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5년차인데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나날
3월 2일, 새학교로 첫출근을 했다. 한 반에 40명이나 된다고 해서 각오는 했지만 진짜 많다. 새삼 우리 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들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진짜 교실이 북적이고 정신이 없고 애가 한두명 없어도 티도 안 나고... 총체적 난국!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어찌저찌 지내다보니 2주가 지나긴 했다.
#. 1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항상 학기초가 되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근데 어쩌면 당연하다. 누구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긴장되고 두렵고 걱정되는 일이니까. 생각해보면 나도 중학교 입학 때까지는 학기초만 되면 학교 가기 싫어서 맨날 배 아프고, 혼자 교실에서 울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런 아이들을 보면 참 안쓰럽고 빨리 적응시키고 싶어 내가 조급해진다. 작년에 두 아이는 끝까지 적응을 어려워했으니 계속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아니나 다를까 첫 출근을 한 날 하루종일 긴장하고 있어서 느지막이 지쳐 돌아가는 길에 한 어머니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부터 계속 울고만 있다고. 중학교 때도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해 3개월을 못 넘겨 그만두고 홈스쿨링을 했다고 한다.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서인지 어머니도 아이처럼 당장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전화를 받고 아 올해도 힘들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차분하게 어머니를 달랬다. 그리고 괜찮으면 내일 아이를 조회 시간보다 20분 일찍 등교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러겠다고 하였고 아이는 정확히 7시 50분에 교무실로 찾아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극도로 긴장하는 아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와 이동수업 교실을 하나 하나 다 돌아다니며 교실에서부터 가는 길을 안내해줬다. 학교가 워낙 크고 건물도 많고 이동수업이 많아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출근 2일차라 하나도 몰랐지만 둘이 학교를 다니며 이동수업 예습을 했다. (덕분에 나도 복잡한 학교 지리를 좀 익혔다.) 그리고 다 돌고 돌아와서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처음은 다 힘들다고, 다른 아이들도 다 괜찮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이 긴장되고 오기 싫은 마음인 아이들도 많을 거라고, 사실은 선생님도 지금 너무 긴장되고 두렵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래도 한 달만 잘 버텨보면 금방 적응이 될 거라고. 다행히 아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도 점심엔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고 싶다고 했다. 급식을 같이 먹어보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욕심인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 돌아와 홈스쿨링했다는 다른 아이를 소개해주고, 학교 근처 같은 건물에서 자취하는 다른 아이를 소개해주고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했다. 다행히 쉬는 시간마다 가보니 내가 소개해준 아이랑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밝게 웃기도 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그냥 급식을 먹겠다고 하더니 아이들과 급식실에도 다녀 왔다. 어머니께 전화드려 다행히 많이 밝아졌다고 괜찮을 것 같다고 했더니 너무 다행이라며 고마워하셨다.
중학교 입학했을 때는 담임 선생님이 너무 엄하셔서 본인도 이런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 전화한 날 그렇게 목소리가 떨리셨나보다. 그리고 며칠 계속 관찰했는데 쉬는 시간에 혼자 앉아 계속 문제집만 풀더라. 내가 또 괜히 조급해져서 어머니께 문자했더니 원래 남한테 관심이 없는 아이라고, 그 정도면 굉장히 잘 버티고 있는 거라고 얘기해주셔서 안심이 됐다. 부디 잘 적응하기를! 학교를 생각하면 경직되고 긴장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이 들기를!
#. 2 학교마다 너무 다른
나름 고등학교에서만 벌써 5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런데도 학교를 옮기면 늘 허둥지둥댄다. 또 그동안 일했던 인문계 고등학교와는 완전히 시스템이 다른 학교라서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계속 멘붕인 상태였다. 남들은 다 여유로워 보이는데 나만 조급하고 어리버리하고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수업 다 하고 와서 해야할 것들만 정리해도 금방 6시가 넘어버렸고 매일 교무실 문을 잠그고 나왔다.
속상한 마음을 친구들한테 털어놨더니 학교를 옮기면 다 그런 거라고 조급해하지 말라며 위로해줬다. 나름 5년차라서 완벽하게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다 그런거지! 정신승리를 하며 버텼다.
일과 중에는 쪽지 볼 시간이 없어서 결국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일주일만에 온 153개의 쪽지를 하나 하나 읽으며 해야할 것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학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을 불러 상담도 하며 주말을 보냈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좀 편해졌다.
#. 3 적당한 거리를 둔다
뭔가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푹 빠지는 타입이다. 따라서 새로운 반을 맞이하면 그 애들한테 푹 빠져서 간쓸개까지 다 내어줄 기세이다. 나도 모르겠다! 애들이랑 왜 이렇게 매년 사랑에 빠지는지! 그래서 주변 선배교사들은 늘 충고를 해주신다. 너무 그러면 오히려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고, 학교일도 너무 열심히 하지말고 적당히 하라고,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어떤 말씀이신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렇게 해주면서 아이들에게 무언가 받을 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상처받으면 어쩌지 두려운 마음도 한 켠에 드는 건 사실이다. 한없이 맑고 귀여워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그 이면에 숨기고 있는 어두운 면을 발견하고 실망하게 될 것도 걱정되고.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해야지. 사랑은 듬뿍 주되, 과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 4. 교사의 응원
1년을 꾸려 나가며 소소하게 준비하는 이벤트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첫 시험날을 응원해주는 건데!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랑 다르게 지필고사에 학기당 세 번의 실기고사가 추가로 있다 난 정말 시험이 싫고 경쟁이 싫은데 우리 아이들은 계속 이 경쟁사회에서 키우고 경쟁사회로 내몰아야하는 슬픈 현실.
그리고 다음주가 화이트데이인 겸사겸사해서 초콜릿을 준비했다! 이런 거 주는 거 부끄러워서 보통 조회 전 교실 위에 올려두는데 이번엔 그냥 종례 때 한 명 한 명 나눠줬다! 여자애들이라 받자마자 인증샷 찍는 거 보니 괜히 뿌듯하다.
3월만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는 요즘이다! 얼른 3월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오길!
2022년 3월 12일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