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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Oct 14. 2017

기어코 다가오는 것들

관계의 역사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영화 스틸 컷을 제외 한)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곧 한국을 떠난다. 잠깐이 아니라 아주 길게. 우리는 21살 때부터 서로의 궤적을 함께하거나 멀리서 그것을 지지해 주었다. 오랜 친구가 좋은 건 서로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대학 때문에 고향을 떠나게 되면서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어떤 단절을 겪었다. 여전히 친하고 익숙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20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잘 안다고 착각하는 시간만 길어졌고, 그래서 서로는 이전처럼 단단하지 못하다. 이제 곧 떠나가는 이 친구를 바라보며 문득 걱정이 든다. 우리도 언젠가 헐거워진 못처럼, 과거에만 기대어 간신히 붙어있는 그런 관계로 남으면 어쩌지.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야 하고, 오래된 관계는 더 이상 일상에 들어올 수 없는 날이 늘어난다. 그래서 난 내 과거와 우리의 역사가 소리 없이 떠돌까 봐 두려웠다.


한 여름의 수풀 색처럼 진하게 울리던 매미 소리가 또 끝났다. 아주 미약하게나마 들려오는 그 소리를 애써 귀 기울여 듣던 8월의 마지막 날, 한동안 익숙해져 있었던 그 소리를 보내는 중이었다. 같은 건물에 들어앉아 보던 매번 같은 풍경 속에서 지루함을 토로했건만, 나의 여름을 내내 비추던 창의 풍경은 이제 시간을 따라 조금씩 낯설게 바뀌고 있었다. 가장 뜨거운 계절이 매미 소리와 함께 끝나버렸다. 이별은 늘 어렵다. 이별의 또 다른 이름은 익숙함의 상실이었으니까.


이사를 위한 짐 정리를 하다가 오래도록 안 쓰던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에서 나온 텀블러에는 오래된 차 찌꺼기가 들어있었다. 악취가 엄청났고, 몇 번 안 쓴 텀블러도 결국 함께 버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가방 역시 안에 핀 엄청난 곰팡이 때문에 버려야만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 책꽂이에서는 낡은 공책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끝까지 쓰지 않은 공책의 뒷부분은 늘 미완성으로 남아 있곤 했는데, 나는 버리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기다렸다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짐을 줄여야만 하는 이런 날이 찾아왔고, 결국은 모두 버리고 말았다. 나는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들추기가 두려워서 무언가를 이토록 썩어갈 때까지 방치해둘 때가 많았다. 돌보지 않고 자주 꺼내보지 않으면 모든 건 결국 그렇게 곰팡이가 낀 채로 죽어간다. 사람을 무뎌지게 하고 익숙해지게 하는 데 있어서 시간과 돈만큼 빠른 건 없다.



#1

간호사로 2년을 일하다가 결국 그만뒀다는 친구는,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나가는 공간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잊고 있던 너무 당연한 사실 하나를 다시 마주했다. 나는 결국 퇴화할 날들만 남은, 썩어가는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사실은 나뿐만 아니라 어제 태어난 아기, 내일 죽을 노인에게도 해당된다. 앞으로 조금씩 더 유약해지고 버거워질 육체와 달리, 기존의 많은 관계들은 가벼워진 채로 나를 떠나갈 테다. 연이은 실패와 좀 해보려고 시도하다가 끝나버리는 많은 것들. 그리고 늙어가는 나의 부모님을 바라보는 것. 내가 평생 감당할 것들은 결국 이것들이겠지. 하지만 동시에 나를 구성하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기에, 버리지도 다른 누군가에게 주지도 못한 채 결국 내가 울며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영화 <다가오는 것들>(2016, 미아 한센 러브)에서 암시한 것처럼, 노년의 입구에서 나를 '떠나가는' 많은 것들 이후에 '다가오는' 건 결국 이별과 죽음이다. 영화는 굉장히 공포스러울 수 있는 이 사실을 엄청난 의연함으로 돌파하는 한 중년 여자를 따스히 바라본다. 


