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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피우는 요일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게으름 피우는 요일



태연실장님. 그녀와는 소수정예 다이어트 코칭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어느 여름날, 회원으로 만났다. 나는 부산에 있었고 그녀는 서울에 있었다. 우리는 화상으로 주 3회씩 만났다. 그녀의 닉네임은 ‘구라태연’이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태연을 닮았는데 구라로 닮았다는 것이다.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툭 던지듯 다음 말을 했다. “음~ 소녀시대의 태연이 아니고요. 그 19금 영화 거짓말 아시죠? 거기 나왔던 여배우, 김태연이요.”




2년 후, 내가 낸 ‘지태주 창업팀 구인광고’를 보고 그녀가 연락해 왔다. 그녀는 꿈에 목마른 스물아홉 살이었다. 자신이 어떤 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왜 태어났는지, 알고 싶고 찾고 싶어 했다. 그 목마름이 목 끝까지 차올라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썼다고 했다. 그녀가 부모에게 사표에 대한 상의를 요청했을 때 “시끄럽다”는 답변이 돌아왔는데,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떠들지 않고 부모 몰래 사표를 써놓은 상태랬다. 우리는 일단 만나기로 했다. 긴 생머리에 화장을 곱게 한 그녀는 말수가 적었고, 술을 잘 못한다고 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얌전’ 그 자체였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일단 만났는데, 둘 다 은근히 내성적이라면? 예상했겠지만 한동안은 대화가 겉돌았다. 그러다가 반짝하며 통한 지점에서 “그렇죠!”하며 눈을 진하게 마주쳤다. 그건 바로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라는 부분이었다. 그때부터 말이 트이기 시작한 우리는 2시간가량 말을 주고받았다. 일과 동료 그리고 회원들까지 모두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회사를 만들어가자며 결연했다. 함께 일하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말수가 적었다. 업무에 꼭 필요한 부분 위주로, 어쩌다 마주치는 8촌 친척처럼 몇 마디씩 주고받곤 했다.                 




그녀가 면담 요청을 한 것은 함께 일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어디가 좋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상세히 답변했다. 얼마 전 신도림에 커다란 쇼핑센터가 하나 생겼는데 건물 양식이 독특하다며, 그곳 지하에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 카페가 있다고, 대표님(나) 괜찮으시면 거기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장소 설명을 들으니 미리부터 머리가 복잡해졌다. 나는 메신저에 ‘그래요’라고 답하고 핸드폰을 닫았다. 쇼핑센터는 지하철역과 곧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길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 길 찾기가 수월한 날에 호재를 예감했다가 몇 번 뒤통수를 맞고 나서, 그런 걸로 앞일을 점치는 깜찍한 짓은 그만 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지하 2층에 도착했다. 크게 펼쳐진 유리벽 안으로 사방 가득 차 있는 책들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북 카페였다(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던 계절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따뜻한 조명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먼저 자리 잡고 있던 그녀가 ‘오셨어요?’하는 모양으로 가볍게 목례를 했다.     


ⓒ 일러스트 김유은

           


일요일 오후 3시. 밖은 시끌벅적하고 안은 적막한 그곳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놓고 앉았다. 서론은 없었다. 곧바로 그녀의 드릴 말씀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펀치. “대표님, 저… 퇴사하려고 합니다.” 역시 그랬구나, 예상한 말이었다. 나는 수긍하는 자세로 눈을 내리 깔았다. 그녀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전요, 어릴 때부터 옷이 좋았어요. 그냥 좋았어요.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상 못했고, 인터넷 쇼핑몰이 한창 유행할 때도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힘들다고 말려서 못했어요. 그런데 일주일 전에 쇼핑몰 인수 제안이 들어왔어요. 대표님, 저요……. 그때부터 잠이 안 와요. 저 도전해 보려고요.” 그 모습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개 숙여 고백하는 애인 같았다. 그녀가 잡아서도 안 되고 잡을 수도 없는 이유를 가지고 온 까닭에, “그래요. 이해해요.”라고 나는 말했다.    



            

두 번째 펀치. “그간 감사했어요. 창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옆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갑자기 그녀가 차선 변경을 위해 깜빡이를 넣는 예의 바른 운전자처럼 뜸을 들였다. 불길했다. 나는 두 손 가득히 머그잔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얘긴 드릴까 말까 고민을 조금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조금 했다는 건가? 많이 했다는 건가? 벌써부터 예민해진 내가 속으로 그 부분을 짚었다. 그러나 이 정도 분위기까지 왔으면 들어야 될 말 같았다. 나는 재촉하듯 말했다. “말해 봐요.” 그러자 그녀가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도발적인 눈빛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미인의 유혹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내처럼 마른침을 두 번 삼켰다. 그녀가 말했다. “출근해서 뭘 해야 할지 난감한 날이 많았어요. 물론 대표님이 주시는 비전은 늘 멋있었지만, 오늘 당장 집중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는 아리송했어요. 함께 일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동아리 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았달까요? 그러니까 그때그때 낭만은 있었지만 이게 과연 쓸모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어요.”   


