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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에 체중을 쟀다

기분의 안녕

@줄라이




"까아악-"

그것은 감탄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오밤중에 체중계에 오른 내가 지른 소리였다. 은근히 느끼고는 있었다. 몸 여기저기에 살이 오르고 있음을 말이다. 그러나 체중을 재지는 않았다. 다이어트 어플 사업을 하는 사람이니만큼 8년간 한결같은 체중을 유지해왔다. 때때로 살짝 찌기도 하였으나 이내 원래대로 돌아갔다. 말하자면 체중 항상성이 훌륭한 몸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리하여 내 속에는 '쪄 봤자지?' 하는 믿음이 터줏대감처럼 기세 등등하게 자리했다. 그 믿음은 보기 좋게 배신당했다. 맨발을 감지한 체중계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못 보던 앞자리였다. 나는 마치 그 숫자를 모르는 사람처럼 슬며시 내려왔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류를 의심하며 자리를 옮겼다. 다시 올라갔다. 소수 점까지 동일한 숫자가 표기되었다. 나는 괜히 읊조렸다. "성능 좋네. 샤오미"



일기장을 펼쳤다. 이유를 분석해보아야 했다. 하나둘씩 되짚어 보니 범인은 '맥주'였다. 나는 그간 맥주 한 캔 정도는 고민 없이 허용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왔는데, 어느 날부터 맥주 없이 못 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맥주를 안 먹을 수 있지만 오늘은 맥주를 먹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요 몇 달 맥주 없이 살아봤다. 만에 하나 알코올 중독 그런 거면 어쩌나 두려웠다. 하지만 웬걸? 나는 맥주 없이도 잘 살았다. 문제는 맥주를 끊으니까 빵이 좋아졌다는 것. 예전에 필라테스 선생님이 "지원님은 빵은 안 좋아하세요?" 물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저는 빵 나오는 시간에 빵 집 지나가도 안 땡겨요" 했었는데, 실은 나에게는 설레는 맥주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체중관리 ― 숫자는 숫자일 뿐이라고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죽어라 아끼는 남자같이 답답한 소리다. 물론 그 숫자에는 근육, 수분, 체지방 같은 여러 체성분과 낮밤, 생리, 호르몬 같은 갖은 변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숫자만 맹신하는 것은 바보짓이지만 나처럼 외면하다가 후회하는 수가 있다. 숫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왜'인지를 헤아려 내 일상에 반영하는 쪽이 좋다.



오늘 아침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스트레칭 20분, 플랭크 7세트, 15층까지 계단 타기 2회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지금까지 맥주는 안 먹고 있으나 앙버터를 잘하는 빵집에 들렀다 왔다. 이런 맛도 모르면서 인생 왜 살았니? 하는 자조와 함께 실실 웃으며 꼭꼭 씹어 먹었다.


- 2019.12



당장 쓸모는 없지만 언젠가 쓰임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기록해두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걸 기분 전환 용도로 쓰곤 했습니다. 「기분의 안녕」은 그곳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단대표 이지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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