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진의 『히아킨토스』에서 SF와 로맨스를 통해 획득한 의미들
로맨스 장르는 어쩌면 SF와 가장 거리가 있는 장르라는 인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학적 상상력과 경이감, 그리고 사고실험이라는 SF를 정의하는데 사용되는 다양한 언표들은 어쩌면 인간의 감정이 얽히고설키면서 연애라는 상태의 관계에 집중하는 로맨스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근대 이후의 로맨스가 연인들 간의 낭만적 사랑(Romantic Love)이라는 언표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러한 인상은 더 짙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SF의 역사에서 로맨스 요소들이 가지고 있었던 업적들을 망각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SF는 이미 로맨스라는 장르와 친연한 관계를 맺으면서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에바 일루즈에 의하면 낭만적 사랑은 일종의 현재의 경계들을 넘나들면서 위반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특히 현실적 구조가 가지고 있는 의미들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면서 대안적 사회질서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는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낭만적 사랑은 일종의 유토피아를 구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회질서에 반하는 의례들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게 된다. 그리고 로맨스라는 장르의 이야기에는 이러한 위반적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들이 직간접적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SF가 추구하는 사고실험에 대한 지점들과 맞닿아 있다. 전형적인 SF들이 지금의 구조들보다 우위를 가지는 위반성을 과학기술의 발달에서 찾는다면 로맨스는 그것을 낭만적 사랑이라는 관계성에서 획득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
(...)
보통 SF에서 비인간 존재들이 등장하면 다양한 의미들을 내재하게 되지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타자성(otherness)을 형상화하는 성격을 지니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히아킨토스』에서의 제로델 역시 다른 행성들에 비해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행성 유르베에서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보면 표면적으로는 제로델이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실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과학자이자 제로델의 어머니인 에레나 마르가 만든 안드로이드들은 이미 인간과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레나 마르의 피조물들이 인간이나 동물들과 다른 것은 구성물질에서 다소간의 차이를 보인다는 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모든 것들에서는 인간들이 구분해 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
(...)
『히킨토스』에서 이러한 관계 맺기가 로맨스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은 극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낭만적 사랑이 이전의 구조들로부터 벗어나는 방법론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적 산물로서의 낭만적 사랑은 중세까지의 위계와 계급적인 구조들을 해체하는 방법론으로 작용했기 때문에 행성 유르베가 중세 유럽의 형태를 모방하고 있고, 그 안에서 발생한 결핍들과 허상들이 가지고 있는 지점들을 제로델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전복하려 했다는 설정은 퍽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낭만적 사랑의 유토피아 서사들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낭만적 사랑이 비현실적인 지점에 머무르고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만을 그리고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소설에서 다른 존재로 인식되었던 제로델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의 우리 사회가 타자들을 인식하는 방법과 퍽 닮아있다.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정보가 쏟아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술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이 발달했지만 우리는 이전과 다르지 않는 인식들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도 손쉽게 그들은 배제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호도해 소외시킨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들은 어쩌면 진부하겠지만 불멸한 명제인 사랑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논리와 효율과 이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의 강력하고 에너지 넘치는 행위들로 우리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과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확인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포스텍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의 웹진 《크로스로드》2021년 1월호(통권 244호) "SF-Review"섹션에 실렸습니다. 본문 일부를 여기에 옮겼고, 전문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