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라면, 더욱이 꼭 읽어주세요.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랑받기를 갈구한다. 아가들이 도대체 왜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지 알지 못하겠다가도 엄마의 포옹 한 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방긋 웃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할 노릇이다. 밸런타인데이 날 서툴게 만든 초콜릿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처음으로 건네었을 때, 그 아이의 '고마워' 한마디에 어지럽던 세상이 차분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참, 이상하지만 예쁘고, 진부한 듯 하지만 언제나 새롭다.
나에게 있어 결혼은 '무조건' 사랑의 결정체여야만 했다. 사랑이 밥 먹여줄 줄 알았다. 불타오르는 사랑만이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었다. 어쩌면 나는 내심, 나이가 차서, 조건이 잘 맞아서, '취집'을 위해서 결혼을 택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꼭, 사랑만이 주가 되는 결혼을 하리라, 어릴 적부터 다짐해왔었다. 그래서 지금의 신랑과 만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도 그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남자만큼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 또한 그 이상으로 사랑하고 존경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때는 이 근자감이 우리가 운명임을 알려주는 신비로운 힘인 듯했다. 그 무엇도 우리의 사랑을 변질시킬 수 없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프러포즈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를 처음 만난 그 날, 내가 평생을 간직해온 결혼과 사랑에 대한 신념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서로의 공통점에 끌리고, 어떤 이들은 서로의 다름이 선사하는 신선함에 빠진다. 나와 나의 그는 후자였지만, 점차 우리가 감추고 있던 아픈 상처들이 닮아있음을 알아가며 더욱 끈끈해졌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비슷한 경험들을 겪어냈고,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참 많이 닮은 미래의 가족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떡볶이와 치즈의 궁합처럼, 우리는 우리의 다름과 같음이 감사하고 소중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나에게는 쓰라린 가족사가 있고, '아빠'라는 단어는 여전히 나에게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이다. 그 또한 그랬다. 그에게도 아버지는 편하지 못한 존재였고, 가족이 가족답지 못하게 깨져버리는 순간들을 살아냈다. 사실 내 욕심이었지만, 이기적 이게도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화목한 가정을 가진 남자를 만나 그 가족에서 사랑받는 며느리 이상으로 예쁨 받는 막내딸 같은 존재가 되기를 꿈꿨다. 그래서 처음 그에게 나의 가족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가 머뭇거리며 "사실 있잖아, 나도..."라는 말을 하는 그 순간, 조금 속상했다. 하지만 그 속상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 편으로는,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그와, 우리 엄마와 같은 눈물을 흘려보신 그의 어머니와 그 누구보다 살갑게 안기고 안아주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이 보였다.
그의 어머니를 처음 뵙기로 한 날. 서울과 뉴욕 외의 배경은 몹시 낯설었던 나는 여행을 가는 것처럼 반은 한 껏 들뜨고, 반은 걱정 가득한 마음으로 그의 고향으로 갔다. 한 손에는 직접 만든 마카롱 한가득,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미리 예약 주문해두었던 커다란 꽃상자를 안고. 세 시간 가까이를 달려 도착한 약속 장소. 내리자마자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그곳은 바로 어느'간장게장 집.' 주말이라 가족단위로 찾는 사람들이 많아 서로의 말소리도 들을 수 없는 식당. 미래의 며느리를 만나는 자리가 대단한 자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편하게 식사하며 대화할 수 있는 자리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단순히 본인이 드시고 싶으신 간장게장을 메뉴로 고르셨다. (사실 그의 전 여자 친구를 만나보실 때,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한정식집에 갔었다는 말을 그가 전했었기 때문에, 나는 더 당황스러웠다.)
