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모두 시니어가 된다
이 글은 엘르보이스 2023년 2월호 기고분의 수정 전 원고를 확장한 것입니다.
https://www.elle.co.kr/ellevoice/essay/74811
“저 빌런들은 대체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3-4년차 정도가 될 때까지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다. 저 사람도 나름 똑똑해서 신입사원 공채를 통해 입사했을 것이고 “나는 일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혹은 “멍청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지” 혹은 “남들을 괴롭히는 재미로 앞으로 살아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대체 왜 저렇게 남한테 피해를 주며 사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 7월이 되면 8년 만근이다. 이제 주니어라고 우기기는 좀 민망한 연차가 되었고 내가 그토록 이해하고 싶었던 빌런들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 한편 민망하게도 나의 사회생활 5년 정도는 내내 막내였고 타이틀에 Associate 를 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굉장히 최근까지 내가 주니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늘 막내의 마음과 필요 이상의 저자세로 모두에게서 배우려고 했고 궂은일도 도맡아 하려고 노력했다. 업무 외 시간도 일을 잘 하기 위한 공부에 투자했다. 평일은 당연히 눈 뜰 때부터 감을 때까지 일하거나 공부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일하기를 6년 내내 했고 마침내 지쳤다. 내가 저연차이던 시절 실장님들이 버릇처럼 내뱉던 “너도 늙으면 알게 될 거야”라는 말들 아래 퉁쳐진 많은 것들을 그때부터 슬슬 깨닫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늙는다는 것은 뭘까? 시니어라는 이름에 가까워지며 내 나름대로 내린 답은 이랬다.
1/ 결정하기로 결정하는 것
시니어의 문턱에 서니까 이전보다 결정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외부 파트너에게 프로젝트를 맡겨야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담당자로서 파트너들에게 내보내야 하는 아키텍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잘못된다면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가 됐다. 그리고 내 프로젝트를 적시에 달성할 수 있기 위해 다른 팀들과 협의해서 그들이 내 프로젝트 우선순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간 나는 사실 결정을 할 일이 거의 없었고 나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는 일들이 많았다. 실패하더라도 그 범위가 너무도 작아서 결정을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프로젝트가 망했을 때 피해 범위가 큰일을 하게 되고 뭔가 ‘결정’ 같은 결정을 해야 하는 때가 찾아왔다. 자꾸만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이래도 되겠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물으면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너야”라는 답만이 돌아왔다. 외로웠다. 지금까지 시니어들이 우유부단하고 결정을 도무지 못하거나 누가 봐도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 안다. 정답이라는 게 없는 일은 사람을 두렵게 하고, 먼 거리에서는 보이는 것이 안 보이기도 한다는 것을.
시니어가 될수록 결정도 많이 하지만 결정할 기준도 모호하다. 지금까지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기준이 아주 명확했다. 클라우드 회사에서 일할 때 나는 고객에게 가장 적은 비용, 가장 최선의 성능을 보장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서 보여주었고 그들이 의사결정을 하도록 성실히 도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중에서도 비용과 성능 중에서도 무엇을 선택할지 내가 결정해야 했다. 그러려면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우리 조직의 비전은 뭔지, 나 개인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내 위의 리더들이 내가 결정을 내릴 기준들을 결정해주지만, 내 영역 내의 모호함을 헤쳐나가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모호함 속에서 결정하기로 결정하는 것, 이게 시니어의 일과 성장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했다.
