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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Apr 08. 2021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쓴 글 (3)

이 영화의 제목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Like You Know It All)'이다. 같은 제목을 가진 림킴의 노래를 들었을 때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어구가 유독 좋았는데, 이 영화에 적절한 제목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절한 제목이었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한국의 자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타인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 그리고 타인의 문제에 대한 '태도'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살 문제를 늘 다뤄보고 싶었는데 어려운 주제였다. 자살 시도를 했던 사람 혹은 자살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윤리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자극적인 부분이 강조될 것만 같았다. 한국의 자살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줄 수 있는 인물을 담고 싶었다. 해결방안은 아닐지라도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 '태도'에 대해 좀 더 질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일하는 상담사분을 인터뷰했다. 45년간 정말 많은 사람의 전화를 받아왔고 여러 상담사들을 교육한 분이기에, 한국의 자살 문제에 대해 다방면으로 해주실 이야기가 많았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정신과에 가는 것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높은 자살률과는 달리 정신과에 가는 비율이 높지 않다고 한다. 영화는 우울증에 대한 편견부터 시작해서 IMF 위기 이후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난 자살률, 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과의 긴박한 통화의 순간,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의 개인적인 서사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담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이야기와 맞물린다.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들은 익명의 사람들과 목소리로만 상담한다는 점을 고려해 인터뷰는 오디오로만 진행했다. 그리고 그 인터뷰들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이야기에 걸맞은 이미지들을 새롭게 촬영했다. 영화 내내 사람의 얼굴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인터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장소들과 움직임들이 나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상상력'이 중요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속내, 그 사람 자체에 대해 우리는 결코 다 알 수 없는데, 다 아는 것처럼 해석하고 단정 짓고 규정짓고 설명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이 한국 자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집단주의 성향이 짙은 한국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 문제에 이러쿵저러쿵 말하기가 참 쉽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은 결코 다 알 수 없겠지만, 그 알 수 없는 깊이를 상상하며 끊임없이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주제를 늘 생각하며 이미지와 사운드를 구성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 상반기 20 여성 자살률은 지난해보다 43% 급증했다. 2020 1월부터 8월까지 자살 시도자는 15,090명으로 지난해보다 10% 증가했는데,   20 여성 자살시도자가 많았다고 한다.  영화가 20 한국 여성의 자살 문제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90년대생 여성으로 살아온 경험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편집하는 시기에 20 여성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뉴스를 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가 닿기를 바랐다.


2021년 4월

글. 박지윤


[줄거리: 한국생명의전화에서 상담원으로 45년간 자원봉사를 해온 이광자 씨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오늘도 그녀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미지와 사운드는 그 이야기에 반응하며, 누군가의 마음속처럼 보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하루에 3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나라. 한국생명의전화에는 하루에 약 60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국 자살률의 심각성을 보여주거나 섣부른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자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타인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우리들의 태도를 어떻게 공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타인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해당 글에 들어간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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