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의 실전 비즈니스 영어 팁
영어는 기세다..!
미국에 온 뒤 2년을 통틀어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이번에 약 50분 가까이 되는 분들과 커피챗을 하면서 빠지지 않고 나온 질문을 딱 하나 꼽아야 한다면 단연 영어 질문이다. 나는 한 학기 미국에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을 빼면 평생을 한국에서 산 토종 한국인이다. 눈물 나는 외고 입시 덕분에 조금 일찍 입이 트였지만 분명히 영어를 더 잘했다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윤택했을 거라고 심심지 않게 생각한다. 커피챗을 하며 곰곰히 돌아 생각해보니, 지금 그래도 밥 벌어 먹는 데에 지장 없을 수 있는 데에는 사실 내 영어 실력이 어떻다 보다도 의사소통 방식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생각에 ‘일’할 때 영어를 잘하는 법은 사실 한국어로 일을 잘하는 법이랑 동일하다. 한국어로는 회의 잘 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말빨로 넘어갈 수 있다면 영어에서는 그렇지 못해서 밑천이 쉽게 드러나는 것 뿐이다. 좋은 표현들은 알려주시는 분들이 아주 많으니 나는 미국 회사에서 영어로 말할 때 잘 먹히는 몇 가지 방식을 나눠보고자 한다.
목차
알맹이를 담는 형식
두괄식 말하기
마법의 단어 ‘배움’ 활용하기
여유 있게, 군더더기 없이 말하기
결국은 알맹이
상황을 주도하는 프레임 만들기
결국은 선함, 결국은 진정성
한국어 — 저번에 미팅에서 말한 것처럼 시장 상황이 별로 안 좋은 것도 있는 것 같고요.. 저희 지표도 실제로 그걸 반영하고 있고..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그 프로젝트는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
영어 — I’d like to challenge ourselves to rethink whether we really want to proceed with this project. There are three reasons why. One, 어쩌구저쩌구…
내가 회사에서 경험한 한국어 발화와 영어 발화는 이런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두괄식으로, 근거는 리스트 형태로 말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일에서도 가장 힘든 것은 사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아닐까? 일하다 보면 한국어로 말하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는 경험을 다들 해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사실은 별 의견이 없거나 본인도 그래서 어쩌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는 경우이다. 언어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생각하고 논리적인 얼개를 잘 짠 뒤 말해야 한다. 내가 이야기 하는 방식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런 것이 있다.
의견을 말할 때 I agree / disagree with XYZ because of N reasons. One, ….. Second, …. 말 그대로 두괄식 그 잡채로 말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고 거기에 내 의견을 덧붙일 때 To echo (or reiterate) what X said…
누군가한테 반대하거나 대범한 의견을 제시할 때 I’d like to challenge ourselves to …
회의가 곁다리로 빠진 것 같을 때 I’d like to ask to bring everyone’s attention back to XYZ
미국과 한국 회사 생활 중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는 것이 자기 PR의 정도가 정말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일할 때는 PR을 꽤나 잘하는 사람이라고 나도, 주변에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에서 다른 분들은 100을 하고도 30을 했다고 말한다면 나는 100을 하면 100을 했다고 꽤 잘, 공개적인 자리에서도 얘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30을 하고도 100을 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다른 많은 한국인들처럼 내가 언제나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제로 겸손해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꽤나 나댄다는 소리를 들었던 나지만 여기에 오니 Don’t discount yourself, Don’t sell yourself short 이런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에서 따라해볼 만한 것이 있는지 잘 들어봤다. 자기 PR 이든 잘 안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든 ‘배움’이라는 말로 잘 싸여있었다.
자기 자랑 예시 - We had a fantastic meeting with X on the topic Y. To share the key learnings…. We believe our mechanism worked and want to spread this out to the team. If there’s anyone going through similar situation we’d love to jump in and help.
프로젝트가 잘 안되고 있다고 말하는 예시 - Project A is in a challenging situation where… To be vocally self critical, I’ve learned XYZ.. To keep it back on track I would do…
핵심은 내가 마인드셋을 정말로 ‘배움’에 맞추는 것이다. 내가 잘한 것과 잘 못하고 있는 것 모두에서 늘 배울 것이 있다. 그것을 잘 캐치한 뒤 거기에 초점을 맞춰 말하면 미국식(?) 자기 PR을 할 수 있다. ‘Lessons learned’, ‘learning’ 는 정말 마법의 단어이다.
You know, I mean, literally, umm 등등 Filler 들을 많이 쓰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한다. 같은 한국인이지만서도 대체 뭘 보고 영어를 배웠길래 저렇게 말할까 싶은 분들이 있는데 최소 프로페셔널한 환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말자. 영어 잘 해보일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말만 잘하면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다가도 언어의 문제이든 뭐든간에 상대방이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외국어 스피커로서의 덕목은 역설적으로 천천히 말하고 적절히 멈추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통 if that makes sense, Does it make sense? 이런 식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좀 자신 없게 들리는 말이라서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I’d like to pause here and see if there’s any questions.
Do you see any needs for clarification on my points?
회의, 발표 등등 우리가 회사에서 마주하는 아주 많은 발화의 기회는 대개 프레이밍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일 잘하는, 혹은 잘하도록 보이는 팁이기도 하다. 나는 미팅을 내가 진행해야 할 때 거의 반드시 이런 형식을 따른다.
