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쿠팡 배달을 다녔던 나의 pt 선생님

by 정지우

예전에 나의 PT 선생님은 새벽마다 쿠팡 배달을 한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PT 수요가 크게 줄었는데, 결혼하여 아이까지 생긴 입장이라 추가적인 일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침과 저녁에는 직장인들의 PT를 해주고, 새벽에는 쿠팡을 하면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그러면 잠은 언제 자냐고 물었는데, 오후에 피티샵 관리를 하는 틈틈이 잠을 잔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그는 한 대학의 체육학과를 졸업했는데,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등 몇 개의 부상으로 체육 관련된 일은 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 뒤로 자동차 딜러, 보험 판매 등 그의 말에 따르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 덕분에 전혀 모르던 자동차 세계도 많이 알게 되었고, 실비 보험도 다시 드는 등 여러 정보들을 얻기도 했다. 그는 나보다 몇 살 어렸지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당시의 내게는 여러모로 선생님이었던 셈이다.

그는 자신이 단련된 몸으로 남들보다 쿠팡 배달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건당 1000원인가를 받는데, 그걸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2, 3배 해서 자신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휴직을 한 상태였고, 가장이 된 그는 그렇게 밤낮없이 일하며 가정 경제를 책임지는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객인 내 앞에서만 그랬는지 몰라도, 항상 밝고 힘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나는 아이 돌 때 그에게 내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그래도 몸 조심 해야한다고, 젊은 날 너무 무리하면 골병 들 수 있으니 잠은 잘 자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아직 젊어서 그런지 덜 자도 괜찮은 것 같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오늘 예정된 PT를 할 수 없겠다고 연락이 왔다. 교통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깜빡 존 사이에 다른 차를 박아버렸는데, 외제차를 박아서 여러모로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 그는 내게 교통사고 합의금 같은 것도 물어보면서, 몇 백 만원이 나가는 게 맞느냐 등을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교통사고 경험이 많은 변호사한테 물어보며 문제를 어떻게 해야하나 열심히 고민하기도 했다. 결론은 어쩔 수 없게도 막심한 손해를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의 1년 정도 함께 PT를 했던 그는 나중에 전세사기 피해도 입게 된다. 오피스텔 주인이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면서 행패를 부리게 되는데, 나는 그 때 그냥 PT 몇 번 더 해달라면서, 거의 헐값으로 그를 도와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나중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문제가 완전히 끝난 뒤에 그는 꼭 자기가 밥 한 번 사겠다면서, 변호사님 연락드릴게요, 하고 전화로 이야기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딱히 연락이 이어지진 않았다. 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둘째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잘 크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그와 1년 정도 만나면서,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보다 훨씬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고,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삶을 꾸려나가는 그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많이 일으켜 세웠다. 그에 비하면,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쓴답시고 10여년을 보냈고, 뒤늦게 시작한 수험생활에, 사람 구실하기 시작한 게 겨우 삼십대 중반은 넘어서였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 앞에서, 나의 고민이나 힘겨움은 우스운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더 열심히 살 마음을 먹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종종 나는 삶이 힘들다는 둥 괴롭다는 둥 하는 생각이 들면, 그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아마 스스로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건 아마 그처럼 열심히 운동을 안 해서, 체력도 별로고, 근력도 약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조금 더 운동도 열심히 해서, 덜 징징거리고, 더 멋진 어른으로 단단하게 자리잡아갈 수 있길 바라게 된다. 내 안에 있는 게으름을 매일 털어내야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은 누구나 기댈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