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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선생 Feb 11. 2023

[교단일기] 쿨하게 헤어지자 우리!

나 어렸을 적 한참 동화전집 과학전집 등이 유행해서 그런 책이 없는 집이 없었다. 방문판매원들은 이런 책은 아이들의 성장에 절대 없으면 안 될 신전처럼 홍보했고 아이가 뒤쳐지길 바라지 않는 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비싼 그 책들을 다 구입했다.

우리 집에 있던 그 많은 책 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건 카세프 테이프가 같이 내장된 동화전집이었다. 각 동화의 오디오가 테이프에 녹음되어 있어서 엄마는 주방에서 할 일을 하고 나는 엄마가 틀어준 동화를 듣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해서 매일 듣던 건 인어공주.

"그래서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답니다."로 끝나는 그 대목에서 나는 매번 눈물을 흘렸다.

"엄마 인어공주가 너무 불쌍해."​

아직도 엄마는 그때 얘기를 하며 어린애가 슬픈 걸 너무 좋아해서 우울한 아이로 자랄까 봐 엄청 걱정했다고 이야기한다. 감수성이 남달랐던 건지, 아니면 전생에 인어공주라도 됐던 건지 유독 이별에 약하고 눈물이 많았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이 됐는데도 헤어짐은 늘 어렵다. 그래서인지 매번 학교를 옮길 때도, 반 아이들을 올려 보낼 때도 눈물이 나려 한다. 어렸을 땐 애들 앞에서 울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어른이 아이들 앞에서 우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걸 잘 알므로 잘 참는다. 그래서 올해도 아이들과 쿨하게 이별하자고!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1 학급앨범 만들기

올해(2021년)가 세 번째 담임인데 나름 나만의 전통으로 학기말에는 학급 앨범을 제작했다. 솔직히 애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지만 결국은 내 욕심이다. 애들은 아마 받아서 한 번 보고 집구석에 처박아 둘 게 분명하다! 그래도 가끔 꺼내보면 아 맞다 이랬었지 생각나고 웃음이 나서 좋더라.


그래서 올해도 만들어야지 하고 두 달 전부터 투두리스트에 적어놓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새벽 2시까지 작업해서 끝냈다. 종업식 전에 도착하려면 이제는 발송을 해야 하는 날에도 계속 작업 중으로 떴다. 그니까 미루지 말고 진작 해놨어야지...! 후회를 하며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배송이 불안하면 찾으러 오라고... 다행히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직접 가서 찾아왔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고 맨 앞장에 붙였다. 매번 편지 쓰는 것도, 수작업 노동을 하는 것도 쉽진 않지만 그래도 애들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어 좋다. 한 명이라도 이 편지를 받고 조금은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게 아닐까!

#.2 ​자퇴하려는 아이들

한 해에 한 명씩은 꼭 자퇴하려는 아이들이 있다. 첫 담임일 때는 내 담임 사전에 절대 자퇴생은 없어야 돼!! 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내 욕심이고, 정규교육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고지식한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땐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자퇴하겠다는 아이를 점심시간에 데리고 나가서 떡볶이를 사 먹이며 한참 얘기하며 달랬다. 그래도 인생을 10년은 더 산 어른으로서 조언해 줬다. 후회하는 선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다행히 아이가 잘 이해해 줬고 그 이후로 자퇴 없이 무사히 졸업했었다. 솔직히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다. 그 아이가 자퇴했으면 또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그래도 그냥 한 번뿐인 시기, 고등학교에서 평범하게 아이들과 보내는 게 가장 좋지 않나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두 번째 해 담임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생각만큼 성적이 안 나오고 자기보다 잘하는 아이들이 많으니 지는 걸 못 견디겠어서 자퇴를 하고 싶다 했다. 솔직히 이런 아이들은 투정인 경우가 많다. 진짜 자퇴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자기 힘든 걸 알아달라는 심정. 아이의 태도에 그냥 네 맘대로 하라고 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잘 참고 달래서 넘겼는데 그다음 해에 작년 담임했던 아이들 중 엉뚱한 아이가 갑자기 자퇴를 해버렸다. 너무 착하고 예뻤던 아인데 전 학년 담임인 나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가버려서 솔직히 서운했다. 그래도 많이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 테니 응원해 주었고 그래도 잘 지내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며 얼마 전에도 연락이 왔다.

