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망치는 방식이 있다. 자식이 잘되면,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프라이드로 여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을 잘 출세시키는 것이 대부분 부모의 인생 목표이기도 했다.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 보다는, 자식을 먹이고 키우는 일이었다. 그것마저도 등골이 휠 정도로 힘들었고, 그래서 자식은 곧 인생의 증명이었다. 자식이 잘되면, 그보다 잘 산 삶이 없다고 믿기도 했다.
자식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사실 나쁠 게 없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좋은 사람으로 잘 크고, 자기 앞가림 잘하며, 자기가 원하는 삶을 뚜벅뚜벅 살아가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부모에게는 두번째 의무가 있다. 그것은 자녀와 자신을 분리하는 일이다. 이건 동시에 자식의 의무이기도 하다. 부모는 품에서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고, 자식은 부모로부터 떠나는 연습을 해야한다.
<예언자>를 쓴 시인 칼릴 지브란은 부모를 활로, 자식을 화살로 비유했다. 화살은 혼자 떠나지 못한다. 자식이 떠나려면, 부모가 놔주어야 한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이의 연인이었던 영범의 어머니는 활이 아니라 화살통이길 자처한다. 그래서 자기 화살통에 아들과 며느리까지 집어넣어 살고 싶어한다. 자기가 원치 않는 화살은 넣을 생각이 없다. 이것이 비극을 만든다. 박영범은 나름대로 착한 아들이었고, 또 좋은 연인이고 싶어했다. 그러나 착한 아들도, 좋은 연인도, 어떻게 보면 그 부모와의 합작이 필요하다.
금명이가 좋은 딸일 수 있는 이유는, 좋은 부모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명이의 부모는 딸을 프라이드로 여기면서 사랑하지만, 금명이를 위해 기꺼이 '활'이 되기를 자처한다. 그래서 금명이라는 화살을 멀리 쏘아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보낸다. 어떻게 보면, 서로를 모두 '살리는' 사랑과, 서로를 모두 '죽이는'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인 셈이다. 그런데 그 종이 한장 차이가 사랑하는 서로의 삶을 살리거나 죽인다.
사랑이란 참으로 어려운 합작품이다. 부모만 잘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자식만 잘해서 될 일도 아니다. 연인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 합작품을 잘 만들어내는 건 참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 가운데 하나인 건 틀림없다. 원래 가치 있는 일들은 대부분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한 뿐인 삶에서, 이 어려운 사랑을 지혜롭게 잘 해내길 바라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 박영범 모친 역 강명주 배우의 명연기를 볼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사진은 드라마 #폭싹속았수다 캡쳐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