철학교사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남편과 자식들, 홀어머니를 둔 평범한 50대다. 가끔 찾아오는, 작가가 된 제자와 지적인 토론을 하고, 자기 이름으로 책도 계속 출판하며 나름 충만한 중년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새로운 여자가 생겼다는 고백을 하며 집을 떠난다. 언제나 자신에게 사랑을 갈구하며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던 엄마는 급기야 자살시도까지 하고, 나탈리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양로원에 보내지만 얼마 안 가 엄마의 부고를 듣는다. 


젊은 시절엔 한때 급진적인 운동을 했던, 공산주의를 지지해서 소련까지 다녀왔던 나탈리는 이제 아끼던 제자에게 "부르주아"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며 숲속에서 대안적 삶을 꾸려가는 젊은 급진주의자들의 눈에 그녀는, '서명'만으로 참여 지식인이라 위안하며 타협하는 기성세대다. 약 30년 전, 분명 더 급진적이고 열정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며 이미 할 만큼 다 해보고 깨질 만큼 깨져봤을 그녀는, 쉽게 바뀌지 않는 사회를 위해 싸우는 제자가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을 테다. 하지만 젊은 세대로부터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의심받는 건 그녀에게 힘겨운 일이었다. 자신의 젊은 나날을 떠올리게 했을 그 제자와의 갈등 뒤, 나탈리는 돌아가신 엄마가 키우던 늙고 살찐 고양이 판도라를 안고 서럽게 운다. 언제나 담담했던 그녀는, 홀로 남겨진 고양이를 자신의 늙어가는 몸에 가득 끌어안고서 아주 잠깐, 떠나는 것들을 바라보며 고통을 느낀다.

영화 <다가오는 것들>


그렇지만 나탈리는, "애들은 독립했고 남편도, 엄마도 떠났지 나는 자유를 되찾은 거야.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 놀라운 일이야. 이건 낙원이잖아!"라고 말하곤 했던 나탈리는 곧 그 의연함을 되찾는다. 상실과 이별 뒤에 남은 자유를 볼 줄 알았던 그녀는 딸이 낳은 손주(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에게 '플라톤의 비밀'이라는 철학책을 선물한다. 성탄절 저녁, 곧 사라질 파티 음식과 젊음을 앞에 둔 나탈리의 자식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동안, 나탈리는 잠에서 깬 손주를 달래러 간다. 울음으로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갓난아기를 안고서 자장가를 부르던 나탈리. 그녀는 그 아기가 언젠가 자기와 똑같이 맞이할 그 상실의 시간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가 그러했듯, 그 고통을 돌파하는데 철학이 작은 보탬이 되어주기를 바랐을 테다.


'다가오는 것들'이라는 여섯 글자에는 앞으로에 대한 설렘이 묻어있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훌쩍 넘긴 나탈리는 자기에게 남아있을 설렘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모든 게 다 떠나가는 노년의 입구에서도 여전히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날을 겪을 수 있다며, 그리고 그렇게 다가오는 날들은 관점에 따라 설렘과 자유가 될 수도 있다는 증언을 해준다. 가을이라는 너무도 적절한 계절에 개봉한 이 영화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찾게 될 듯하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바로 이 세상을 파악하고도 세상을 경멸하지 않기를"
-괴테-


#2

인생은 분리와 단절의 역사다. 그렇기에 그 사이에 아주 잠깐 동안 일어나는 사랑과 연결은, 기적인 동시에 모든 인생의 목적이기도 하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3, 장 마크 발레)에서 호모포비아였던 '론'(매튜 맥커너히)이 성 소수자 '레이언'(자레드 레토)을 위해 대신 목소리를 내준 장면은 그래서 잊기가 어려웠다. 영화 초반에선 동성애를 그렇게도 혐오하던 인물이, 에이즈 약물을 함께 판매하다 이젠 친구가 된 레이언을 위해 싸워준 그 장면은 혁명적이었기에 아름다웠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론의 옛 친구(론과 함께 호모포비아였던)는 반갑게 악수를 건넨 레이언을 경멸하듯 바라보며 그를 무시한다. 레이언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 듯 넘어가려 애쓰지만, 론은 가만히 있지 않고 그 친구를 협박하며 레이언과 억지로 악수를 시킨다. 그때 레이언은 론을 향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표정을 짓는데, 굉장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있음이 그의 얼굴에 스친다. 존재를 부정당해 온 누군가가 존재를 온전히 확인받음을 느끼는 축복이 새겨졌달까.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그 사려 깊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자 삶의 목적이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각자의 존재를 서로 확인해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유약한 존재니까.


