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말의 교단일기
바쁘다 바빠하며 정신없이 보낸 새 학기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겨울방학이고 학년 마무리를 할 때가 왔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고, 또 알아가고, 함께 성장하다 보면 늘 다채로운 일들과 함께 우당탕탕 일상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미워지기 시작하면 방학할 때가 왔다고 하는데, 올해는 유독 예쁜 아이들이라 그런지 한 학년도가 마무리되는 게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1.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우리가 청소하기
라떼 시절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직접 화장실까지 청소하고, 심지어 교무실까지 청소했던 시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교실 청소도 끔찍하게 싫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청소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교실 청소만 하면 되는 지금이 참 감사하다!
물론 늘 이야기하지만, 우리 아이들 청소 정말 못한다. 보이지 않는 먼지까지 쓸어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보이는 쓰레기만이라도 좀 잘 쓸어냈으면 좋겠는데, 정말 정말 못한다. 이거 청소한 거 맞냐고 되물으면 억울해하면서 정말 청소했다고 하는 아이들에 대고 더 잔소리할 수 없어 결국 내가 다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날들이 많다.
그래도 학기말에 시험까지 다 끝나고 나면 어차피 할 것이 없어 내 시간에는 학급 대청소를 한 번씩 하는데, 그때 자기가 맡은 구역을 열심히 청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청소에서만큼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자기들끼리 투닥거리면서 때로는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다른 친구의 역할을 도와주며 열심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 사랑스럽다.
2. 생각지도 못하게 감동을 주는 아이들
때로는 생각하지도 못하게 감동을 주는 아이들이 있다. 모둠활동을 하고 원래대로 책상 배열하기 귀찮고 어차피 학기말이라 막 앉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교무실로 올라온 날이 있었다. 교무실로 올라와서 밀린 일들을 하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1학기 반장이었던 한 아이로부터 사진 한 장과 함께 카톡이 왔다. 엉망인 교실을 혼자 정리한 것이다! 각 잡힌 책상 줄이며, 쓰레기 하나 없는 교실의 모습과 함께 세심함이 드러나는 메시지까지! 항상 세심하게 친구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안 그래도 기특하다고 생각되는 아이였는데, 이렇게 뜻하지 않게 감동을 주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정말 마구마구 칭찬을 해줘야 하는데!
늘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면서도 막상 아이들 앞에서 한 아이만 너무 칭찬하면 다른 아이들이 서운해할까 양껏 칭찬하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따로 그런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는데 모든 아이들에게 가득 사랑을 나눠주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부에라도 평소에 못 해준 애정을 가득 담아 써줘야겠다!
3. 좋은 부모란 어떤 부모일까
사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직은 너무 먼 일처럼 느껴져 잘 생각하지 않는 질문이었는데, 이제 친구들이 하나 둘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낳을 준비를 하니 이제 내가 부모가 된다면 어때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학부모 상담을 하거나 학생들과 상담하며 저마다의 부모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런 부모는 되지 말아야지 혹은 이런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최근에 상담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참 고민이 깊어졌다.
학급 임원도 하고 무슨 일이든 솔선해서 참하게 하는 예쁜 아이인데 하는 것만큼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에 대한 반항심에 1학기 내내 일부러 공부를 안 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2학기 때는 성적이 훌쩍 올랐는데, 최근에서야 엄마에 대한 마음이 조금은 정리가 된 것 같았다. 울음을 겨우 눌러가며 이야기하던 아이의 모습을 보며 분명 부모님도 하나밖에 없는 이 아이를 생각해서 더 관심을 갖고 한 행동들이었을 텐데 아이가 받은 압박감이 얼마나 컸길래 그랬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아이는 어른스럽게 잘 극복하고 있었고, 이제는 좀 더 의욕을 갖고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사실 이런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는 않다.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마음을 얼러주며 그래도 부모님이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것일 거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뿐.
특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나에게 보여주는 모습과 부모님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정말 다르다. 교사 앞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수용적이지만 집에서는 그냥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사춘기 딸일 뿐이다. 그래서 종종 자신들이 이야기해서는 말을 듣지 않으니 나에게 대신 전해주길 부탁하는 부모님들도 계신데, 무리하게 부탁하는 부모님의 모습에 당황스럽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한 마디 해주는 게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또 조금은 부모님과의 사이를 조금은 풀어줄 수 있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1년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참 세상의 부모님들은 정말 존경스럽다!
4. 칭찬할 줄 모르는 아이들
학기말이 되면 학생부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쓰기 위한 자료 조사로서, 또 아이들과 일대일로 상담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아래와 같은 서식으로 아이들과 쪽지상담을 한다.
그럼 대부분의 아이들이 열심히 자기의 1년을 돌아보고 또 미래를 구상하며 작성해서 내는데, 몇 년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3번 문항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반 정도는 반장, 부반장 등의 이름을 쓰거나 또는 자신과 친한 친구들, 아니면 정말 고생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고 구체적으로 이유를 잘 적어내는데, 반 정도는 아예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빈칸으로 내거나, 칭찬할 아이가 없다고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친한 친구들 몇몇이서 서로 써주자고 약속하고 서로의 이름을 써서 내기도 한다. 후자는 그냥 아이들다운 귀여운 모습이라고 쳐도, 아무도 써서 내지 못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왜 우리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을 진심으로 칭찬하지 못하는 걸까.
무한 경쟁에 놓여있는 아이들이라 서로에게 인색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 말고는 타인에게 아예 관심이 없는 것인지. 어떤 이유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래서 내년(20234학년도)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자신과 타인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할 수 있는 아이들로 기르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또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더 따뜻하고 평화로운 반이 될 수 있도록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겠다.
그래도 이렇게 한 해가 무사히 끝나가고 있음을 감사할 수 있어 또 감사한 학년말이다! 2024년에도 부지런히 아이들과의 일상을 써 내려가야지! 임선생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