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고 또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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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2015년 봄부터 2017년 가을 사이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 담긴 클라우드가 사라졌다. 폰을 바꾸기 전에 사진들을 모아둔 한 계정인데, 해킹을 당하며 사진 파일들이 모두 날아갔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이던 2018년 여름이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던 시기라 아쉽거나 화가 날 시간이 없었고, 삭제된 그 사진들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잊으며 한국을 떠났다.
그러다 몇 년 뒤 2016년 봄이 생각나서 어떤 사진을 찾게 되었을 때, 그 사진들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문득 기억하게 됐다. 물론 가족, 친구들과 공유한 사진들의 경우 그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있으며, 사진이 너무 많아 이후에 다시 찾아보는 경우는 드물기도 하다. 하지만 갑자기 그 사진들의 행방을 떠올리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2015년 봄부터 2017년 가을 사이라는 그 시기가 거의 빠짐없이 기록된 사진들의 부재를 체감하며,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아득히 멀어진 시간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고 영화를 사랑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영화가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책 '봉인된 시간'에서 "인간이 예술과 문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간을 직접적으로 사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며, 동시에 시간을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 즉 생각이 나는 대로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 비교해 시간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시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영화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월을 견디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조금씩 찾아갈 수 있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 루카 구아다니노)에서 올리버가 책을 읽다 적어둔 메모 중 이런 문장이 있다. "흐르는 강물은 만물이 변하기 때문에 그것들과 두 번 다시 마주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은 변화함으로써 유지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헤라이클레이토스 '우주의 파편들') 이 영화를 본지 벌써 4년이 지났다는 사실이 기억나 영화에서 나온 음악들을 다시 듣게 됐다.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내가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었다. 하지만 변한 것들 사이에서도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찾아와주는 좋은 기억들이 있으며, 그 과거들은 내 현재와 미래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함께해 준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가 2년 전에 만든 <아주 오래전에 Once Upon a Time>(2020)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영화 자체에 대해 후회하는 부분은 전혀 없고 만족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영화기에, 영화를 다시 보기가 힘든 면이 있었다. 개인적인 영화이기도 했고, 나는 영화 작업을 할 때 매 순간 당시 상황에 솔직하고 진실되려 노력하는 부분이 강해서인지 예전에 만든 영화들을 다시 보는 게 쉽지가 않다.(솔직히 지금은 다시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 1년 만에 다시 본 이 영화에 대한 감정은 현재 이렇지만, 10년이 지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면 또 그때는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거라 믿는다. 5년 뒤, 10년 뒤 그리고 50년 뒤 이 영화들이 내게 어떻게 변화된 형태로 찾아올지가 기대되는 새벽이다. 그리고 2015 봄부터 2017년 가을 사이의 그 사라진 사진들의 빈자리를, 이제는 아득히 멀어진 그 시간들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4월
글. 박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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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콜미바이유어네임>(2017, 루카 구아다니노)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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