영화 <꿈의 제인>(2017, 조현훈)에서 '제인'(구교환)이 '소현'(이민지)에게 보낸 시선 역시 잊기 힘들었다. 그 시선은 ‘무심한 관심’을 담고 있었다. 섣부른 판단이나 어설픈 관심이 아닌, “너에 대해 정의하지 않겠다. 그러나 나는 너를 존중하고 있어”라는 믿음을 담은 시선이었다. 새끼발가락이 없는 소현이 제인에게 "안 이상해요?"라고 묻자 제인은 "하나도 안 이상한데?"라며 덤덤하게 답한다.


트랜스 젠더 제인과 가출 청소년 민지는 언제나 '트랜스 젠더'와 '가출 청소년'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정의되어 왔을 테다. 그리고 연민, 위로, 혹은 경멸과 혐오라는 시선 속에서는 '무심한 관심'을 받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기에 제인이 스쳐 지나가 듯 보낸 그 '무심한 관심'은 소현에게 더 큰 공명으로 다가간 듯 보인다. 아주 잠깐 만난 제인을 소현은 영화 내내 품고 살아가며, 그 기억은 비정한 세상을 통과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에.

영화 <꿈의 제인>


나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주며 자신을 숨김없이 열어 보이는 그런 사려 깊은 시선이 나는 늘 고팠다. 판단하고, 해석하고, 자신은 열어 보이지 않은 채 타인을 정의하려는 눈짓이 지배적이니까. 이런 방식의 눈 마주침에는 존중이 깃들 자리가 없다. 우린 매일 이런 피곤한 시선들을 애써 피하기 위해 눈을 굴리거나, 아니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같은 방식으로 시선을 되받아치며 그 악순환에 기여한다.


우리는 서로를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실을 종종 까먹은 채 누군가를 섬세하게 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나는 동성애에 관심이 많아.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야 해”라고 말한 직후 “아, 근데 나는 동성애자가 아냐. 이성애자야”라고 말하며 어떤 안도감을 느끼는 듯 보였던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왠지 모를 불편함이 솟아난 적이 있다. 그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좀 더 높은 지위를 확인받으려는 듯 보였고, 거기서 비열함이 풍겼다. 불가능한 이해의 틈에서 서로의 고통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내어 줄 수 있을 때,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며 누군가의 결핍에 다가갈 때 작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결핍은 꼭 두려운 것만이 아니다.


인간들의 여러 모습들이 결국은 모두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우리는 시시각각 사라지는 시간 앞에서 변하는 것들에 둘러 쌓여 매일을 산다. 그건 분명 두려운 일이고, 그렇기에 내 존재를 느끼고 내가 하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는 안간힘을 쓴다. 의미 부여를 위해 이 시대에 가장 많이 하는 것 중 하나는 사진 찍기다. 카메라의 찰칵거리는 소리는 지금 이 짧은 순간들을 정말 그대로 보존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주기에,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불완전함을 잠깐 잊는다. 폰을 꽉 쥔 채로 똑같은 사진을 연달아 찍어대는 풍경 속에서 그런 몸부림을 느꼈다. 곧 떠날 여행지에서, 곧 떠날 봄의 끝자락에서, 곧 헤어질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통해서라도 그 시간들을 소유하고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발악한다. 어쩌면 셀프 찬양과 허세, 혐오, 폭력, 지배 그리고 전쟁과 테러 역시 결국엔 사랑받고자 하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을 이용해서라도 자기의 존재와 가치를 어떻게든 인정받으리라는, 그래서 결국엔 사랑받으리라는 목적에서 비롯된 '왜곡된 몸부림' 말이다.


#3

몇 년 간 끼고 다니던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을 때, 엄청난 상실감을 느낀 적이 있다. 겨우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리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게 속했던 무언가를 잃는 느낌이란 분명히 아픈 것이었다. 어디에 가도 다시 그 장갑을 찾을 수 없다는 건 그것과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상실하게 했으니까. 내일 ‘또’ 가는 회사, 내일 ‘또’ 가는 학교, 내일 ‘또’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또’를 반복하면 살 때도, 그 장갑은 내 손이나 서랍장 구석 어딘가, 혹은 가방의 다른 물건들에 짓눌린 채 내 주변 어딘가에 늘 있었을 테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또’라는 게 사라진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우리는 늘 작별 인사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지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이 생에서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반복이 없는 유일한 만남들 속에, 어떤 공포감과 소중함이 공존한다.