1. 오늘 만난 목적, 미팅 결과로 얻고자 하는 것으로 참석자들의 주의를 환기한다. The purpose of today’s meeting is… What we expect to get out of today’s meeting is… At the end of the meeting we will be able to… 이런 식으로 보통 포문을 연다.
2. 참석자들이 서로 모른다면 소개를 요청하고 그들이 미팅에서 얻고자 하는 것도 공유해주기를 부탁한다. 나는 업의 성격상 고객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그러기도 하지만, 회사 내부 미팅이더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만날 때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부분이다. 다들 소개는 시키지만 뭘 얻고자 하는지는 보통 까먹는다. 그렇지만 여기가 핵심으로 잊지 말고 물어야 한다. If you don’t mind, could you give brief introduction of yourself and what you expect from the meeting…
3. 회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회의 시간 1/3, 2/3 지점에서 한 번씩 요약을 한다. 상대가 한 말을 받아적어 놓은 대로 반복하거나 내가 이해한 대로 요약, 재구성하여 말해서 서로가 오해 없는 상황인지 명확히 한다. Is it a fair summary… Are we on the same page about… 이런 표현을 활용할 수 있다. 이때 주어진 시간 안에 논의가 잘 마무리 될 수 있을지 파악해서 필요하다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든 추가 팔로업 미팅을 잡자고 하든 진행을 시켜야 한다.
4. 마지막 7-8분은 최종 마무리, 각자의 액션 아이템 정리, 마지막 코멘트 및 질문 요청에 쓴다. 아주 이상적으로는 7-8분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도 반드시 마지막에는 어떻게 해서든 Key takeaway, 발췌된 액션 아이템, 다음으로 진행하기 위해 추가로 스케줄링 되어야 하는 회의나 넥스트 스텝에 대해서 반드시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결국 어떤 일을 앞으로 진행시키기 위함을 잊지 말자.
5. 당연히 미팅 뒤에는 노트 정리해서 보낸다. 내가 주니어때 그렇게 회의록 정리했던 것들이 미국 오려고 그랬구나 싶을 때가 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녹취록처럼 쓴 것은 좋은 회의록이 아니다. 우리가 합의를 낸 점은 무엇이고 무엇을 추가로 누가 조사하기로 했는지,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서 무슨 결과를 내기로 했는지 등등 알맹이가 뭐였는지에 대해 스스로 많이 묻고 쓴다.
사실 이정도로 미팅을 프레이밍 하려면 한국어로 할 때도 상당히 집중하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언어적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훨씬 더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회의를 진행해야만 쓸 수 있는 방법들처럼 써놓았지만 사실 이건 참가자로서도 쓸 수 있는 방법들이다. 특히 3-5번은 그러하다.
영어를 하는 모든 상황은 결국 소통을 하는 것임을 잊지 않으면 사실 많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다. 보통 영어를 하는 게 어려운 상황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것을 잘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과 이럴 때 유독 기가 막히게 발동하는 메타인지 때문이다.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고 묻는 분들에게는 맥이 탁 풀리고, 뻔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이도 하지만 한국어로 말할 때에도 내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되묻는 것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부정적인 얘기를 늘어놓기만 하는 사람인가, 나는 힘들기는 하지만 결국은 힘내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인가, 나는 상대방의 문제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대화에 임하는가, 나는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에게 많은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는 않았나… 한국어로 말할 때는 문화적 맥락상 상대방이 이해하고 넘어가주지만 영어권 문화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영어 준비 뭐하면 될까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일단 배경 설명을 하자면,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덕이라고 말한다. 나는 특목고 바람이 강한 세대였는데 당시 공부 깨나 했던 나는 당연히 외고 입시를 준비했다. 해외에 가본 적 없는 100% 토종 한국 중학생으로서는 해외에서 살다온 친구들을 이길 재간이 없었다. 당시 학원에서 쉐도잉이라고 하는 걸 처음으로 알려줬다. 그걸 하루에 1-2시간씩 하면 리스닝 문제 다 맞출 수 있는 수준 된다고 해서 나는 5시간씩 했다. 그렇게 1년 반을 하니까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어느 정도 회화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첫째, 입이 아예 안 떨어진다면 쉐도잉을 인텐스하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내가 한 방법은 토플 기준으로 이랬다.
지문을 펼쳐놓고 단어, 숙어를 완벽하게 정리한다.
한 2-3번 지문을 펼쳐놓고 들으면서 문장을 쫓아간다. 일단 다 눈으로 보면 들리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눈으로 지문을 보면서 한 문장씩 끊어서 말해본다. 발음이 안되는 부분이 있는지 잡아가며 말한다.
통으로 본 상태에서 읽어본다. 버벅거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한다.
둘째는 내가 위에 써놓은 것처럼 한국어로 말하는 습관을 들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실 한국어로도 저렇게 말하는 사람 많이 없고 나 역시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쉽사리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언어는 다를지라도 인간의 소통이라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소통의 방식을 타계하면 다른 것들은 조금 더 쉽게 해결해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역설적으로 한국어를 잘, 회사의 방식대로 잘 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