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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냥덕 Mar 06. 2019

닭가슴살 먹으랬지 누가 치킨먹으래요

식단 만큼은 포기못하겠어요



 "회원님. 저번주 먹은 거 다 기록 해놨어요?" 

 "넵" 

 "닭가슴살도 하루에 한번 이상씩 잘 먹었고요?"  

 "...녜에"

 "어디보자...음? 3월 X일 토요일, 저녁밥 치-이킨?"

 '(뜨끔)'

 "그리고 이 날은 왜 닭가슴살 없어요?"

 "치, 치킨도...닭이잖아요"


 매주 월요일은 한주간의 식단을 보고하는 날이다. 그리고 내가 혼나는 날이다. 매주 잔소리를 듣는데 꾸지람 없이 넘어간 날이 한번도 없다. 


 운동에 취미를 붙이면서 어찌 술은 끊었어도 '더티(dirty)한 식단'은 도저히 끊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더티한 식단'이라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맛있는 것을 뜻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튀김, 라면, 파스타류를 비롯해 각종 과자들은 모두 더티한 녀석들이다. 


 날마다 주전부리하는 재미를 어찌 잊으리오. 원래도 먹는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기도 했지만, 외려 운동 시작하고 나서 주전부리가 몇배는 늘었다. 운동을 하면 그만큼 배가 금방 고파지기 때문이다.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학창 시절이 떠오를 정도였다. 술을 못 먹으니 일전에 한동안 취미 삼아 배워놓았던 각종 안주 요리들을 만들어 밤이면 탄산음료나 물과 함께 먹었다. 술의 칼로리가 수백kcal니까 그만큼은 '덜 더티'하겠지라고 위안하면서. 그래도 덜 혼나고 싶어서 마요네즈 소스와 함께 먹은 먹태구이는 '생선류', 맥앤치즈는 '유제품류' 등 식약처 식품 분류명 같은 모호한 이름으로 적어놓곤 했다.


 언제는 한번 사달이 났다. 주말에 먹은 야식에 시침떼고 '과자 한봉'이라고 애매하게 적어놓았는데, 선생님이 그게 무엇인지 캐물은 것이다. "무슨 과자예요?" "그냥...집에 있던 건데 기억은 잘 안나요" 바로 어제 먹은 건데 기억이 안나기는 개뿔. 엄마가 이X트에서 사온 베개만한 대용량 홈런볼 한봉지였다. 자기 전에 누워서 밀린 웹툰을 보면서 순식간에 해치운, 지금은 내 몸속 어딘가 떠돌면서 근육이 아닌 살덩이로 붙었을 그것. 


 "사진 있으면 보여줘봐요" 나는 입술을 깨물고 핸드폰 갤러리를 뒤졌다. 작은 쿠키 봉지같은 사진이 있으면 좋았을텐데, 하필 폰에 저장된 최근 과자 사진이 대빵 큰 홈런볼 사진밖에 없었다. 그것도 그냥 홈런볼을 찍은 사진이 아니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기 위해) 홈런볼을 소중히 품에 안고 찍은 셀카였다. 눈치라곤 북어 대가리만큼도 없는 과거의 나를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 선생님의 눈썹이 단번에 앵그리버드처럼 치켜올라갔다. 


 "이게 뭐예요" 

 "국민 간식 홈런볼..." 

 "누가 몰라서 물어요? 한번에 이걸 다먹은거예요? 이거 집에 몇개 있어요" 

 "한박스요..."


 한번 마트에 가서 장을 보면 뭐든지 한박스씩 사들이는 '큰 손'을 가진 엄마와 '큰 배'를 가진 나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으로 인해 그날 선생님은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하도 먹을 걸로 혼나니까 하루쯤 '치팅데이(cheating day·마음껏 먹는 날)'라고 생각하고 점심에 3명이서 돈가스집을 갔다. 사실 '하루쯤'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거의 일주일에 5일 정도가 치팅데이긴 했지만 말이다. 


 메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가 '무한 리필집'이라는 점이었다. 즉 점심 '돈가스'라고 적어두면 조금 혼나긴 하겠지만 마땅히 들어야 할 꾸지람만큼 혼나진 않을 것이다. 돈가스 5장이나 돈가스 1장이나 똑같은 ‘돈가스’니까. 즉 이런 곳까지 와서 1인분만 먹고 가면 손해보는 일이다. 이쯤되면 비싼 돈 내고 PT를 받고 식단을 보고하는 취지가 의심스러워지긴 하지만, 나는 합법적으로 돈가스를 배터지게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잔뜩 신나있었다.     