사진 - 박지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일로 바빠서 서로에 대해 '제대로' 묻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받으며 즉각 말을 내뱉기는 쉬워졌는데, 갚을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말들이 서로를 짓누른다. 다 보여주지 않고 적당히 내 것을 챙기는 것, 그런 방식으로 사는 게 가장 편하다. '예술 한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아주 잠깐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오히려 예술 한답시고 내 삶에 대해 아는 척 몇 가지 조언을 던지거나, 나를 불안하게 만든 뒤 자신의 안락함을 확인받는 듯했다. 결국엔 모두 자기 언어만 뱉고서 사라졌다. 누군가의 유일함을 보기는커녕 앞에 앉은 타자의 눈동자에서도 결국 자기를 본다. 관심을 빙자한 공허한 질문들, 파악하기 힘든 수수께끼 같은 말들로 가득한 대답 속에서 이해받지 못한 언어가 우리들 사이를 떠돈다. 서로에게 닿지 못한 이야기들은 각자에게 돌아가지도 못한 채, 공중으로 멀리 흩어져 버렸다.


꽤 오래전부터 친했던 한 모임이 있다. 한때는 가족처럼 매일 만났지만 이제는 드물게 만나는 모임. 더 이상 진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묻지를 않았다. ‘의미 없는’, 그러니까 감흥 없는 농담 따먹기나 자리에 없는 제삼자에 대한 험담처럼 공기 속에서 곧 사라질 말들만 우리 사이에 떠다녔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방인이었고, 마치 꿈속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할 때만 찾는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의 만남은 이제 지나간 시간이 남긴 향수에 의존할 뿐이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차마 시작하지 못한 것이 모든 불편함의 시작이었겠지. 몇몇의 인간관계에서 솔직하지 못한 나는, 뱉으리라 준비했던 어떤 말들을 결국 내 안에 잔뜩 동여맨 채 집으로 돌아온다. 메말라가는 나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었다. 감상에 빠지고 싶지도 않고, 나를 불쌍하게 여기며 자기 연민에 빠지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그건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떼쓰는 그런 어린아이 같은 거니까. 우린 단지 각자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바빴을 뿐이다. 각자의 이야기로 바빴을 뿐. 그러니 그저 우리가 옳은 길을 가게 되기를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고 되뇌었다.

사진 - 박지윤


한때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비굴하다고 생각했다. 관계에 집착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내가 사랑받지 못함에 슬퍼하고 있었다. 죽어버린 관계의 마지막 뒷모습을 본다는 확신 속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쌓였다. 쓸모없으면 버려지는 관계의 패턴을 생각하며, 매우 낯선 땅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FIN

집으로 가는 고속버스가 4시간 동안 도로를 달린다. 터미널에 내릴 때가 다가오면, 저 멀리서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늘 전화로 오간 말들과 택배 박스에 적혀온 손글씨 너머로만 엄마의 실재를 확인하다가, 실제로 엄마를 마주하는 건 확실히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꼭 저 여자를 행복하게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어떤 확신과 함께 무력한 마음이 올라온다.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찾아올 때면, 문득 터미널에 서있던 그때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진다.


익숙한 것들이 모두 사라진 사막 위에서 헤매는 것 같은 날엔 일기 비슷하게 쓴 메모들과 내가 찍었던 사진, 영화를 보곤 했다. 모든 게 달아났을 때 내가 기대어 살아가는 건 결국 내가 시간을 바치고 피똥을 싸며 남긴 몇 개와 아직은 많이 변하지 않은 어떤 장소,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몇 명, 그리고 풍화해 가지만 여전히 쉬지 않고 돌아가는 내 몸뚱이가 아닐지. 아, 완벽하게 불확실하지만 동시에 설렘이 될 수도 있을 '다가오는 것들'도 포함해서. 시간 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너무 많은 것들 앞에서도, 기어코 살아남는 것들은 언제나 있었다.


2017년 10월

글. 박지윤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영화 스틸 컷을 제외 한)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 사진 -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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