              


아……. 나는 정곡을 찔린 사람답게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콧방울을 벌렁거렸다. 그녀가 이어 말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런 얘기가 가당치 않다는 걸 알지만, 누군가 한 번은 해야 한다면 이번 기회에 제가 하자 싶었어요.” 나는 붉어진 낯을 두 손으로 살짝 감싸 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곤란한 얼굴로 사과했다. “혹시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냥 머릿속이 하얗게 탔을 뿐이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그녀가 다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왔다. “그리고요. 대표님, 오른팔을 너무 믿지 마세요.” 그것은 세 번째 펀치였다. 오른 팔이란 우리 조직에 단 한 명 있는 중간관리자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사무실에서 장난 삼아 그녀에게 ‘오른팔 오른팔’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많이 신뢰하는 팀원이었다. 그런데 뭘 믿지 말라는 건가? 우리 회사 매출이 어마어마한 것도 아니니 횡령 같은 것은 아닐 테고. 그럼 뭐지? 나는 속으로 몇 가지를 되짚어 보다가 현기증을 느꼈다. 아마도 그 증상은 자기 방어 기제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완전히 무너지면 회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겁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듣는 게, 내 한계였다. 때마침 어떤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잔뜩 딱딱해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됐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가, 그 청년을 장미꽃을 팔러 온 잡상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은 우리 테이블에 남는 의자 하나를 써도 되겠냐는 거였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태연실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 청년에게 해버렸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형식적인 성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면담을 마무리했다.            



    

돌아가는 길.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단번에 가는 88번 버스를 택했다. 그러나 그날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88번 버스노선은 마을버스보다 촘촘했다. 나는 1시간 40여 분동 안 구불구불한 골목길 위에서 신트림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사단이 났다.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다. 병명은 급성 위경련이었다.                





병원에서 받아 온 약봉투를 열어 한 봉을 입에 털어 넣고 잠들 채비를 마쳤다. 아침에 받아 본 뉴스레터의 헤드라인(스타트업의 5년 생존율은 20%도 안 된다)이 천장에 그려졌다. 5년 뒤에 내 모습을 상상하니 덜컥 겁이 났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이 뻔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호흡을 깊게 했다.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했다. 클릭-클릭-클릭. 몇 번의 마우스 딸깍 소리가 지나자 각종 회원 정보와 함께 팀원들의 업무내용이 고스란히 열렸다. 나는 그즈음에 팀원들의 업무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었다. 왜 그랬느냐 하면(변명을 하자면) 하루 일과가 아찔했기 때문이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각종 미팅 및 행정업무를 처리했는데 길과 숫자에 눈이 어두운 내 입장에서는, 한시도 안심할 겨를 없이 초단위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해가 지면 글 쓰고 녹음하는 일정을 소화했는데 행정적인 자아와 창의적인 자아 사이에서 갈피를 잡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골아떨어졌다.                     




물론 실무를 완전히 방치하지는 않았다. 나는 손쉽게 오른팔에게 묻는 방법을 택했다. “요즘 어때요?” 오른팔은 우등 회원의 체중변화, 화기애애했던 사무실 분위기,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긍정적인 후기 등등을 알려줬다. 그러나 그날 밤, 자세히 들여다본 관리자 페이지의 지표들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눈도 심장도 손가락 마디 끝도, 한 마음으로 일렁거렸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조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자신이, 내 안에 없었다.      




우선 나는 휴가를 냈다. 밖으로만 도는 것 같아도 내 역할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로 휴가를 한 번도 쓰지 않았는데, 그게 잘하는 짓이 아니라는 걸 지난밤에 깨달았다. 나의 휴가 계획은 단순했다. ― 양껏 게으름 피우기. 변두리 비즈니스호텔에 1박을 예약했다. 체크인하자마자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까서 마시고 알딸딸한 기운으로 호텔 침구에 폭 안겼다. 1-2시간쯤 자고 깨어나서는 “아! 눈 부셔~”이러면서 괜스레 투정을 부렸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서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다가, 물기만 대충 닦은 몸으로 침대에 쏙 들어갔다가, 20분 이상 집중하지 않는 패턴으로 TV 채널을 돌려대다가, 커피 포터에서 끊은 물로 컵라면 하나를 익혀서 호로록호로록 즐겁게 먹었다. ‘내일 아침 부은 얼굴 = 휴가를 즐긴 자의 훈장’ 뭐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또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당시 나를 점령했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불안하니까 더 열심히 하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벌인 문제를 감당하느라 또 열심히 하고,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되는지 불안해서 다시 열심히 하는 패턴이었다. 누군가 콕 집어서 “너 뭘 그렇게 열심히 하니?”하면 제 발 저린 도둑처럼 깜짝 놀라며 변명을 길게 했다. 그렇게 내 안에 불안과 싸우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는 무신경한 태도를 취했다. 신인시절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하라는 선배의 조언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대상 수상 소감을 밝히던, 어느 여배우의 말이 뜨겁게 와 닿는 밤이었다.            



      

다음 날, 체크아웃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와, 예쁘다고 내가 중얼거렸다. 버스가 달리는 속도보다 약간 빠르게, 뭉게구름들이 감미로운 리듬으로 춤추고 있었다. 코스모스들도 하늘하늘하게 박자를 맞추며 가을 풍경에 멜로디를 더해줬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바람을 세어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달리는 차창과 함께 여유를 즐기던 도중, 내 시선을 앗아간 도로 표지판이 있었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힘들 땐 쉬어 가세요.           




「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 프롤로그: 오늘 일하기 싫은 당신께

1. 이 이야기의 시작

2. 완전 내 편인 친구 

3. 아무 대잔치 일기장

4. 초심을 부르는 질문

5. 속 시원한 수다

6.입가엔 미소와 단잠

7. 취향 저격 아지트

8. 게으름 피우는 요일

- 에필로그: 꾸준한 사람들이 모두 가진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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