 느끼한 데미글라스소스를 끼얹어 도톰하게 썰어낸 일본식 돈가스는 입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달콤한 죄악감이란. 그날 여자 둘, 남자 하나 이렇게 셋이서 먹은 돈가스가 무려 11장이었는데, 그중 아마 절반은 내가 먹은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더티의 화신’이 되어가는 내게 선생님은 어느날 도저히 안되겠는지 자신의 폰을 꺼내 보여주었다. 전에 담당했던 어떤 여자 회원분의 식단 사진이었다. ‘더티의 화신’에 대적하는 ‘클린의 화신’. 사진 속 모든 식단이 하얀색 아니면 초록색, 즉 닭가슴살 시금치 아보카도 등이었다. 과자도 나처럼 ‘과자’라고 적는 게 아니라 과자 한 조각을 먹은 사진을 찍어놓았다. 젤리 한 개와 감자과자 한 조각을 먹었다면 젤리 한 개 든 손을 한번 찍고, 감자과자 한 조각 든 손을 한번 찍는 것이다. 만약 이분 방식대로라면 난 홈런볼 한 개 든 사진을 백번 찍었어야 되는 거다. 


 나는 그것을 한참 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대단하죠? 제가 맡은 분들 가운데서도 철저하게 지키는 분이긴 했는데 이분은 회사원이면서도 평소 체지방률 9%대 유지하는 분이예요” 가만있자. 나는 체지방률이 몇 프로더라. 일단 앞자리가 1이 아닌 두 자리수인 건 확실했다.


 물 맞은 강아지처럼 풀이 죽은 나는 집에 와서 폰 사진 갤러리를 쭉 훑어보았다. 파스타, 치킨, 튀김, 즉석 떡볶이, 치즈케이크 등 언제 봐도 탐스럽고 ‘더티’한 음식들이 가득하다. 마치 먹성 좋은 유튜버의 인스타 피드를 보는 것 같은 사진들. 


 나는 운동을 사랑하지만 음식들도 그만큼 사랑한다. 나는 하루 아침에 이것들을 모두 버리고 삼시 세끼 퍽퍽한 닭가슴살을 씹을 수 있을까? 눈물 젖은 닭가슴살 한번 뜯어보지 못한 사람이 ‘운동 덕후’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도 운동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지만 운동을 길게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극복’만큼이나 ‘타협’인 것 같다. 배에 ‘흡’ 숨을 채워넣고 머리 위로 바벨을 들어 올릴 때, 그립을 단단하게 붙잡아 공작새 날개 접듯 견갑을 펼쳤다 접았다 할 때 나는 행복감을 느낀다. 힘들다. 죽을 만큼 힘든데, 그 죽을 만큼 지친 근육 사이사이로 아드레날린이 번쩍번쩍 빛을 발한다. 머리는 아찔하고 숨이 멎을 것 같은데 정해진 횟수만큼 완벽한 자세로 동작을 만족스럽게 수행해내고 바벨을 땅에 내려놓을 때, 그 지치고 얼빠진 표정마저도 만족스럽다. 


 이렇게 즐거운 활동을 단지 식이 때문에 그만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한 동안 장에 탈이나는 바람에 식단에서 유제품, 밀가루를 팍 줄이면서 체지방률이 14~15%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몇 달 후 인바디를 쟀을 때 곧장 다시 앞자리 문패가 2로 바꿔 달렸다. 그런데 의외로 별 타격은 없었다. 눈으로 보는 내 몸이 더 커지고 내 손에 든 바벨이 더 무거워지고 동작엔 절도를 더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근력, 근육 증강을 위해선 일정량의 탄수화물, 단백질 섭취가 필수적인데 그 부분만은 ‘추가로’ 채워넣으려고 지금껏 노력 중이다. 운동 후에 단백질 보충제를 한스쿱씩 꼭 챙겨먹고, 하루에 닭가슴살 100~200g정도는 일반식에 플러스 알파로 섭취한지 근 1년이 넘어간다. 그렇게 해서 황금똥을 만들었는지 근육이 생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단은 내 즐거운 ‘더티’ 라이프를 지켜갈 수 있다는 점은 더없이 만족스럽다.


 자신의 목적에 맞는 운동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더 많은 근육과 근력이다. 많은 보디빌딩 선수들 역시 ‘시즌’ ‘비시즌’으로 나누어 식이를 조절한다. 식이에 있어 절도를 지키는 ‘극기’는 본받을만한 것이지만 내게 가장 행복한 삶의 방법이 무엇일지에 따라 ‘클린한 식단’을 거의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그것마저도 운동을 아예 안하고 운동을 그만두는 것보단 훨씬 나을테다.


 웬만한 운동 관련 조언들은 다 겸허하게 받아들였지만, 식단과 관련해서만큼은 비장하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행복한 삶, 지속가능한 운동 라이프를 위해.


 “쌤. 이것 만큼은 물러설 수 없습니다. 홈런볼과 치느님은 내 삶의 이유예요. 대신 유산소 30분씩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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