차에서 내려 그가 그의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저기 멀리서 선글라스를 쓰시고 편안한 티셔츠를 입으신 평범한 아주머니 한분이 통화를 하며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나의 미래의 시어머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웃으며 꾸벅 인사를 드렸다. 아니, 드리려고 했었다. 내 입에서 "안녕하세"까지 나왔는데도, 그녀는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옆에 있던 그에게 찰싹 붙어 서며, "아들 어서 와, 식당에 사람이 엄청 많네! 누나도 같이 왔어, 조카랑."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투명인간이었나 보다. 순간 당황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그를 바라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웬걸.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웃고 있었다. 그에게도 나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화기애애한 모자간의 대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보았다. "어, 안녕." 그게 그녀의 인사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선물들을 건넸고,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급하게 식당으로 들어가셨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나만의 혼돈의 카오스에 빠져 '멘붕'상태가 되었다. 식당 안에는 미래의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어린 그의 조카가 이미 식사를 하고 계셨다. 조카가 어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나는 나를 다독였다.
첫 만남, 간장게장. 인사 무시. 먼저 식사. 이 상황에 대한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원래 내가 아는 우리 엄마, 그리고 내 전 남자 친구들의 어머님들을 제외한 엄마들은 다 이런가? 몹시 궁금했다. 나는 간장게장을 차마 들고 뜯을 수가 없어서 맨 밥과 멸치만 먹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먹니, 많이 먹으렴." 그녀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걸어주었다.
"잘 먹고 있어요 어머니, 식사 맛있게 하세요." 나는 최대한 밝고 예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아들은..."
시작이었다. 본격적인 아들 자랑. 그가 유아기 때 부린 재롱의 위대함부터, 그의 높은 학력, 대단한 취업과정을 위인전처럼 읊으셨다. 피날레로는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가 대한민국에 손꼽는 배우가 된 것이 그의 공이라 하셨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과장된 리액션으로 그녀의 흥을 유지시켜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알았다. 그녀가 세상 대단하신 그녀의 아들이자 나의 애인의 자랑을 한 시간 넘게 하시는 동안, 나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그의 어디를 사랑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 끝났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터졌다. 엉엉 우는 나를 보며 그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의 "왜 그래?" 한마디는 마치 화살처럼 내 왼쪽 가슴을 쑤셨다.
참았던 억울함과 섭섭함을 호소하며, 그의 어머니와 누나와 조카와 함께 한 그 시간 동안 평생 처음 느껴본 뼈저리게 외롭고 초라했던 나의 감정들을 그에게 전했다. 내게 무시와 천대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그녀의 수많은 발언들이 나에게 얼마나 아팠는지 이야기했다. (차마, 그 말들은 이 글에 적지 않았다. 다시 생각하면 할수록 눈물만 흐르기에.) 그가 알아주길 바랬다. 그저 토닥여주기를 바랐다. 안아주길 바랬다. 아니, 당연히 그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야, 네가 오해하는 거야. 우리 엄만 안 그래. 다른 엄마들 다 그럴 수 있어도 우리 엄만 그런 사람 아니야. 네가 비뚤게 보는 거야."
나를 두 번 죽인 그 말을, 설마 했던 그가 했다. 화장이 다 번지도록 울고 있는 나를 두고도 그는, 내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1초도 하지 않고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내편처럼 느껴졌던 그가 그랬다. 다른 남자들과는 무조건 다를 거라 믿었던 나의 짝꿍이, 착한 남자 친구이자 예비 신랑이기 이전에 그보다 더 착한 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의 입장은 이러했다. 물론, 그가 말했던 대로 내가 그의 어머니를 오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뿐더러, 자신이 중간에서 '중간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서 그녀를 그저 '좋은 시어머니'로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고. 그게 나에게 이렇게 큰 상처로, 충격으로 남을 줄 몰랐다고. 결혼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매일같이 시어머니에게 발목을 잡히고 도망가려 하는 악몽을 꿀 정도로 힘든 시댁과의 전쟁의 시작이 되는 말일 줄은, 정말 몰랐다고.
나의 그와 같이 '중간 역할'을 잘하리라 하는 포부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만 안 그래." 이 말은 절대 하지 마시라고. 당신에게는 '우리 엄마' 이겠지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악덕 시어머니'가 될지, '따뜻한 시어머니'가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한번 잘못 끼워진 단추는, 점점 악순환을 부르고, 시댁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며느리는 어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처럼, 마음의 병과의 전쟁을 또 한 번 끈질기게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Preview 다음 이야기>
내가 선택한 사랑이지만, 다른 옵션들은 고른 적이 없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