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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Nov 13. 2017

죽음을 길들이는 시간

노동에 대한 사적인 단상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영화 스틸컷 및 타 작가의 작품을 제외한)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어디선가 '잠은 죽음을 길들이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깨어 있는 시간과 잠(가끔은 꿈)을 매일 오가는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에 길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죽음은 다른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언제나 매 순간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쳐온 시간은 죽음의 확률을 이기고 살아남은 증거들이다. 그 사실을 복기한다면, 이 나이 먹도록 살아있다는 오늘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22살 비가 내리던 봄. 비가 오는 걸 뒤늦게 확인하고 우산을 가지러 집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 날이었다. 챙겨 나온 우산을 쓰고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때, 내 바로 뒤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그 굉음은 순식간에 내 모든 것이 영원히 빼앗길 수 있음을, 나는 그저 썩어가고 있는 유기체에 불과함을, 한 번의 부딪힘으로 인해 내가 지나가던 비둘기들의 먹이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웠다. 후진하던 차는 보행자 가드레일을 뚫고 벽에 부딪혔다. 그 엄청난 소리에 주변 가게에 있던 사람들 역시 밖으로 튀어나왔다. 몇 걸음만 더디었다면 벽에서 산산조각이 났을 내 몸뚱이를 이끌고서, 나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몸이 공기에 맞닿는 느낌이 이전과 너무도 달랐고, 온종일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었다. 최초로 죽음 가까이에 갔던 날이었다.

케테 콜비츠(1867-1945), '밭 가는 사람들'(1906)


#1

나무가 흔들리는 움직임을 자세하게 지켜보는 그 ‘비생산적인 일’을 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던 어느 날, 매끈한 건물 속에서 시간을 잊은 채 일하는 우리가 불쌍했다. 이렇게 태양은 익어가는데,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건물에 들어앉아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우리는 세상을 보고 느끼고 만지려 태어났는데, 그저 갇힌 노동과 바쁜 구매로 시간을 채워간다. 그리고 스스로가 살아있는 존재인지조차 까먹게 된다. 삶에서 진짜로 해야 하는 질문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피로와 무기력함, 기쁨인 줄 아는 것들로 삶을 채우겠지. 그럼 그렇게 번 돈으로는 맛있는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더 안락한 공간을 소유하겠지. 그리고 우울함을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애써야만 하겠지.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경고도 없이 죽음이 찾아오겠지. 영화 <파이트 클럽>(데이비드 핀처, 1999)에서 브래드 피트가 뱉었던 대사가 갑자기 떠오른다. "우리는 필요도 없는 고급 차나 비싼 옷을 사겠다고 개처럼 일한다. 우리는 목적을 상실한 역사의 고아다. 우리는 움직이는 쓰레기다."

영화 <파이트 클럽>


어젯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찔거렸다. 내가 내 몸을 너무 방치해 온 게 아닐까. 문득 내 몸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몸을 타고 시작해서 몸으로 끝나는 게 하나의 생인데, 나는 내 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허둥지둥 늙어만 간다. 일에 파묻히고 돈을 세는 동안, 우리는 언제나 내 옆에서 숨 쉬고 있는 죽음에 대해 잊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이렇게 미친 듯 일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해 본다. '무차별적인 노동'이 끝난 뒤 맞이하는 하얀 밤 다음에는 출근을 재촉하는 아침이 곧 찾아온다. 잠도 잊고 꿈도 잊은 채 언제나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길들여지지 못한다. 죽음을 연습시키는 밤이 사라진 자리에, 영원한 낮이 자리 잡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똑같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잠들지 못한 채 앞으로만 전진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자신이 곧 죽어서 사라질 비루한 존재임을 잊는다.


#2

월급을 받았고 필요했던 물건을 샀다. 소비가 주는 안정감이 이토록 따스했다. 결국, 이렇게 소비라는 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돈이 없으면 따뜻한 커피 한 잔도 엄청난 사치가 된다. 정신적인 것을 누리려면 돈이라는 뒷받침이 필수다. 영화, 책, 음식점, 문화생활, 카페에서의 수다 등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누리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든다. 어떤 예쁘고 화려하고 비싼 ‘문화 공간’에서 느꼈던 회의감 속에서, 나를 싣고 가는 건 결국 돈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회사를 그만둔 친구와 식비에 대해 긴 얘기를 나누었다. 왜 인간은 삼시 세끼에 더해 중간중간에 또 뭘 먹도록 설계되었는지 한탄했다. 한 인간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데는 너무도 많은 돈이 든다.


