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읽었으면 하는 글
기간제교사이자 담임교사로서 처음 일을 했던 학교에서의 3년 동안은 하루도 출근하기 싫은 날이 없을 정도로 정.말.로 행복했다. (지금은 더 미화돼서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매일의 출근이 설렜다!) 물론 모든 날이 눈부시게 빛났던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와 학부모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도 하고 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생각되어 눈물지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수업 시간 교단에서 바라보는 아이들의 웃음은 너무 맑고 빛나서 가끔은 내 눈이 카메라 셔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나 혼자 보기 아깝고, 또 그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지나가버리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힘이 들 때, 그리고 가끔은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감을 느낄 때 두고두고 보며 저 예쁜 마음을, 귀여운 행동들을 잊지 않고 싶어서.
그런데 어느 순간 정말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교를 옮기면서 기간제교사로서 느끼는 불합리한 모습들을 너무 많이 마주했고, 매일 힘들게 버티는 교사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편한 학교, 좋은 아이들만 만나서 이 일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5일 중 4일이 힘들어도 보람 있는 하루가 있다면 그 하루 덕분에 버티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이면 그냥 다른 사람들은 계약직일 뿐인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문득 이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아직은 좋다 이 일이. 그래서 교단일기라고까지 하기는 부끄럽지만 또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손발이 오그라들어할 것 같아 신경 쓰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안 읽을 것 같단 생각에 한편으로는 맘이 편해진다! 아무도 안 읽었으면 좋겠다 정말!
# 1. 상담할 때면 눈물을 보이시는 어머니들
어쩌다 보니 그동안 남고에서만 일을 했는데 아들 둔 어머니들은 그렇게 눈물이 많으시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들 엄마가 되는 건지, 아들의 엄마가 되면 눈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지만 아들만 있는 어머니들, 특히 삼형제가 있는 어머니들은 상담할 때면 100%로 눈물을 흘리신다. 공감능력 200%에 눈물 많기로 유명한 나는 그 눈물을 보면 참기가 참 힘들다. 오늘도 한 어머니가 상담하러 오시자마자 눈이 그렁그렁하셨다. 우리반에서 가장 속 썩이는 아이 중 하나인데 (그래봤자 졸다가 온라인 수업 출석 대답 못해서 미인정결과 처리 되고, 지각 몇 번 한 게 다다. 누굴 때리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닌데. )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제발 학교 좀 갔으면 좋겠다고. 매일 뒤돌아서면 졸고 있는 아이를 볼 때마다 속이 터진다며. 진짜 코로나시대 어머니들이 얼마나 힘든지 이번에 상담하면서 너무 느꼈다. 매일 삼시세끼 차려주는 것도, 하루종일 집에서 같이 지내는 것도, 필기도 하지 않고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고 다들 깊은 한숨을 쉬셨다. 진짜 그렇게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게 키우는 아들들 잘 키우는 데 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 어머니를 만나면 늘 어깨가 무거워진다!
# 2.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
지난달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었다. 우리반 누구의 할아버지라며 말씀드릴 게 있어 전화했다고. 할아버지께 전화를 받은 건 처음이라서 당황했는데 아이의 상황을 자세하게 얘기해 주셨다. 사실 이 지역 아이들은 다 잘 산다고 생각해서 그런 면에서는 크게 신경을 많이 안 썼는데 여러모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모님의 케어를 많이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신경이 쓰여서 내게 직접 전화를 했다며 거듭 부탁을 하셨다. 사실 너무 예쁘고 착한 아이라서, 열심히 하는데 성적이 안 올라 속상하게 생각했던 아이라서 안 그래도 더 잘 챙겨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는데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나니 마음이 더 쓰였다. 그리고 사실 이 전화를 받은 주가 너무 힘들어서 진짜 버티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경비일 하시면서 버시는 돈으로 독서실비를 내주고 있다는 말에 결국 그 주에 참았던 모든 게 터져버려 교무실에서 눈물이 났다. 마침 전화 끊자마자 장학생 추천 쪽지가 왔다. 바로 추천했고 다행히 되어서 지난주에 장학증서도 아이에게 전달했다. 어제 아이와 상담하는데 마지막에 선생님한테 궁금한 거나 부탁할 거 없냐고 물어보니까 장학금 언제쯤 들어오냐고 물어본다. (귀여워 ㅠㅠ) 그래서 쌤도 아직 모르겠다고 곧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면서 장학금 들어오면 뭐 할 거냐고 했더니 (솔직히 독서실비 할 거다와 같은 감동적인 대답을 기대했는데) 자기 생일 선물로 스마트워치 살 거란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다. 그리고 퇴근하는데 할아버지께서 또 전화를 주셨다. 본인 손자에게 장학금을 주어 너무 고맙다고, 앞으로도 격려 많이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또 눈물이 나려 했지만 뿌듯함에 웃음이 났다. 그래 이거지! 이래서 하는 거지 이 일을!
# 3. 군대 갈 때마다 전화 오는 첫 담임 제자들
올해 21살이 된 첫 제자들이 그렇게 군대 간다고 연락이 온다. 군대 갈 때가 되어 철이 든 건지, 그냥 군대 갈 때가 되면 나같은 사람한테까지 그 소식을 알리고 싶은 건지 그 심리는 잘 모르겠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 오늘도 한 명은 곧 휴가 나간다고, 한 명은 다음 달에, 또 다른 한 명은 그다음 달에 입대한다고 연락이 왔다. 자꾸 입대하기 전에 내 차를 타고 놀러를 가자고 해서 대체 얘들은 내가 지들 친구인 줄 아나 어이가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냥 꼰대같은 교사말고 이런 교사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 4. 약속을 지키는 어른, 함부로 말하지 않는 교사
곧 군대 간다고 오늘 연락 온 제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하던 아인데 그 당시에 맨날 알바 힘들다고 징징대서 쌤이 한 번 가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아이는 반신반의했는데 약속을 지키는 어른이 되고 싶어 얼마 후 엄마 아빠랑 그 아이가 일하는 감자탕집으로 진짜 갔었다. 학교에서는 천방지축인 아이가 나름 유니폼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 또 새롭더라! 맛있게 먹고 일어나는데 우리 아빠가 고생한다고 만원을 쥐어줬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좋았는지 학교 와서도 계속 말하고 이제 진짜 지각도 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다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해서 그 당시에는 그냥 돈이 그렇게 좋은가보다 생각했었다. 근데 오늘도 전화를 해서 3년도 더 된 그 이야기를 또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아이라 돈을 떠나 그 기억이 강하게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엄마 아빠한테도 그 애한테 연락이 왔었다고 얘기했더니 귀엽다고 그래서 그 애는 지금 어느 대학에 다니냐고 뭐하냐고 물었다. 하여튼 어른들이란!! 여전히 그때처럼 알바하고 여자친구 만나고 있다고 했더니 엄마가 원래 그런 애들이 나중엔 더 잘 살 거라고 해서 같이 웃었다.
사실 2학기 되면서 크고 작은 일이 진짜 많았어서 기록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교사라는 직업이 여러 아이들을 한 해동안 책임져야 하는 일임에도 내가 이 아이들에게 영향력이 있기는 한 걸까 무력감을 느끼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선생님도 드시라며 작은 초콜릿을 나누는 아이의 수줍은 미소가, 선생님 많이 피곤하시냐며 눈이 빨갛다고 하는 아이의 걱정스러운 그 눈빛이 오늘도 나를 교사로서 보람있게 한다.
2021년 9월 10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