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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냥덕 Feb 22. 2019

'괜찮아, 어차피 근육 안생겨'라고 말할 때

운동의 진짜 효능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운동하다가 너무 우락부락해지면 어떡해? 너는 걱정 안되니?”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든, 몇번 안 본 사람이든 내 취미가 웨이트 트레이닝이라고 하면 종종 듣는 말이다. 유사한 말로는 “나도 헬스하고 싶긴 한데 난 근육이 너무 잘 붙어서 좀...” “너는 지금이 딱 보기 좋은데...” 등이다. 이런 말들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괜찮아. 어차피 여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락부락해질 정도로 근육이 나오진 않아." 


 모종의 취미에 빠져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취미를 갖는다는 것은 종교나 '최애돌'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취미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일종의 포교‧영업 활동이다. 가끔 퇴근하고 헬스장에 갈 때 "가기 싫어"란 말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도 하고, 업무 때문에 반 녹초가 돼 헬스장으로 향하며 캘린더를 봤는데 ‘하체 운동하는 날’이라고 적혀 있는 날이면 욕지기가 튀어나올 것 같지만, 남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좋은 점만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체로 내 취미에 관하여 운을 띄웠을 때 첫 반응이 이렇다보니 거의 '본론'으론 들어갈 수조차 없다. 한동안 나는 ‘영업’을 위해 호르몬상 여성이 내추럴로 만들 수 있는 몸의 한계에 대해 꽤 심도있게 공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곧 관뒀다. 사실 나는 "괜찮아"가 아니라, 이 운동의 멋짐에 대해서 -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얼마나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고, 몸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주변 사람의 칭찬이 없어도 내 스스로 얼마나 자존감이 높아지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근육 안생기니까 괜찮다"라고 말하는 건, 마치 트럼펫이 취미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난 쳇 베이커가 엉덩이로 연주하는 것보다 못할거니까 괜찮다"라든가 글쓰는 게 취미인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내 글은 타지 않는 쓰레기일 게 분명하니까 괜찮아"라고 위안삼는 것이나 다름없다. 맞는 말이긴 한데, 좋아하고 열중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저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아이러니하고 김 새는 일이다.


 ‘여자 헐크’가 싫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취향의 문제다. 그럼에도 내가 사람들의 '여성 근육 혐오'에 대해 꺼림한 마음을 갖는 것은 여성의 몸을 얽매는 잣대를 거기서도 보기 때문이다. 콕 찝어 근육질의 여성이 싫기보다는,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는 여성이 낯선 거다. 물론 여기서의 정상은 미디어 및 사회가 권장하는 가녀리고 마른 여성상이다.


 근육이 많은 여자, 너무 뚱뚱한 여자, 남자처럼 가슴이 밋밋한 여자, 키가 지나치게 큰 여자 등은 사회에서 소위 ‘권장되지 않는’ 존재다. 지방 흡입술을 하다가 의료 사고로 목숨을 잃고, 가슴 수술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고 성형 수술로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많은 여성들이 있다.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권장되는 이상적인 이미지는 있지만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훨씬 그 잣대는 엄혹하다. 


 "왜 이렇게 내 주변 남자들은 다 제 뜻대로 생긴 사람밖에 없을까" 대학교 때도 그렇고, 직장에 와서도 항상 여자들끼리 모이면 농반으로 하소연처럼 하던 말이다. 나이가 들 수록 주변에 비만인 남자 선배들은 늘어가지만 여자 선배들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든, 아무리 술 자리가 잦고 업무 강도가 강한 부서에 가든 심하게 뚱뚱한 사람은 거의 없다. 몸 관리를 하기 힘든 부서에 같이 가도 남자들은 덜 묶은 풍선처럼 몸무게가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자들은 일정 이상 살이 찌지 않도록 각고의 노력을 한다. 이 사회를 사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아름답고 가녀린 몸, 혹은 하다못해 정상 범위 내의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조건에 가까워 보인다.


 사람 백명이 있으면 각기 다른 생김새가 백개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는 머리가 짧거나 길고, 누군가는 키가 2미터가 넘거나 150cm가 안되고, 누군가는 눈이 크거나 작을 것이다.  