내 삶을 이끌어 가는 동시에 내 영혼을 말려가는 가장 큰 두 힘인 '돈'과 '시간'에 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는 나의 노력이 점점 부질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얼마의 돈을 받는지에 대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돈에 목을 매는 삶을 피해 내 정신을 살려두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노력을 들이더라도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해 내가 아주 다른 임금을 받게 될 때, 나는 내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사회에선 얼마를 받는지가 한 사람의 자존감을 떠받들고 있으니까. 내가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느껴지는 게 싫어서, 밥 한 끼를 먹을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고 느끼기 위해서, 그리고 하루하루를 지탱하기 위해서 나는 돈을 벌고 있다. 우리는 생산한다. 소비하기 위해.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란 없다.

아흐마드 무르시, '시계2'(1998)


미술관 아르바이트를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왔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과연 돈을 쓸 자격이 있을까?” 돈과 사람들에게 지칠 앞으로의 시간이 나를 슬프게 스친다. 내가 삶의 즐거움을 더는 느끼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거라는 명목 아래에서, 나는 나를 어디까지 희생시키며 대가를 치러야 할지.


#3

겨울이 오는 찬 공기가 참 무겁게 느껴지던 11월의 어느 아침에 본 한 아저씨. 바리바리 싸 온 물건들을 지하철 앞 가판대에 펼쳐서 정리하던 그 아저씨의 손짓은 빠르고 정성스러웠다. 하지만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가판대에 시선조차 두지 않은 채 추운 거리를 피해 각자의 건물로 들어간다. 그 아저씨와 그렇지 않은 아저씨를 가르는 간극은 도대체 무엇일까. 쉬는 날에도 일하던 이마트의 점원들, 회사의 계단 바닥에 붙은 껌을 때는 직원들, 그리고 매일 아침 지하철 계단 한가운데에 서서 수많은 침묵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전단을 들고 버티고서 있는 사람들. 매일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조금씩 사라지는 그들의 시간.


친구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 소비자인 우리와 생산자인 식당 직원들은 서로 다른 식탁에 앉아 동시에 밥을 먹었다. 우리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식당 직원 세 사람은 음식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나 역시 식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노동자였다. 그들은 밥을 먹는 도중 계산을 하고 주문을 받으며 노동과 쉼 사이를 분리하지 못했다. 쉼은 노동의 연장이었다. 노동이 쉼의 연장인 경우는 거의 없다. 식당 안에서 흐르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어떤 힙합곡이 내 귀를 때리는 데, 그 무질서가 나를 그냥 마비시키도록 허락하고 싶었다. 생각과 감각과 감정이, 그저 그 폭발음 속에 조용히 묻히도록.


“난 태양을 보고 싶었어. 컴퓨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아니라 태양을.” 사무실에서 온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일을 했던 날들 동안, 내 머리와 가슴속에서는 이 말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스페인의 태양이 종종 생각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삶을 살아간다면 이런 태양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는 확신을 준 그 태양이. 그리고 컴퓨터 앞에서 긴 하루가 끝날 때면 스페인에서 맡았던 특유의 냄새가 기억이 나지 않곤 했다. 그 냄새는 쏟아지는 태양 안에서 아주 분명하게 느껴지던 내 맥박과 숨소리, 그리고 스페인만의 자유로운 공기가 한데 뒤섞인 그런 냄새였다.


태양 아래에서 맡았던 그 냄새 대신, 퇴근 시간에 지하철 2호선을 탄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파묻힌 채 강제로 그들의 체취를 맡았다. 간신히 고개를 들었더니 아크릴 광고판에 내 얼굴이 비쳤다. 몸을 한껏 움츠린 채 각자의 조그마한 스크린으로 고개를 박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간신히 숨 쉬고 있는 나를 보기 싫었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계속 이렇게 살다가는 영원히 그 태양 아래에서 맡았던 냄새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는 두려움이 튀어 올랐다. 그 냄새는 이제 오직 사진 속에만 남은 채, 곧 ‘빛바랜 추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에서 죽어가겠지.

사진 - 박지윤


#FIN

서울답지 않게 날씨가 좋았던 4월, 점심시간을 틈타 회사에서 광화문까지 걸어갔다. 좋은 날씨 때문에 모든 사람이 왠지 다들 웃고 있는 것만 같았던 날이었다. 풀잎을 뚫어 버리는 강렬한 햇빛을 맞았다. 풀잎과 햇빛의 그 마찰, 둘 사이에서 튀어 오르는 그 에너지는 나를 본연의 나로 돌아가게 해준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근무 날이지만 특별한 일이 없었다. 그저 일찍 끝나기를 기다리는, 평소와 다름없던 그런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다가 6개월 만에 자유인이 된 게 참 어색하다. 다시금 작년의 지난한 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젠 언제 다시 돈을 벌게 될지 약속할 수 없다. 정말 계속 쓸 일만 남았다. 하지만 또 이렇게 되새겨본다. 불안정한 자유가 자유의 결핍보다 낫다고.


2017년 11월 

글. 박지윤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영화 스틸컷 및 타 작가의 작품을 제외한)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이미지 - 케테 콜비츠(1867-1945), '밭 가는 사람들'(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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