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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Apr 15. 2022

느슨한 연결로

우리가 연결되는 방식, 느슨한 연대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독립'이다. 정신적 독립, 정서적 독립, 경제적 독립 모두 중요하다. 내가 나 혼자 나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과도 제대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은 여성을 포함한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영화 작업을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적절하고 정확한 언어를 만나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그게 짜릿하기도 하고 '아 이제 됐다'라는 기분이 들어 계속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 감각이 내겐 근본적인 동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내 의도를 읽어주고 거기에 공감했을 때, 영화를 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며 삶으로 그 고민들을 이어갔을 때 행복했다. 영화와 사람들 사이가 연결되면서 나와 사람들 사이에도 어떤 이어짐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 '느슨함'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각자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느슨하게 연대하며 연결되는 것이.


영화 작업과 나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를 가지려 했다. 주로 자기 반영적인 영화 작업을 많이 해왔기에 내 삶과 영화 사이를 적절히 분리시키기 더욱 어려웠고, 그래서 내가 쉽게 고갈되었다. 내 몸과 마음을 먼저 챙겨야 좋은 것들을 더 오래도록 만들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작업과 나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와 '느슨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업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가 있을 때 좀 더 오래, 멀리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사진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코바늘 뜨개질 작업이며, 느슨한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Louise Bourgeois, Crochet II (1998)


연대는 항상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며, 집단주의는 공동체주의가 아니다.) 연대 자체보단 그 연대의 방식이 어떠한지, 누구와의 연대인지가 더 중요하다. 서로 신뢰할 수 있으면서 수평적인 방식의 연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름이 아닌 같음을 강조하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문화에서는,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누군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그래서 한국이 OECD 자살률 1위가 아닐까.) 그리고 그 같음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근거가 아닌, 권위적인 태도로 자신이 가진 지위를 내세우고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  영화제에서 일하며 직장  갑질 및 괴롭힘과 체불 문제 등을 겪으며 인간에 대한 환멸감을 강하게 느낀 적이 있다. 아주 작은 영화제였고 영화제 전담 인력은  혼자였으며, 일당백으로 여러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곳에선 내게 유독 근거 없는 신뢰와 믿음을 강요했다. "아니  조직을 그렇게  믿어?" 그곳에 다니는 동안 고일대로 고인 물속에서 가라앉는 기분이 가득했다. 법을 어기면서도 당당한 사람들을 겪으며 한동안 인간에 대한 신뢰가 사라져 힘들었지만, 이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다시 기억해 냈다.


그곳을 나오던 시기에 내 작품이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될 기회가 생겼고, 체코의 한 영화제에 다녀왔다. 지구 반대편에서 큰 환대를 받으며 환멸이 달아났다. 코로나로 2년간 온라인에서만 해외 관객들을 만났는데,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며 처음으로 해외 관객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창작을 해본 사람은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 지,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헌신이 필요한지 그 가치를 더 잘 안다. 영화를 만들며 나는 항상 내 삶을 연료로 태워야 했는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새로운 연료를 채워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해외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예술작업을 하며 살아가면 매우 고독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신뢰성이란 그가 말할 수 있는 영역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그를 기꺼이 믿어준다는 것을 뜻한다. 뭔가 도전적인 이야기를 꺼낸 여자를 깎아내리는 표현은 너무나 많다.”라고 했다. 이처럼 세상은 여성들에게 관대하지 않기에, 우리에겐 더더욱 연대가 필요하다. 대학원을 졸업한 지 시간이 꽤 흘렀고 함께 하던 동료들은 다 해외에 있었기에,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3월 시각예술 분야 여성 예술인 네트워크 루이즈더우먼 멤버 오픈콜에 지원했고, 다행히 선정되어 3기 멤버로 합류하게 되었다.

 

https://louisethewomen.org/JiYoonPark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며 겪은 부정적인 경험들과 그로 인해 생긴 불안을 동력 삼아(언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으니까), 새로운 동료들과의 연대 아래에서 영화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려 한다. 곧 5월부터 하게 될 교차 크리틱 프로그램 라운드 크릿이 기대된다. 남자들은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여자들은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한다는 말을 기억하며, 스스로를 지나치게 채찍질하지 않고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한다.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연결되는 느슨한 연대 속에서, 나도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


2022년 4월

글. 박지윤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이미지 - Louise Bourgeois, Crochet II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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