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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JiYoon Park Apr 17. 2022

존재하는, 되어가는

시간을 보내는 어떤 방식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요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며 심리적으로 지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예전에 쓴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며, 초심을 되찾고 중심을 잡으려 노력 중이다. 20대 초부터 계속 일기를 써왔는데, 노트에 손으로 쓴 글들을 워드에 옮겨 쓰고 프린트해서 가끔 읽곤 했다. 누가 보고 있든 보고 있지 않든 계속 뭔가를 기록해왔다. 작품에 포함되든 포함되지 않든 그 일기들은 중요했고, 결과적으로 언제나 내 영화 작업이나 프로젝트의 굳건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창작을 하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고, 결국은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작가 리베카 솔닛은 "작가의 재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희귀하지 않다. 오히려 그 재능은 많은 시간 동안의 고독을 견디고 계속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능력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라고 했다. 고독을 견디며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질문들을 뚫고 계속 나아가는 건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희생>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시네마는 감독에게 스스로를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당신의 삶을 이용해서 만들어진다. 당신은 작품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해야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사실 나는 나를 희생한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돌이켜보면 매 작품을 만들 때마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하고 나를 다 바치는 것처럼 전념해야 비로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다고 해서 이게 어떤 커다란 부나 명예를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걸 계속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스스로를 포함한 내 삶의 다른 부분들을 희생해서 창작을 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리스크 테이킹을 감당해야 하는데, 나는 왜 이 힘든 걸 계속하고 있을까. 가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어떤 거창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이 과정이 내게 즐겁다는 것 그리고 내가 존재하고(being) 되어가는(becoming), 그래서 성장하는 하나의 방식이기에 자연스럽게 계속한다는 답이 나왔다. 그리고 왜 창작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너무 자주 하면 좋지 않은 것 같다.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실질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작품에 대해 좀 더 생각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아예 다른 걸 하고 쉬면서 잠시 거리를 두는 편이 더 낫다. 언어로 거창하게 설명하기 어려워도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온몸으로 알고 있다면, 의심하거나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창작을 할 때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전달되는 게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창작은 결국 스스로를 위해 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한때 샤이니 종현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MBC 푸른 밤 종현입니다'를 자주 즐겨 들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참 솔직하게 잘 한다는 말을 청취자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라디오를 통해 하는 이야기가, 청취자인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스스로에게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만족되는 진실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개인적으로 진실됨과 정직함이 창작에서든 이야기에서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의 대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었다. 스스로를 위해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브런치 글들은 영화를 만들고 쓴 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쓴 글, 영화를 보고 쓴 글로 구성된다. 여기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쓴 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른 두 섹션과 비교해 내가 일상에서 경험한 사소한 일들도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 특히 부정적인 경험들이 정말 좋은 재료라고 생각한다. 글로 쓰면서 그리고 영화로 만들면서 그 부정적인 경험들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또 극복할 수 있었다. 어떠한 경험이든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일의 재료로 전환하여 쓸 수 있다는 것, 이건 어쩌면 기나긴 창작의 과정 끝에 주어지는 중요한 어떤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 때면 언제나 내 과거에 대해, 지나온 세월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하고 작품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과거의 기억 사이를 부유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다 보면 현재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요즘은 더욱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며 내 현재를 지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창작은 사실 아무나   있지만 '계속' 하는  정말 쉽지 않다. 커버 이미지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야녜스 바르다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주변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스스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성찰해왔다. 90세로 별세하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작품을 만들어 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시간,  과정 자체가 바르다 그녀가 존재하고(being) 되어가는(becoming) 삶의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토록 오랜 기간 영화를 만들  있었을까 싶다. 나도 아녜스 바르다처럼 할머니가  때까지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를 만들며 늙어가고,  영화를 만들며 마지막까지 계속 성장하고 싶다. 그러면  과정은 분명 힘들기만 하진 않을 테니까.


2022년 4월

글. 박지윤


*해당 글의 저작권은 모두 글쓴이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커버 이미지 -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2019, 아녜스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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