 많은 여자들은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가장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진다. 대학 시절, 나는 사랑받기 위해선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내 몸은 온통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선천적인 말라깽이라 가슴이 너무 작았고, 상체에 비해 하체가 짧았고, 일자다리가 아닌 X자다리라 허벅지가 더 퉁퉁해보였고, 매양 앉아만 있어서 엉덩이가 납작했고, 얼굴엔 점이 너무 많았고, 코는 매부리코였고, 항상 꺼벙한 눈은 졸려보였고,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남동생과는 달리 까만 피부가 불만이었고, 볼살이 너무 많았고, 머리만 큰 콩나물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때의 사진을 지금 보면 다리가 퉁퉁한 것이 콤플렉스였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라빠진 뼈다귀 같은데도 그땐 중간고사 기간에 허벅지 사이에 사전을 끼우고 공부하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못가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버스나 지하철역의 무수한 성형 광고 속 여자들은 ‘너 같은 애가 시침떼고 멀쩡한 척 즐겁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뻔뻔한 일’이라며 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니가 성격은 더러운데 예뻐서 사귄거야”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하는 남자에게 차마 못생긴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찜질방에서조차 렌즈를 끼고 눈을 빨갛게 하고 있던 기억도 선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내게 말했다. “너는 그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거야? 설마 얼굴은 아닐거고.”


 어릴 적 나는 상당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자부한다. 장점이랄 게 그것 밖에 없었다. 엄마는 고슴도치 엄마처럼 날 사랑했다. 난 사랑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반에서 반장을 했고 많은 상장을 받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내 존재를 부정당해 본 것은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면서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사회는 젊은 여성인 내 몸에서 어떻게든 잘못된 것을 비집어 꺼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려고 하면 ‘열폭’ ‘자기위안’ 등의 단어로 내 존재를 갉아내려 했다. 


 중요한 건 그 잣대에 모두 맞는 여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점은 두더지 게임같아서 아무리 두드려 넣어도 어디선가 꾸준히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대체로 단점은 사회가 내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의지로 그것을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화장이 잘 먹지 않은 날은 하루종일 괴롭고, 뾰루지 하나가 나거나 눈이 조금만 부어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사진을 찍을 때 웃으면 볼살이 부각돼서 언젠가부턴 웃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남는 건 뾰루지나 볼살이 아닌, 화창한 날씨와 맑은 하늘, 아름다운 나무 등 행복하기 가장 좋은 조건 속에서도 이 모든 것들을 단지 남의 눈치 때문에 낭비하고 있는 우울한 내 얼굴 뿐이었다. 


 운동의 진짜 효능은 ‘살이 빠지는 것’ 혹은 ‘자기 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운동과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일의 효능은 ‘내가 (살이 찌든 빠지든) 내 몸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운동을 할 때의 나는 되게 못생겼다. 쌩얼에 상투 튼 곱슬 머리, 땀 범벅이 된 옷. 운동을 하다가 세트 막바지에 억지로 1~2번이라도 더 ‘땡기’려고 할 때는 혹시라도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미간이 똥구멍처럼 찌푸려진 채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꼴이 웃겨서 갑자기 힘이 쭉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내 얼굴이 싫지만은 않다. 아니 되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운동할 때의 내 모습은 천둥벌거숭이였던 시절 콧물을 먹으며 해가 지도록 마음에 든 놀이 기구에 달라붙어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나는 웃길 땐 배가 터져라 웃었고, 힘들 땐 다리를 벌리고 모래 위에 주저 앉았고, 뛸 땐 온몸으로 뛰었다. 


 아직까지 ‘우락부락’이 되려면 멀었지만, 나는 오히려 사회가 권유하는 ‘정상’에서 벗어나는 노정에서 지금까지의 그 어느 때보다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넌 참 눈이 예쁘네”라는 남의 칭찬보다도 등에 진 50kg짜리 바벨을 60kg으로 올려잡을 때의 쾌감이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위 걸그룹의 미용 몸무게라는 ‘46kg’에서 숫자 앞자리를 바꿔 끼우고, 여리여리한 몸매일 때 백화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던 결혼식용 원피스들이 ‘등빨’이 커지면서 무릎 위로 껑충 올라와 입을 수 없게 되고, 연애할 때 입었던 스키니진이나 핫팬츠들이 ‘벅지’가 커지면서 죄다 맞지 않게 되었지만 지금의 나는 정말 행복하다.


 나는 나의 존재가 다른 여성들에게 ‘저렇게 제멋대로, 다르게 살아도 되는구나’란 영감을 줄 날이 오길 고대한다. 일단 그러려면 백주대낮에 옷을 벗고 다닐수도 없는 노릇이니 옷을 입고도 좀 ‘우락부락’해져야 할텐데, 그것이 힘들 것 같아 고민이긴 하다.


 '그렇게 운동하다가 우락부락해지면 어떡할래?'라는 친숙한 질문. 이젠 이 질문에 대해 조금 대답의 방향을 바꿔볼까 생각 중에 있다. 


 "열심히 하면 여자도 얼마든지 우락부락해질 수 있어. 내 꿈은 여자 마동석이 돼서 결혼식장에 남편을 한쪽 어깨에 들쳐매고 입장하는 거야. 응원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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