디(몽둥이)를 맞나. 퍼뜩(빨리) 안 하나(시작 안 할 거니)?

“뭐야? 아직 준비 안 끝났어?”
“깜빡했네. 오늘 일이 너무 많아가지고…….”

“야! 깜빡할 게 따로 있지. 그리고 니가 이것도 일이라며? 그것도 중요한 일이라며? 그래서 내가 따라가면 안 된다며?”               




그랬었다. 얼마나 어렵게 정한 약속이었던가. 수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제가 뭘 도와 드리면 되죠?” 도영이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가 찾아간 건 도영이 아니라 ‘그분’ 그러니까 교수님이니까. “살이 잘 빠지는 이야기 콘텐츠를 완성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도영의 표정을 혼자 본 건 정말 아쉬웠다. 그는 미간과 코끝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심함을 드러냈다. ‘그걸 왜 나에게 묻느냐’고 속엣 말을 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잠시 후, 도영은 원하는 바를 밝혔다. 첫째, 교수님의 부탁이니(이 부분에서 작은 한숨을 분명히 쉬며) 시간은 내겠으나, 자긴 장사도하고 글도 써야 하는 입장이라 시간이 넉넉지 않으니 장소는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근처로 하자고. 둘째, 교수님 부탁이니(자꾸 강조 안 해도 아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몇 번의 컨설팅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기한 없이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서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걸 원칙으로 해서 5회 정도로 협의하자고. 마지막으로 미안하지만 자기가 시간이 정말 없는 관계로 컨설팅 시간대는 가게가 마치는 늦은 새벽이나 아예 이른 오전만 가능하니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 상황이 달갑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겠다는 것이다. 혹시나 내가 저 조건 다 맞추기가 힘들어 저절로 떨어져 나가면 매우 고맙고.        



             

나는 강단 있게 말했다. “식당은 어디서 하세요?” 도영은 (내가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체념한 듯 직사각형 명함을 건네었다.

 -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745-15. [큐슈의 저녁]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프롤로그: 오늘 일하기 싫은 당신께

1. 이 이야기의 시작

2. 완전 내 편인 친구 

3. 아무 말 대잔치 일기장

4. 초심을 부르는 질문

5. 속 시원한 수다

6. 입가엔 미소와 단잠

7. 취향 저격 아지트

8. 게으름 피우는 요일

- 에필로그: 꾸준한 사람들이 모두 가진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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