그래 정답은 없는 거니까! 네 선택을 존중할게! 그 속에서 너만 배우는 것들이 있을 테니!​

올해는 무사히 27명을 잘 올려 보내나 했더니 종업식을 하루 앞두고 학부모 한 분에게 문자가 왔다. 본인 아이가 내일 자퇴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이런저런 일과 반 아이들과의 마찰로 미인정결석을 하던 아이였고 워낙 성격이 소극적이고 마음이 여린 아이라서 결국은 이 상황을 못 견디는 것 같았다. 솔직히 그 문자를 받고 화가 났다. 물론 그 결정을 내릴 때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겠지만 자퇴를 고민했으면 상담도 하고 충분히 고려할 수 있게 담임인 내게 언질이라도 줬어야 하는데 학교 자퇴가 무슨 인터넷 사이트 회원 탈퇴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고 당장 내일 자퇴하겠다는 태도가 좀 그랬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해 아이와 어머니와도 충분히 얘기를 나눴다. 진짜 당장 내일이면 모든 게 끝인 상황에서 담임업무는 정말 끝까지 끝이 없구나 느꼈다. 나름 아이랑 충분히 얘기를 잘 나눴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종업식날 안 나왔다. 자꾸 너무 마음 쓰지 말자고 상처받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결론은 갑자기 근처 자사고에 티오가 나서 거기로 전학하는 것으로 됐다. 그 모든 결정을 내리는 데 담임인 내가 배제되었다는 게 인간적으로 서운하지만 그래도 자퇴하는 것보다야 다른 학교 가서 잘 적응하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해서 잘됐다고 생각했다. 다만 친구가 그 아이밖에 없었던 또 다른 우리 반 아이가 마음에 걸리지만 잘 적응하겠지...! 아이를 믿어봐야겠다. 그래도 마지막날 학교를 안 온 게 맘에 걸렸는지 그날 아이로부터 저녁 문자가 왔다. 그래 우리 각자의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만나자!

#.3 마지막 인사

맨 처음 아이들을 만날 때 인사하는 것만큼이나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보낼 때 인사하는 건 참 어렵다! 뭔가 멋진 말을 하며 보내주고 싶은데 아이들 앞에서 그런 말들을 하는 게 아직도 쑥스럽고 뭐 그렇다. 교과서 배부하는 게 늦어져서 마지막 이야기를 충분히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안 됐고 마지막 사진도 못 찍었다. 근데 그래서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정말 아무렇지 않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기분도 묘하고 또 결국 눈물이 나더라. 다행히 마지막 아이까지 교실을 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 터졌다. 다행이야 아무도 안 봐서....​

선생님은 이제 다른 학교 가게 됐다고 우리 쿨하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소란스럽던 아이들이 당황해하면서 왜 가냐고 어디 가냐고 난리들이다. 진짜 말 안 들었고 나를 정말 귀찮아한다고 느낀 아이였는데

"쌤 왜 찍먹하고 가세요?"라고 하더라. (요즘 아이들의 어휘란.... 휴) 당황해서 미안! 하고 말았는데 "선생님 사랑합니다"하고 교실을 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쭈뼛쭈뼛 다가와 한 명씩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나가는데 마음이 찡했다. 남자아이들만 가르쳤어서 진짜 자기표현을 잘 안 하고 무슨 생각들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한 적이 많았는데 그런 아이들이 저런 표정으로 이렇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표현을 한 건지 알기에 마음이 더 그랬다. 그래서 아이들 나가고 교실 정리하며 한참을 울었다. ​


정교사가 되어서 나가는 것, 가장 기다렸던 순간인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여전히 이별은 어렵고 정이 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고... 이런 것에 무던해지는 날도 오려나? 그럼 또 무뎌지는 대로 결국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그 모습 그대로가 서글퍼질 것 같기도 하다. ​

그래, 그래도 2021년 고생 많았고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그래도 몇 년 뒤 다시 학급앨범을 펼쳐보며 1학년 담임쌤을 떠올리고 작은 미소라도 지어준다면 그걸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나는!

”쿨하게 헤어지자 우리! 잘 가, 안녕!“


2022년 2월 11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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