2/ 다른 사람들을 정확하게 활용해서 더 큰 일을 해내기
주니어로서 일을 잘하는 것과 시니어로서 일을 잘하는 것은 명백히 다르다. 그것을 느꼈던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수석 프로덕트 매니저랑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 PM이 내게 아주 기술적인 세세한 디테일부터 프로젝트의 비용과 일정, 목표, 그 다음 프로젝트 등 꽤 큰 관점까지 잘 본다는 칭찬을 해줬던 게 기억이 난다. 이제는 내가 중간 연차가 되어서, 주니어의 역할과 시니어의 역할을 모두 하기도 하는 과도기적 순간에 있음을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사람들이 일 잘하는 주니어의 정의로 말하고는 하는 ‘빵꾸 내지 않는 것’, ‘센스 있는 것’은 사실 다음과 같은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첫째 내가 맡은 작은 소관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장인 정신, 둘째 내가 하는 이 일이 큰 부분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정확히 알고 이 일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대비하는 것, 셋째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을 리스트업할 줄 알고 각각의 대응책을 직접 마련하든지 관련자들과 공유하여 마련하게끔 하는 것. 이런 일의 감각을 기르는 주니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은 시간 집약적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서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이번에 그 수석 PM과 함께 일하면서 밀고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어떤 미팅에는 “내가 여기 참여해서 가치를 더할 일이 뭐가 있을까?” 묻기도 했고 어떤 미팅은 자신이 나서서 잡기도 했다. 어떤 때에는 나에게 밑도 끝도 없는 자율을 주었지만 어떤 때는 개입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되짚어 보니 패턴이 있었다. 그는 파트너와 하는 정기 미팅에는 특별히 아젠다가 있지 않으면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에 그 시간에 오히려 파트너에 대해 공부해서 그 다음 시간에 여러 가지 통계나 인사이트를 들고 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는 내가 잘하는 게 아키텍처를 세운 뒤 다른 팀과의 외부 연관 관계를 알아내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부사항들을 찾는 것이라고 파악한 것 같다. 그래서 이런 부분의 모든 일은 내게 맡겼다. 대신 실제로 타 팀과 우선순위를 논하는 자리에는 본인이 가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레벨에서 볼 수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다른 팀을 설득하는 것은 그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나를 칭찬해주었고 자신이 가진 네트워크와 자료들을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지 않았다. 시니어는 일에 들입다 파고들지 않고 자신의 팀이 무엇을 잘하는지부터 파악하고 어떻게 말을 놓을지 생각한 뒤에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배웠다. 에너지를 아끼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고 그러면 내 자리에 걸맞는 인사이트를 줄 수 없으니 시간에 인색한 그가 뒤늦게 납득이 됐다.
3/ 회사를 납득하기, 아주 차갑게
조금 더 주니어일 때는 “참 때가 안 묻었다,” “순수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 못하고 대충 좋은 말인가보다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이제야 이해가 된다. 돌이켜보니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는, 내가 하는 모든 비판과 질문이 본인들이 한 때 가졌던 것들이고 이제는 삼키게 된 것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그와 나 사이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감이었다. 그때의 나는 학교에서 가르쳐주던 도덕적인 옳고 그름, 우화들을 통해 배운 인간으로서의 덕목들에 충만해서 회사에 화가 나는 일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하는 XX에게 이렇게 대우할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런 비효율을 모두가 묻고 살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 어떻게 이런 상황인데 회사에서 도와주지 않지? 내가 가진 의문들은 끝도 없었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그 많던 의뭉스러운 상황들 아래 패스츄리처럼 층층이 얽힌 이해관계들을 이해하게 됐다. 회사 그 자체는 악독한 존재이거나 비겁한 인간들의 총합은 아니었다. 주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경영진, 그런 경영진을 만족시켜야 하는 실무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개인들, 아주 선한 얼굴을 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었다. 나도 이제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8년 전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을 한다. 그간 내가 나쁜 인간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본주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것일 뿐! 거기에는 나든 대단한 전무님이든 사장님이든 언제나 회사에서 내쳐져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이며, 회사가 해고를 하면 별 수 없는 일이니 그저 개인적으로 조금 더 대비를 해야할 뿐이라는 사실이 포함된다. 조금 더 어렸을 때와는 다르게 회사에 왜 이렇게 못됐느냐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저 아주 차가운 마음으로, 회사원의 탈을 쓴 프리랜서의 자세로 살 뿐이다. 나라는 개인의 RPG 스테이지로 회사 생활의 개념을 바꾸어 사는거지 뭐.
한 해씩 늙어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들이 슬프지만은 않다. 인생에도 늙어가는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듯 회사에서도 그렇기 때문이다. 결국은 내가 조금 더 재미있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니까. 어떤 계단이 있을 때 그 턱 아래에 있는 사람은 대체 저기를 어떻게 가나 싶고, 그 턱 위에 있는 사람은 왜 안 올라오고 그냥 있냐고 채근하기 쉽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 턱을 슬로모션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희한한 시기를 꼼꼼히 기록하며 슬기롭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