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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냥덕 Mar 14. 2019

Exerciser's High

음악과 운동의 상관관계



 스크린에 우리의 히어로 슈퍼맨이 등장한다. “빰빠밤~빠바밤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슈퍼맨의 등장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머릿 속에 배경 음악이 자동재생될 것이다. 만약 이 장면에서 음악이 없으면 얼마나 싱거울까?




 나는 히어로가 아니지만 음악은 내 삶의 다양한 장면들과 닿아있다.


 대학 시절 2년정도 스쿠터를 타고 다녔다. 스쿠터긴 한데 125cc인데다가 차체 무게가 150kg을 넘고 덩치가 제법 커서 아기자기 귀여운 녀석은 아니었다. 검은색 딱정벌레같이 생겼기 때문에 줄여서 '검딱(혹은 껌딱)'이라고 불렀다.


 평생 두 바퀴에 석유 먹는 탈 것을 소유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내가 스쿠터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동생이었다.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엄마 몰래 스쿠터를 구입했는데, 뒷자리에 한번 타보자마자 승차감에 반했다. 사방이 뚫려 위태로운 만큼 짜릿했다. 시속 80~90km가 넘는 속도감을 유리벽 없이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니. ‘뒷자리에 탔는데도 이렇게 좋은데 내가 직접 핸들을 잡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얼마 뒤 모아놓았던 용돈으로 동생 것과 같은 기종의 스쿠터를 질렀다. 


 처음엔 과외, 마실용으로 동네만 오가다가 나중엔 충정로 사무실에서 강남에 있는 집까지도 오갔다. 라르크앙시엘의 'Driver's High'를 들으며 하늘과 강물이 검푸른색으로 경계없이 이어진 새벽 3~4시의 반포대교를 건너는 기분이란. 


 시속 100km정도로 강 위를 달리다가 머리를 창밖으로 내밀어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쯤되면 바람이 ‘휭’ 불지 않고 귓가에 철사다발처럼 촥촥대며 내리꽂힌다. 바람에 멜로디가 흩어지고 엔진 소리에 묻히도록 혼자 목청을 높인다. 가끔 열창을 하다가 입에서 튄 침이 얼굴을 향해 시속 Xkm의 속도로 돌진하기도 했지만 듣는 사람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었으니 상관 없었다. 그야말로 물아일체, Driver's High다. 나의 스쿠터 라이프는 대단치 않은 계기로 끝나긴 했지만, 그 무렵의 기억은 상당히 매력적인 장면으로 남아있다. 




 음악은 내 감정을 증폭시키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인 것 같은 고양감을 느끼게 해준다. 


 처음으로 내 워크맨을 가졌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나는 공부를 하건, 길거리를 걷건 항상 그 상황과 내 감정에 맞는 음악에 집착해왔다. 만약 내가 내 비루한 몸을 드러내 오픈 숄더 드레스를 입을 만큼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쯤 탱고를 배우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춤이 좋아서가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다. 내게 있어 고등학교 시절 밤 늦은 하굣길 기억은 radiohead와 떼놓을 수 없고, 스쿠터에 대한 기억은 라이딩 플레이리스트와 떼놓을 수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비오는 날 늦은 야자를 끝마치고 집을 향해 걷던 중 테니스코트 옆에서 손바닥만한 죽은 아기고양이를 발견했다. 그때 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운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날그날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데 굉장히 골몰하는 타입이다. 


 그날의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곡들을 골라내어 듣는다. 벤치프레스를 하는데 그날 컨디션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5kg정도씩 더 끼워볼까 싶을 땐 올림픽 챔피언 입장 브금같은 Europe의 The Final Countdown을 재생한다. 역도 세계 신기록이라도 세워야될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고작 20~30kg으로 낑낑대고 있자니 코끝이 간질간질해지지만 누가 뭐라고 하겠나. 사이클을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타고 싶을 땐 앉은 자리에서 자전거 앞바퀴를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릴 듯한 기세의 스피드 메탈을 듣고, 오늘 따라 왠지 웨이트 존의 한 마리 거친 늑대가 되고 싶은 기분일 땐 묵중한 랩이나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얼터락이나 헤비메탈류를 듣는다. 


(책임지고 자전거 앞바퀴 날려드립니다)



 대체로 운동할 땐 텐션을 높이기 위해 시끄럽고 빠른 템포의 음악들을 선호하긴 하지만, 늘상 꽝꽝대는 음악들만 플레이리스트에 올라 있는 건 아니다. 쿨다운(cool down‧웜업의 반대개념, 운동이 끝나고 난 뒤 간단한 정리 동작)을 할 때나 스트레칭을 할 땐 의도적으로 호흡을 늦추기 위해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일전에 한번 운동할 때의 텐션 그대로 쿨다운 동작을 하다가 목을 한번 삐끗하고 난 뒤론 더 신경써서 호흡을 두배로 천천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내가 선곡한 음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는 활동’이란 점은 아마 웨이트 트레이닝이 나에게 맞았던 이유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대학교 때 손님이 없어서 내가 마음대로 음악을 선곡하고 놀 수 있다는 이유로 시급4000원짜리 동네 호프(겸 bar) 주말 알바를 장기간 한 경험이 있다. 덕분에 교대 교수님들은 portishead나 yael naim의 노래를 들으며 배합이 수상한 블랙러시안을 마시곤 했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운동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들으면서 할 수 있다. 그것도 내 (낡은) 취향인 때려부수는 비트의 음악들을! 사실 이쯤되면 음악을 듣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건지, 운동을 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확실한 것은 동독 출신 마초 밴드 Rammstein의 때려부수는 비트를 버스에 앉아서 평온하게 들을 때와 수십kg 바벨을 지고서 전신을 벌겋게 하며 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점이다. 쾅쾅대는 드럼 소리와 묵중한 베이스가 심장 바닥을 둥둥 때린다. 스탠딩석에서 빤스벗고 관람하는 라이브와 녹음된 음원 정도의 차이랄까. 음악과 운동을 둘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운동하는 시간이 각별히 소중한 이유다.


(내 운동 단골 플레이리스트인 metallica와 rammstein. 사실 고등학교 이후로 취향이 많이 바뀌어서 근 10년정도는 메탈보단 트립합이나 브릿팝쪽을 들었지만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중2병(핫뮤직병)이 도지고 있다)




 가끔은 운동이 너무 잘되거나 그날 기분이 너무 좋아서 흥이 흘러 넘칠 때면 벤치에 앉아 숫제 입을 뻐끔거리며 노래 소절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가끔 너무 심취하면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가 나오거나 덤벨을 들어올릴 때 어깨가 같이 춤추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 말고도 헬스장엔 종종 비슷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귀엔 이어팟을 끼고 최고 수축 지점에서 바벨을 든 채 서있는데, 입술을 ‘후’ 모양이 아닌 ‘쉿 (몽환의 숲~)’ ‘널 (사랑해~)’ 등 기묘한 모양으로 벌리고 있는 사람들. 혹은 괜시리 목이 낙타처럼 앞뒤로 리듬을 타며 덤벨이 오가는 주기가 엇박인 사람들. 


 그럴 땐 애써 못본채 하며 얼굴을 돌려주는 것이 상책이다. 혼자만이 무대의 주인공이자, 관객인 그 몰입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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